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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일기

바바리 맨 yeon seo (yeonseo) 2021-1-27  18:50:44
학교 가는 길은 골목길이었고 가장 빠른 길이었다. 
학교와 10분 거리에 가까이 살아서 동네 골목은 너무 익숙했다.
여자 학교가 동네에 있다보니 그 당시에 유명한 일(?)들이 학교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었고 한번도 혼자 당한 적은 없지만 무수하게 이야기를 들어서 어느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날은 학교에서 나와서 석양을 바라보면서 터덜터덜 골목 입구를 들어서는데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하교때는 늘 가방의 무게를 심하게 느끼면서 바퀴가 있는 가방이 있으면 좋겠다, 비서가 있어서 들어주면 좋겠다, 자가용으로 나를 데리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등등 생각하면서 그날도 여지없이 걷고 있었다.
앞에서 걸어오는 남자가 선명하게 눈 앞에 들어올 정도로 가까울 때 갑자기 두손으로 옷깃을 열어젖히는데.....순간 악! 소리가 저절로 질러지면서 무거워 질질매던 가방을 던지고 오던 방향으로 돌아 달려 골목을 빠져 나갔다. 
울려고 한 것도 아닌데 눈물이 쏟아지고..정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고 펄펄 뛰면서 복잡한 거리로 나왔다. 
그 당시 홍대앞은 번화한 거리가 아니었고 그나마 몇몇의 사람들이 바쁘게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한참을 거리를 뛰다가 나를 쫒아 오는 사람이 없음을 알게 되어 눈물을 멈추고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뜀박질을 멈췄다.
갑자기 두고 온 가방이 생각이 났다. 내 가방..
정말 가방을 가지러 돌아서 가야하는데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집이 가까와서 엄마의 도움을 받아 가방을 찾았다.
엄마랑 대화도 할 수 없고 ..그 날 밤은 알 수없는 고통으로 잠을 설쳤다. 뭐라할 수 없는 마음 속의 혼란함과 더러움.

다음 날 큰길로 돌아서 정문을 이용해서 등교를 했고 친한 짝궁한테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하니 친구는 흥분을 하면서
다 잡아서 없애야 한다고 한다.
어떻게?
자기도 여러번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강해져야 한다고 다시 만나면 반은 죽여 놓겠다고 한다.
난 정말 겁이 나서 도망 갈거 같다고 했다. 
"소"라도 때려잡을 만한 덩치의 내가 약한 척 한다고 면박을 준다.
그 날부터 우린 남들이 알지 못하도록 "쏘세지 사건"으로 명명했고 호시탐탐 쏘세지 박살낼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다 거의 우리의 기억에서 희미해질 무렵 학년이 바뀌고 새로운 교실로 배정이 되었는데 그 교실은 창밖이 동네의 어린이 놀이터와 나란히 있어 미끄럼틀에서 우리를 부르면 창문을 열고 대답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봄 날 오후 점심을 먹고 수업을 하면서 눈꺼플이 반은 내려와 앉을 즈음에 옆 친구가 찬물을 뒤집어 쓴 듯 조용한 교실에서 나의 허벅지를 쿡쿡 찌른다.
졸다가 머리가 책상에 거의 닿을 무렵이라 반사적으로 친구를 쳐다보니 손가락으로 선생님이 보이지 않게 창쪽을 가리킨다.
시큰둥하게 미끄럼틀 꼭대기를 쳐다보니....뜨윙!! 쏘세지가 있는 것이다!
여전히 바바리를 열고 우리를 향해 미소를 날리면서. 
엄마야!
교실은 일제히 나를 집중하고...정치경제를 수업하던 남자 선생님은 뭉둥이를 들고 창문으로 달려가고..
잠은 홀딱 달아나고 남은 수업 시간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담박에 욕을 먹었던 정치경제 선생님의 해명 아닌 해명으로 수업이 마쳐졌다.
아마도 우리반만이 아닌 나중엔 전교에 퍼졌으리라 생각이 된다.
잡아서 반은 죽여놓겠다던 그 친구는 같은 반이 아니라서 그 자리에 없었지만 과연 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그렇게 갈래머리 땋고 교복을 입던 그 때에 본의 아니게 남자모습(!!)을 보게 된 우리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상처(?)로 괴로워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삶에 무디어진 중년이 되어 돌아보니 슬프기도 하고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학교에서 아름다운 성교육을 지금은 많이 하고 있겠지만 최소한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도록 사전 교육, 사후처벌도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요즘도 베이지 색이 도는 바바리를 입은 남자가 걸어가면 가슴이 쿵쿵거리고 혹시??? 하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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