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게 누구야! 윤지, 윤지 맞지? 반갑다 얘!”

단체 손님이 많은 어느 토요일 오후, 돌잔치 연회장에서 미나 선배를 만났다.

“선배 반가워요. 저 여기서 일해요.”

“그래? 너 어디로 숨었나 했더니…… 그래 여기 온지는 얼마나 됐니?”

호들갑스럽게 어깨를 치며 떠드는 선배는 푹 퍼진 몸매에 부석 부석한 얼굴, 

바글 바글한 퍼머머리, 영낙없는 아줌마였다.

 그 옛날 짧은 커트머리에 화장기 없이 이지적인 눈매로 남학생들을 제압하며 

S대 학생회장 후보까지 올랐던 미나 선배는 머리에 붉은 띠 띠고 최루탄을 던지며 

학생운동에 앞장 섰다가 수배 당하기도 했었다. 

은혜가 학교를 휴학하는 바람에 그 뒤 전혀 소식을 몰랐었다.

 “여보 이리와 봐, 우리 후배야.”

샌님같이 얌전하게 보이는 배 나온 중년의 남자가 윤지에게 인사를 했다.                

 “윤지야 잠깐만, 오늘 우리 시누이네 아들 돌이거든. 너 전화 번호 좀 알려 줘라 

 내가 나중에 전화 할께.” 미나와 윤지가 근처 제과점에서 다시 만난 것은 일주일 후였다.

미나선배는 학생 운동의 주동자로 학교에서 퇴학 당하고 직장도 구할 수가 없어서 

결혼한 언니가 하는 선물가게에서 도와 주고 있다가 재미 교포인 남편을 만나서 

결혼하고 뉴욕으로 왔다고 했다.

“언니 너무 의외다. 다른 사람 같아.”

“그래 나도 어떤 땐 내가 왜 이리 됐나 싶을 때가 있어. 하지만 인생 별거 있니 뭐?

  다 이렇게 한 평생 살다 가는 거지.”

“형부가 너무 착해 보여. 혹시 언니의 찬란했던 과거를 모르는 거 아냐?”

“후후, 지금의 내 모습으로 그런 얘기 해 봤자 너라면 믿겠니?  

내가 그 땐 왜 그렇게 무모 했었나 싶다. 우리가 아니면 나라가 잘못 될 것만 같았었지. 

세월이 흐르고 가정을 가지니까 좀더 다른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지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참! 언니, 청년동맹에 한번 나와 봐라.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좋은 일 많이 하고 있어.”

“얘, 먹고 사느라 정신 없다. 조그만 세탁소 하나 하는데 인권비 아끼느라 둘이서 하루 종일 

같이 일해야 돼.  아이들은 학교에서 끝나는 대로 애프터 스쿨에서 와서 픽업해 가니까 

들어 가면서 데려다가 먹이고 씻기고…… 사는게 전쟁이다 얘.

 참 너는 결혼했니? 그때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윤지는 선배의 수다에 피시시 웃었다.

이건 너무도 아니야! 아줌마가 됐다고 저렇게 달라 질 수가 있을까?

집에 돌아 와서도 한 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내가 민과 결혼했어도 지금쯤 저런 모습이 되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