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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댁의 생각상자

(추억 상자) 가출과 어머니 Mijin Kim (seoulajumma) 2020-6-11  03:43:29
무뚝뚝하고도 유머러스하기도 하고 자상한 엄마가 가끔씩

무서워질 때가 있다. 언제나 동트기 전부터 해지고 나서까지

일에 파묻혀 산 당신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하지만 내가

어릴 적 국민학교를 다닐 때 그 고단함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왜 무서워지는지도, 왜 짜증을 내시는지도 모른 체 화를

내시면 가만히 들어야 하는 것이 딸들의 의무였다.



때는 내가 별내 국민학교 4학년 때의 일일 것이다.

김장을 며칠 앞두고부터는 모든 집안일이 조금 더 버거워진다.

농사를 업으로 하지 않으신 엄마와 아버지는 축산업을

하셨기에 일 년 열두 달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새벽부터 밤까지

소들을 돌보셔야 했다. 그러니 집 앞에 있는 텃밭이라고

하기엔 조금 더 큰 규모의 밭일과 집안일은 방과 후 딸들이 도와야 하는

몫이다.



여름에 뽑아놓은 마늘을 한 단씩 엮어서 지붕 밑에 매달아 놓으신 건

아버지가 해놓으신 작품이다. 우리 집의 김장은 보통 다른 집보다

배는 많았다. 아이들 7에 부모님까지 아홉 식구가 살고 있는

우리 집은 언제고 배추 200포기는 기본이었으므로 그 상당의

마늘을 까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학교에 다녀온 후 마늘을 까놓으라는 명을 받들기 위해 그날도

학교가 끝나자마자 후다닥 집으로 왔다. 토요일이라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온 나는 마늘을 까려고 보니 엄마가 벌써

지난번 생선 장수 할머니가 주고 간 플라스틱 세숫대야에 마늘을

물에 불려놓아 토방에 올려놓았다.



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부엌으로 들어가 부엌칼을 들고 와

마늘을 까기 시작했다. 불려놓은 마늘이라지만 햇마늘이라

여간 까기가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한 통씩 한 통씩 까서는

안마당 고무 다라에서 가져온 분홍색 바가지에 마늘 알만 담아놓고

껍데기는 소 사료포대 안쪽 종이를 오려다 올려놓았다.

나중에 껍데기만 집 앞 퇴비장에 살짝 버리면 되니 말이다.



손끝이 아려지도록 마늘을 까고 있는데 언니들이 집으로 온 것 같다.

언니들도 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는 안마당 다라에 있는 물을

한 바가지 마시려고 하니 내가 바가지를 가져가 버려 언니는

부엌으로 들어가 부엌 선반에 놓여있는 스테인리스 국그릇을

들고 와서는 물을 한번 휘휘 젓고 한 그릇을 떠서는 둘이 나누어

마셨다. 언니들이 오는 것을 보고 따라왔는지 누런 똥개인

이쁜이도 들어와 고무 다라에 있는 물을 홀짝홀짝 핥아마셨다.



언니들은 빨래를 해야 한다며 우물에 가서 고무 다라에 담겨있는

빨래들과 노란색 무궁화 빨랫비누를 챙기고 나무로 만든 빨래

방망이 두 개를 빨랫 다라에 쑤셔놓고는 리어카에 올려놓은 뒤

빈 고무 다라를 빨랫 다라 위에 덮어서는 앞개울로 빨래를 하러 갔다.



일학년 자리 내 동생 꼼지는 귀하게 태어난 막내를 돌본다고

동네 밤나무 아래 평상으로 놀러 가지 한참이다.



나 혼자 남아 마늘을 까다 보니 한 바가지로 다 까기도

전에 피곤이 밀려온다....

한숨을 쉬어가며 아린 손을 입에 한 번씩 넣어 빨아보고는

후~ 후~ 거리고는 다시 까기 시작한다.



이때 윗동네 사는 꿩 집 혜진이가 놀러 왔다.

나는 한창 바쁜데 놀러 온 혜진이가 야속하기도 했다.

혜진이는 나보다 한 살 많은데 나를 자기가 다니는 교회로

전도하기 위해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왔다.



오늘 교회에 가면 맛있는 과자도 많이 주고 상으로 공책도

준다고 한다.



내 마음에 갈등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쓸려갔다.

