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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일기

고향의 봄 yeon seo (yeonseo) 2021-3-26  11:16:10
봄이 오면 마당에 한가득 병아리 놀던 한국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전형적인 한옥에서 자란 나는 닭도 있고 개와 강아지도 있었다. 
봄이 되면 부화된 병아리가 적게는 30마리 정도가 마당에 수북히 놀았는데 가끔 뛰다가 병아리를 밟아서 하늘나라로 보내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병아리 날개죽지에 보드라운 날개가 아닌 조금은 거친 날개가 돋아나면 자다가 죽을 걱정을 안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미 닭이 있는데도 10%이상은 병아리 상태로 하늘나라로 갔었다. 
개는 늘 새끼가 있어서 어떤 때는 12마리를 낳아서 동네 지인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그것도 어려우면 그냥 모두 길렀다.
국민학교 저학년 때 있었던 검둥이는 거의 나와 체구가 비슷해서 정말 친했고 개들도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잘 알기에 우리는 늘 함께였다. 
동네 야산에 함께 갔다가 낮은 산중턱에서 나의 친구 검둥이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져 병원에 간 일이 있었다.
다리에 부목을 대고 기브스를 한 상태로 한달이상을 절뚝이던 우리 검둥이.
 2번째 새로운 봄을 맞이하던 해에 학교에서 돌아오니 검둥이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찾다가 마당에 불때는 솥단지를 발견하고 난 미친 듯이 날뛰면서 울었고 우리 집에서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길래 누가 뭐라 이야길 하지 않아도 검둥이가 하늘나라로 간 것을 알았다. 거의 1주일이상을 울고 불고..
우리 가족은 물론 동네 어른들이 모여 앉아서 "몸 보신"하는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마음의 상처를 입었는데도 그런 일이 몇 번은 더 일어났던 그 때.
손님이 오면 닭을 잡고 그 귀한 달걀은 우리 집에서는 그리 구하기 힘든 음식은 아니었다.
지금도 닭고기는 절대 근처에도 안가니 어린 시절 환경이 불러온 트라우마일 수도 있다.
고모들과 강변에 잘 자란 쑥과 냉이를 캐러 가서 잡다한 나물을 캐 혼났던 기억도 난다. 
곱슬머리 만들려고 아카시아 줄기로 말아올려 거의 미친 여자 머리를 싸안고 아카시아 꽃을 너무 많이 먹어 밤새 그 무서운 화장실 들락거리던 때가 생각난다.
화장실이 마당 끝에 있고 전기세를 아낀다고 빨간색 꼬마 전구가 달려 있던 그야말로 공포의 장소를 밤에 한번 가려면 거의 눈물을 달고 애원을 했었다. 
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

우리 집은 4대가 함께 살았다.
여름이 오면 가까운 강에 삼촌들,고모들과 수영을 하러 갔고 돌아오는 길에는 어김없이 물통에 가득 미꾸라지를 잡아왔다.
그 때의 울 엄마 요리 방법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추어탕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갈수 있는 도구도 없었지 싶다) 그릇에 넣은 물을 연탄 불에 올려 끓으면 두부 2모를 썰지 않은 채로 넣고 잘 닦은 미꾸라지를 끓는 물에 넣으면 미꾸라지들이 모두 두부 속으로 들어간다. 익으면 두부를 꺼내 썰면 근사한 콩떡같은 비쥬얼이 된다. 된장을 풀고 우거지와 시래기에 미꾸라지가 들어간 두부를 썰어 넣어 추어탕을 만들었다.입맛이 까더롭지 않은 나지만 절대 먹을 수 없는 음식중에 하나가 되었다.

봄이 와서 나른해지면 어김없이 아롱대는 마당의 그림자들이 생각난다. 상추 싹 열무 싹이 돋아오르는 장독간에 물을 주면서 즐거워하던 엄마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이젠 그 가족들 모두가 마당이 있는 집이 아닌 아파트에서 정원을 그리워하며 살기에 더욱 더 잊혀져가는 어린 시절이 소중하다.
창가에 화분을 두고 열무씨를 뿌려 싹이 올라온 모습을 보고 눈이 왕방울만하게 커진 남편을 보니 운이 좋게 어린 시절을 들로 산으로 다니면서 자란 내가 자랑(?)스럽다. 
내가 태어난 곳은 지금의 홍대입구, 서교동이다. 
지금은 상상이 불가능하게 발전이 된 곳이지만 그때는 그 동네도 그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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