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가 두 돌이 되기 전 미국에서 한국으로 갔다가 네 돌이 되기 전 미국 텍사스로 다시 이사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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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미국에서 살았던 1996년부터 1998년 여름, 나는 워싱턴 주 타코마라는

동네에서 살았었다. 그곳은 4계절이 뚜렷했던 한국에서 스무해를 넘겨 살던 나에게는

9개월 동안 보슬비가 내리는 가히 충격적인 이상한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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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매우 크고 길도 넓고....

아무튼 워싱턴 주에서 살았던 이야기는 나중에 시간을 내어 다시 한번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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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여름 대한민국은 40년 만에 내린 물 폭탄으로 인해 물난리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 당시 경기도 남양주시 청학리에 살던 엄마네 집에 잠시 동안 방문 중에 살았었는데

두 돌이 막 지난 아기와 서울에 있는 아빠를 만나러 나가는 도중 홍수로 인해 산에서

토사가 떠내려와 길가에 있는 논들이 흙더미로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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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길을 걸어가며 "엄마 이게 뭐야?" 천진하게도 물어본다.

"응~ 이건 흙이야. 지난번에 비가 많이 내려 흙이 산에서 내려와 논을 덮었네"

아이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아니야~ 이건 흙이 아니야."

나는 의아해하며 아이에게 물었다. " 흙이 아니면... 그럼 뭐야?"

아이의 눈은 금방이라도 터질듯하고 아이의 입은 풍선을 머금은 양 동그랗게 부풀어

있는 것이 무슨 웃긴 비밀을 감춘 것을 더 이상은 감출 수 없다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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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똥이야 ㅋㅋ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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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 그래 ㅋㅋ 아이는 똥 이야기를 하고 싶어 그렇게도 웃겼나 보다, ㅎㅎ

나도 이렇게 웃는 아이를 보니 덩달아 웃겨서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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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있다가 아이가 또 물어본다.

"엄마 이게 뭐야?" 또 흙더미로 뒤덮인 논을 보며 물어본다.

나는 조금 생각을 한 뒤... 음... 이번엔 똥이라고 대답을 했다.

"아냐~엄마 이건 똥이 아냐" 아이는 나를 빤히 보며 또 웃음을 가득 머금은 얼굴로

곧 터져 나올 듯한 비밀을 꾹꾹 감추고 있는 표정이다.

"그럼 뭐야?" 아이에게 물어보니, 아이는 또 빵 터져버린 꽃 망울처럼

마구 웃고는 나를 보며 이야기한다.

"엄마, 이건 흙이야. 지난번에 비가 많이 오면서 산에서 흙이 떠내려 왔잖아.

저기 사람들이 흙을 파고 있네? 엄마는 이게 똥인 줄 알았어? 이건 흙이야."

하하 하하 아이가 말장난을 하는구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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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참 웃겨 웃어버렸다. 흙으로 덮여버린 논 위에 여러 명의 군인들이 나와서

흙을 포대에 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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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는 아이가 ADHD를 갖고 있는지.... Asperger Syndrome 이 있는지도 모르던 때였다.

그저 이 아이가 9개월 체크업을 하러 병원에 갔을 당시 의사는 이 아이가

너무 뚱뚱해서 걷기를 못할 것 같다고 했지만 9개월 체크업이 끝난 지 2주 후에

갑자기 걷기 시작을 하고, 남들보다 훨씬 빨리 단어들을 말하고

행동반경이 매우 커서 이리저리 정신없이 돌아다니기에 한국으로 비행기를 타고 올 때엔

공항에서 잃어버릴까 두려워 아기 끈을 아이 가슴에 채워, 강아지 줄처럼 아이를 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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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네 살이 되기 전 가을, 미국 텍사스로 이사를 온 우리는 전에 살았던

워싱턴 주는 늘 비가 내려 마음이 우울했었는데 햇볕이 많은 텍사스는 아무래도

워싱턴 주보다는 살기 좋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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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겨울이 되기 전, 갑자기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졌다.

한국에서 보던 그런 우박이 아닌 마치 골프공이 후드득 떨어지는 듯했다.

세상에나.... 이런 커다란 우박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광경이었고

부엌 식탁 옆 창문으로 뒤뜰을 바라보던 우리 부부를 보고는

같이 보고 싶었는지 후다닥 달려온 아이를, 의자를 끌어다 의자 위로 올려

함께 바깥 뒤뜰을 바라보고 있는데 아이가 우리 부부를 보고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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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다!!"

맞다. 얼음이다. 하늘에서 얼음이 떨어지는 것이다.