혜진이와 교회에 가서 놀고 싶기도 하고, 또 마늘을 그만 까고도

싶고... 어쩌나... 어쩌나... 마늘을까지 못하면 엄마에게

야단을 맞을 테니.. 교회는 못 가겠고... 거의 한 바가지를

까놓았으니 어쩌면 안 혼날 수도 있고... 음~~ 어쩐다나..

이러고 있으니 내 마음을 어찌 알아챘는지 " 내가 마늘 까는 거

도와줄게 한 바가지 다 까놓고 교회에 가자~ 조금 있다 정촌 마을

성 장로님이 데리러 오신다고 했어." 혜진이가 도와준다고

하고 또 성 장로님이 데리러 오신다면... 울 동네에서 유일하게

트럭을 타고 다니는 분이니 이기회에 트럭도 한번 타볼 수 있고...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알았어, 그러니 빨리 까놓고

갔다 오자~헤헤헤" 이렇게 웃고서 혜진이와 나는 마늘을

분홍색 바가지로 한 바가지 가득 까놓고 정촌 마을 성장로님의

트럭을 타고 청학리 안쪽에 있는 교회로 놀러 갔다.



해가 지려고 노을이 수락산 뒤편으로 펼쳐질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올 때는 혜진이네와 함께 걸어왔는데

혜진이 엄마가 울 집까지 데려다준다고 했으나 거절을 하고

혼자서 집으로 왔다.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어찌나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교회에서 받아온 공책은 손에서 달랑거리고,

다 까놓지 못한 마늘 때문에 혼쭐이 날 생각을 하니

작은 가슴이 콩닥콩닥 했다.



대문을 살짝 열고 살금살금 들어오다 우사에서 나오시는

엄마에게 딱 걸렸다. 교회에서 받아온 공책은 스르르

내 등 뒤로 감추어지고 고개는 땅을 치받을 기세로 떨어졌다.



화가 단단히 나신 엄마는 마늘을 까놓으라고 했는데

놀러 갔다 온 내가 얼마나 얄미우셨을까? 토방에서는

막내 언니가 남아있는 마늘을 까고 있었다.



엄마는 화가 나셔서 야단을 치기 시작하시는데 결국 나에게

"꼴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 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등 뒤에 있는 공책을 사료들이 쌓여있는 창고 옆에 놓고는

고개를 떨구고 집을 나왔다. 집을 나와 동네 어귀에 있는

밤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있었다. 저녁시간이 되어가니

야단맞은 것은 잊어버렸는지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기운도 없고 해서 누워 있는데, 지나가던 옆집 순우 엄마가

"집에 안 들어가고 여기서 뭐 하냐? 밥 안 먹어?" 이러고는

지나가신다.



지금 집으로 들어가면 엄마에게 더 야단을 맞을 수 있으니

일단 집 뒷마당 개나리 덩굴 뒤에 숨어있다가 어두워지면

방으로 들어가자는 생각이 들어, 개나리 울타리 뒤로 살금살금

들어가 집안의 동태를 살폈다. 그런데 토방에서 마늘을 까던

막내 언니가 뒤뜰로 왔다가 나를 발견한 거다. 언니가

"너 여기서 뭐해? 밥 안 먹어? 빨리 들어와..." 안 그래도

집으로 들어갈 틈을 노리던 차에 이 소리를 들으니 가슴속부터

밀려오는 뜨건은 것이 목젖을 탁!! 쳤다. " 엄마가 나가라고

했잖아... " 목은 막히고 눈물이 고였지만 절대로 울 수는 없었다.

"너.. 그러면 어떡해.. 그래도 엄마에게 잘못했다고 하고

들어와서 저녁 먹어~" 막내 언니는 어서 들어오라고 했지만

어린 마음에 자존심이었는지 획~ 하고 돌아서서 다시 밤나무로

왔다.



이제는 깜깜해 저서 제법 추웠다.

배도 고프고 춥고.. 잠바도 입지 않고 나와서 그런지

더 추웠다. 다시 집으로 슬금슬금 들어가는데 "당장 나가!!"

이 소리가 귓가에 맴돌아 차마 집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집

담장 옆에 쌓아놓은 지푸라기 단 옆에 앉아있었다.

겨우네 소에게 먹일 지푸라기를 커다란 창고만 하게 쌓아놓았는데

제법 따듯했다. 따듯하니 조금 살 것 같았다.



