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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일기

내 아들의 생일 yeon seo (yeonseo) 2021-2-25  22:40:47
몇 일이 있으면 아들의 생일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원하는 일에 정신없이 파묻혀 살다가 결혼을 했고 가장 일터에서 성장하고 바쁠 때 아들을 임신하게 되었다.
분가하여 살다가 바쁜 나와 태어날 아이를 위해 시댁에 들어가서 살기로 결정을 했다.
고3 담임을 많이 하다보니 보충수업도 많았고 자율학습도 하느라 아이가 태어나서 2달 휴식한 것 말고는 깨어있는 아이를 거의 본 기억이 없었다. 
방학이 되면 아이를 내 손으로 씻기고 밥을 먹였지만 아이는 내가 엄마라는 이름만 가진 타인으로 느꼈고 정은 오로지 할머니와 나누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이의 입학식도 갈 수가 없었다. 
이유는 학교가 시기에 입학이라 결근은 상상도 못했던 나의 학교 생활.
그렇게 나는 긴 세월을 무늬만 엄마인 채로, 호적에 이름만 올린 엄마로 살았다. 
다행히도 우리부부가 원하는대로 아이는 잘 자라주었고 학교에서 리더십도 있어서 친구들과 잘 지내었고 늘 우리를 기쁘게 해 주었다.
나의 일이 점차 나를 아프고 건강을 축나게 하는 때가 와서야 일을 조금 즐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이기적인 엄마인 나는 아이를 핑계로 학교 휴직을 했고 더불어 교육 선진국(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이라는 미국에서 아이를 위해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오로지 지금까지 엄마의 역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기에 잘 해보자고 다짐하면서.
미국에서 아이는 문화충격과 엄마라는 울타리를 힘들어 했고 적응 못하는 아이를 참으로 많이도 달래고 혼내기도 했다.
사춘기를 시작하면서 더욱 심한 갈등이 생기고 엄마와 함께 살지 못한 환경에서 할머니식 생활과 엄마에 대한 이견들이 얼마나 컸을까 짐작은 하면서도 극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지 못하는 엄마, 한국에서의 문화와 다른 이방인으로써의 삶.
아이의 고등학교 생활 거의를 우리는 말다툼과 걸러내지 않은 말들의 폭풍 속에서 힘들게 살았다. 
12학년이 되어서야 본인이 해야 할일이 있으니 조금은 안정이 되는 듯 했다.

그 날은 비가 참으로 많이 내렸다. 
아이가 친구 집에 갔다가 좀 늦는다고 전화가 왔고 목소리가 상당히 기분이 좋은 듯하여 꾸지람을 하지는 않았지만 통행금지가 10시이므로 그 전에 들어오라고 타일렀다.
하루종일 일에 지쳐서 나는 그날따라 일찍 자리에 누웠고 잠이 들어버렸다. 
시끄러운 소리에 자다가 깨보니 비가 정말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유리가 깨질 듯한 창문밖을 침대에서 보니 칡흑같은 밤이란 표현이 딱 맞았다.
잠시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었고 일찍 잔 탓에 일찍 일어나 나가니 지난 밤의 폭우는 흔적만 남기고 온통 은빛 찬란함이 눈부시었다.
아이 방을 들여다 보니 들어온 흔적이 없다. 
또 싸울 일을 만드는 아들을 원망하면서 일을 위해 준비를 하고 아침을 대충 챙기고 출근을 했다.
그 날 그 새벽 빗속에서 내가 눈을 떴을 때....그 때 내 아이는 친구가 몰고 가는 차에서 차디찬 비를 맞으며 엄마를 찾았고 그렇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고 말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빗길에 미끄러져서 말이다.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흘러있었다.
아이가 없는데도 엄마라는 나는 아직도 살고 있고 때가 되면 밥도 먹고 사람을 만나고 웃기도 한다. 
그 아들의 생일이다. 
함께 케익을 나누지 못하지만 선물을 나누지 못하지만 난 올 해도 생일상을 차릴 것이고 엄마로써 잘하지 못한 시간을 반성하고 후회할 것이다. 
돌아보면 한번도 사랑한다고 진정으로 안아주지 못했고 그가 나를 필요로할 때 옆에 있어주지 못했음이 가장 미안하고 아프다.

엄마 자격이 없는 나에게 와주어서 고맙고 늦었지만 정말 늦었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은,
아들아! 사랑한다.
그리고 생일 축하해.
올 해는 더 많이 엄마 꿈에 찾아오길 바란단다.
엄마가 참 미안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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