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로 오랜 공백기를 가졌습니다.

집에서 머물 시간이 길어진 반면에 머리에 여백이 없어져서  늘 시간이 없는 사람처럼

무언가에 열중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전에 써 놓았던 단편소설을 몇 회에 걸쳐서 올립니다.

제 자신의  이야기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쓴 실화소설이니 첫회부터 읽어 주세요^^

     2. 바보같은 첫 사랑.

 

국문학과 1학년 때, 따라 다니는 남자가 생겼다.

같은 대학 경영학과 2학년, 큰 키에 아직 솜털이 보송 보송한 동안의 소년이었다.

도서관에서나 학교 식당에서 몇 번을 마주치고야 그가 항상  옆자리에 앉는다는 것을 생각했다.  

웃는 얼굴에 서글 서글한 눈매가 호감이 갔지만 아직 어리게만 보였다.

어느덧 여름이 오고 있었다.

학교 축제를 한 달 앞두고 부터 늦게까지 학교 체육관에서 개막 때 선 보일 포크 댄스

연습을 했다. 그 날도 윤지는 친구들과 학교 앞 분식집에서 김밥과 떡볶이로 저녁을 때우고 버스를 타고 

집 앞 골목길까지 와서 헤어졌다.

어스름한 골목길 윤지는 무서워서 종종걸음으로 뛰었다.

자기 발소리가 쿵쿵 울려서 더 무서웠다. 급히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는데

‘컹, 컹, 컹’ 옆집에서 요란하게 개 짖는 소리 “언니, 언니 이리와 봐.”

동생 신지가 호들갑 스럽게 불러댔다.

“저 남자 아는 사람이야? ” 어스름한 달빛에 반사되는 뒷 모습이 그가 틀림없었다.

“어제도 언니가 올 때 개가 짖어서 내다 봤는데 저 남자가 따라 오는 것 같았어.”

다음 날, 골목을 뛰어 내려가다 얼른 어느 집 대문에 몸을 숨겼다.

두리번 대며 그가 내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앞을 막아 섰다.

“웬일이예요. 집이 이 쪽이세요?”

당황한 듯 말을 못한다. 윤지는 돌아서서 걸으며 혼자 웃었다.

“바보, 남자답게 박력이나 있던지.”

그 다음날 도서관 입구에서 만난 그가 슬그머니 하얀 봉투 하나를 내 밀었다.

김 민, 그의 이름이었다. 축제 때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했다.

마땅한 파트너가 없던 차라 못 이기는 척 받아 들이기로 했다.

“오늘은 내가 데려다 줄께요.”

“왜, 대낮에 누가 잡아 갈까 봐요?”

“커피 한 잔 같이 하려구요.”

진한 커피향을 음미하며 한참을 머뭇거리다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 친구해요.”

“지금도 친구잖아요.”

“좀 더 의미를 두고 만나고 싶어요.”

뭐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가 싫은 건 아니다.                    

그렇다고 남자로서 선뜻 다가오지도 않았다.

“생각해 볼께요.” 며칠을 어색하게 지냈다.

 

 

월요일 아침 첫 강의 부터 머리에 들어 오지 않았다. 

하얀 대학 노트에 민의 얼굴이 아른아른 거렸다. 

얼굴을 붉히며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거기 있었다. 언제부터 서 있었을까?

“마침 공강이라 와 봤어요.”

변명처럼 그가 말했다. “머리가 아파서 조퇴하려던 중이었어요.”

“그럼 바닷바람 쐬러 갈래요?” 그가 손을 잡아 끌었다.

인천 월미도에서 유람선을 타고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회를 먹었다.”

“머리 아픈 것 다 나았죠?” 윤지는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 후로  축제 연습이 있는 날은  끝날 때 까지  기다렸다가 집에 데려다 줬다.

“그 때요, 밤에 혼자 집에 가는 걸 보니 불안했었어요.”

“그래서 몰래 뒤에서 따라 왔었어요?”

“윤지씨 누가 잡아가면 어떡해요.”,  “걱정 말아요. 이래 뵈도 태권도 유단자라구요.”

민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하얗게 고른 치아가 눈에 들어 왔다.

축제가 시작되었다.

1학년 신입생들의 포크댄스의 마무리로 수백개의 풍선이 하늘로 오르며 축포가 울렸다.

축제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여름밤의 열기는 더해가고 쌍쌍이 빠져 나가는 커플들이 눈에 띄었다.

  

“우리도 나가요.” 단짝 세영이의 눈에 안 띄게 살금 살금 빠져 나가서 월미도로 향했다. 

짜디 짠 바닷바람에 머리카락을 날리며 바다를 보며 걸었다.

어느새 손을 잡고 있었다. 민의 온기가 온 몸에 전해져서 짜릿하게 전류가 흐르는것 같았다.  

종강식날 각 학과마다 종강 파티가 열렸다.

국문학과는 디스코 클럽을 빌려서 교수님 들을 모시고 1차를 하고 2차로 몇 명씩 그룹지어 나갔다. 

경영학과도 부근의 레스토랑에서 모임을 가졌다.

윤지와 민이는 눈치껏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월미도로 달렸다.

바다가 보이는 2층 레스토랑의 통유리로 반짝이는 먼 바다의 불빛을 보며 말없이 오래 앉아있었다.

가슴이 탁 트이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