집 뒷담인 개나리 울타리로 나를 찾으러 온 막내 언니가

내 이름을 작은 목소리로 부르며 찾고 있었다.

아직도 내가 울타리 안에 숨어있는 줄 알았는지 보아하니

내가 배가 고플까 봐 밥을 들고 나를 찾고 있는 거 같았다.



나는 그까짓 마늘 때문에 집을 나가라고 한 엄마가 미워서

짚단 위로 기어올라갔다. 기어올라가 맨 위로 올라오니

비가 오면 짚단이 젖지 말라고 씌어놓은 파란색 갓바가 보여

갓바 안으로 들어갔다. 갓 발안은 무척이나 따듯했다.

배도 고프고 눈물도 흘리고 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나 잤을까?

사람들이 나를 찾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미진아!! 미진아!!" 가만히 들어보니 아까 밤나무 아래서

만났던 순우 엄마 목소리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웅성웅성

하면서 왜 짚단이 떨어져 있나... 그러며 수군수군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너무 떨리고 무서웠다.

혹시라도 지금 저 아줌마들에게 잡히면 울 엄마에게

야단맞다 죽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약간의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마치 죽은 물고기처럼...

동네 어른들은 "아니 얘가 어디 간 거야~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러면서 물러갔다. 나는 경찰이라는

말을 들으니 더욱 겁이 났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 동네 사람들은

나를 찾으러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나를 찾는 소리를

뒤로하고 또다시 잠이 들었다.



추위에 깨어났다.

온몸이 으실으실하고 마비가 되는것 같아서 슬금슬금 짚단 위에서

내려왔다. 올라갈 때는 짚단들을 붙들고 올라갔지만 내려갈 때는

스르륵 미끄러 저 내려갔다.

바로 옆이 집인 것을 차마 집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밤나무로

다시 어슬렁어슬렁 내려갔다. 내려가다 보니 어떤 사람이

밤나무 아래 평상에 앉아있었다. 가만히 보니 엄마가 앉아있는

것이었다. 나는 몸을 살짝 돌려 다시 돌아가려 하는데

"미진아~ 미진이니?"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몸은 순간 울 학교 운동장에 서있는 이승복 어린이의

동상이 된 것처럼 얼어붙었다. 귓가에는 "당장 나가!!

당장 나가!!"라는 소리가 뱅글뱅글 돌았고 눈에서는 참았던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어느 순간 엄마는 내 어깨를 잡았고

들고 있던 잠바를 내 어깨 위로 둘러주었다.



내 어깨는 들썩들썩 걸렸고 엄마는 나를 가만히 안아주셨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엄마는 평상에 앉으라며 한 손으로

평상을 다독였다. 고개를 숙인 채 어깨 위에 걸쳐진 잠바에

양손도 못 넣고 털썩 주저앉고는 계속 어깨를 들썩이며

흐르는 콧물을 한번 "흠~~" 하고 들이마시고는 콧물이

목구멍으로 떨어지는 것을 확인한 뒤 한 팔을 들어 올려 손목으로

콧구멍을 쓱~ 닦았다.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고 나 또한 침묵하고 있었다.

내 어깨가 더 이상 들썩거리지 않자 엄마는 일어나시며

들어가자고 하셨다. 내 귓가에는 아직도 "나가버려!!"

의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부드러운

목소리로 "들어가자"하시니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엄마는 내 한쪽 팔을 잠바 팔 안으로 넣고 또 다른 팔을

들어 팔을 입혔다. 그리고는 지퍼를 쭉 올리고는

"춥지 않았어?" 그러시며 눈물을 닦아주면서 "에구..

빨리 들어가서 얼굴 닦고 자자..." 그러고는 한 팔을 내

어깨 위로 감싸며 나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집으로 와서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언니들은 아랫목에 내 자리를 만들어놓고 자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안마당 고무 다라 옆에 있는 스테인리스

세숫대야에 물 한 바가지를 붓고는 부엌으로 빈 바가지를

들고 가 연탄보일러 위에 올려있는 누런색 양은 들통 안에서

따듯한 물을 떠와서는 찬물과 섞어서 내 얼굴을 씻겨주셨다.



아버지가 안방 문을 살짝 열고는 "들어왔어?"

그러시니 엄마가 "예.. 들어왔어요" 대답을 하신다.

엄마는 마른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곤 들어가서 자라고

하셨다.



아랫목 내 빈자리에 들어와 누워보니 여간 따듯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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