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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의 해피스쿨

아버지의 이불 속 이야기/ 사선을 넘어 자유의 땅으로 Dukhee Choi (Grace150) 2021-1-29  17:50:51

참으로  오랫만에 글을 올립니다.

그 동안 '코로나 19'라는 사상초유의  황당한 사태를 겪으며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네요.

제가 살고 있는 이 곳도 아직  움추린 채 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꽃 피는 봄이 오고 경제도 풀려 모두 제 위치에서 정상적인 삶을 이어 갔으면하는 바램입니다.

이 글을 처음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이어지는 내용이오니 처음글 부터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민족의 비극 6.25가 발발했다.

아버지는 그 때 황해도 해주에 백 간 짜리 커다란 주택을 구입하고 막 잔금을 치른 상태였다.

결혼하고 처음 큰집을 사게 되어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 분홍빛 단꿈은 오래가지 않아 그 집에 들어 가 살지도 못하고 집문서와 패물 등 값나가는

물건들을 담은 커다란 김장항아리에 세 개를 땅에 묻어 놓고 피난 길에 오르게 되었다.

물론 끝까지 남아 살아보려고 버티고 버티셨었지..

그 당시 전쟁으로 남북이 분단되리라고는 예측 못했으니...


점 점 공산도당들의 감시가 심해지고 아버지 학교 동창들 중에 '인민 보위대'라나?

완장들을 차고 아버지를 찾아와서 회유하려 하자 그들을 피해 아버지는 땅 속 움막을 파고 숨어 계셨다.

몸을 간신히 누일 공간에 하루 종일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새벽녁이 되어

할머니께서 조심스레 부르시면 올라가 부엌에서 급하게 식사를 하고 다시 숨어있기를 석 달 남짓.

외할아버지가 황해도 청년단장을 하고 계실 때라 피난선을 보낼 날자와 시간을 알려 왔고

엄마와 야밤도주를 하여 휴전선 근처에 사는 친구 집에서 며칠 숨어 지내다 엄마와 가족들만 배에 태웠다.

그 배를 타기 위해 뱃터에 몰래 숨어서 기다리던 사람들 중에 공산당들의 총질에 배가 출발하자 

미처 타지 못하고 뱃전에 배달리며 울부짖던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동네 청년들과 청년결사대를 만들어 내 마을을 지키겠다고 밤낮으로 숨어서 활동을 하다 

1.4후퇴 때 손 발에 동상이 걸려 죽을 고생을 하고 후퇴하는 군인들을 따라 삼팔선을 넘어 남으로 오셨다

후에 아버지를 숨겨준 그 친구네 가족 모두 반동분자로 몰려서 총살을 당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가슴 아파 하셨다. 전쟁을 겪지 않은 지금 세대들이 그 끔직하고 처절한 상황들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먼저 친정부모님과 함께 피난길에 오른 엄마는 백령도에서 잠시 사셨다.

급하게 챙겨간 패물과 비단 치마저고리 등을 하나씩 팔아서 양식과 바꿔 먹으며 사시다 아버지를 만나게 되었다

그 후 오촌 할아버지가 중령으로 계신 육군사단에 문관으로 들어가셨고 그 때부터 월급과 식량배급 등으로 

생활에 어려움이 없어졌다.

부대를 따라 진해에 사실 때 첫 딸을 낳고 삼 년 터울로 나를 낳으셨다.

그 때부터였을까? 아버지의 무한한 딸 바보 사랑은?


나의 어릴 적 기억은 오 륙세 무렵 부터였다.

오촌 할아버지가 육군 중령으로 제대하시고 한국전기 주식회사에 사장으로 가시게 되자 아버지도 따라 입사하셔서 

창고과장으로 계시면서 인천에 일본식 주택을 불허 맡아서 살게 되었다.

그 집에서의 추억은 이 글의 첫 편에 기록된 바와 같다.

이 때가 우리 가족의 가장 단란하고 행복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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