넓은 뒤뜰은 하늘에서 떨어진 얼음으로 하얗게 마치 눈이 내린 것처럼 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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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하늘에서 냉장고 문을 열어 놨나 봐. 하늘나라에 있는 냉장고 문을 다

열어놔서 얼음이 다 떨어졌나 봐."

우리 부부는 아이를 보며 웃었다.

"하늘에서 냉장고를 누가 열어 놨을까?" 내가 물어보았다.

"엄마~ 사람들이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잖아. 거기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사는데?

엄마는 몰랐어? 하늘나라에 사람들이 사는 거? 교회에서 배웠는데?

엄마는 몰랐구나. 아빠도 몰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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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빤히 보며 물어보는 아이의 눈이 너무나 진지해서 웃지도 못하고

"응.... 맞아 하늘나라 사람들이 냉장고 문을 열었나 보다 하하하"

아빠는 아이가 귀엽기도 하고 뭐라 대답할 줄 몰라 어색한 웃음으로 말꼬리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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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의 상상력이 재미있기도 하고 또 어쩌면 정말 그렇게 믿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아이에게 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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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하늘에서 사람들이 왜 이렇게나 많이 얼음을 땅으로 떨어뜨릴까? 무슨 이유가 있나?"

나는 궁금한 듯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가만히 나를 보더니 "응~ 엄마 그건~ 이제 겨울이 되잖아. 추워지니

얼음이 필요 없어서 다 버리는 거야."

아이는 대답을 한 후 지그시 바깥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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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도 한동안 떨어지는 우박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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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겨울이 지난 후, 아이에게 ADHD가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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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진단이 있은 후, 매주 의사를 만나 상담을 하고 프리 K에 다니면서부터는

약을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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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가 태어났고 늘 바빴다. 나는 차가 생겼고 일도 했다.

영어를 배우러도 다녔고 일을 그만 두기도 했고 우리 집에 고등학생인 남자아이가

잠시 함께 살기로 해서 막내와 큰아이가 한 방을 쓰고 고등학생 남자아이에게

막내의 방을 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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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바빠진 나날들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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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지니 큰아이의 ADHD는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생활에 녹아들어

별로 인지를 못 하고 지나가다가도 한 번씩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아.... 이 아이가 ADHD를 갖고 있는 아이구나라고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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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말을 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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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말을 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자연스레

이야기를 하는데 서로 자기주장이 강하여 종종 말을 하다 다툼으로 번질 때가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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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이와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상상했던 것을 이야기하는데, 문득

아이와 나의 상상을 합쳐서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아이와 함께 이야기 만들기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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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놀이는 인원 제한은 없으며 한 사람씩 돌아가며 앞사람의 말을 다음 사람이

이어가며 스토리를 만드는데 처음에는 아이가 어려 말로만 하다가

아이들이 커 가면서는 그림을 그리며 스토리를 만들거나, 만든 스토리를

글로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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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내가 시작을 한다.

"옛날 옛날에~ 어느 산속 동네에 제인과 찰리가 살았었어."

그럼 다음 사람이 이야기를 계속한다.

"제인은 찰리보다 세 살이 많은 누나였는데 제인은 호빵을 좋아했고 찰리는 찹쌀떡을 좋아했어"

그러면 다음 사람이 또 이야기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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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스토리 만들기는 주로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자주 놀았고

산책을 하거나 아이들이 심심해할 때, 혹은 내가 시간이 조금 날 때 했다.

스토리는 자유롭게 시작해서 자유롭게 끝이 나고 주로 이야기가 끝나는 시간은

이동이 끝나 차에서 내리면서 또는 다른 것에 흥미를 빼앗기면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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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만든 이야기를 글로 써 보며 다시 한번 이야기 내용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글로 이야기를 만드는 요령을 터득하기도 한다.

부수적으로 아이들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어 일석이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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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하거나 비행기 안에서도 할 수 있는데

비행기 안에서는 짧게 또 한 사람씩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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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오랫동안 이 놀이를 하였는데 큰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보이 스카우트에서 하이킹을 가거나 캠핑을 갈 때 기차 안에서 이 이야기 만들기

놀이를 하기도 했다. 또 종종 만든 이야기로 아이들을 모아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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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이들이 어릴 때 만든 이야기 대부분은 얼토당토않게

똥으로 끝나며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고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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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

이번 아이들의 겨울방학 동안 이야기 만들기 놀이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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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스파르타 위스콘신에는 눈이 흩날린다.

마치 봄바람에 이화가 이리저리 춤을 추듯 흩날리는

내 고향 청학리 응달마을 같기도 해서 향수를 자극하는 눈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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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정오.

따듯한 차 한 잔을 마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