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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일기

짜장면과 졸업식 yeon seo (yeonseo) 2022-1-30  04:45:12
고등학교 졸업 무렵 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 
나의 위로 집안을 이어간다고 귀하게 대우 받던 오빠 다음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나 - 대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태어난 첫 딸이라 아들 선호사상이 강한 우리 집에서 그나마 첫 딸이라는 이유로 구박이 덜했던, 아버지께서는 표현은 서툴렀지만 지금 기억해 보면 그게 사랑이었던 -  장손인 오빠에 비하면 턱없이 차별을 받았지만 집안의 첫 딸인지라 그런대로 새옷도 종종 입고 살았었다. 내 밑으로 여동생이 2명이 있는데 아들을 하나 더 보겠다고 낳은 희생자(?)들이라 그리 고상한 대우는 못 받고 자랐다. 
내가 국민학교 들어갈 무렵에 울 엄마는 층층시하를 벗어나 잠시 아버지 직장때문에 분가를 5년 정도 했었는데 그 때는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었지만 엄마의 밝은 모습이 기억난다. 그 땐 거의 주말이면 버스를 타고 할머니 댁에 가서 자곤 했었다.
아버지께서 혈압으로 쓰러져서 6개월을 견디지 못하시고 돌아가실 때 엄마는 50살을 앞둔 젊은 나이였고 울 막내는 이제 막 국민학교를 졸업한 어린이였다. 다른 하나는 중학교 졸업, 나는 고등학교 졸업, 오빠는 대학교 졸업.
엄마는 전업주부고 시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삼촌, 고모가 함께 살던 대 가족의 맏며느리.
갑자기 닥친 이 모든 일들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그나마 아버지의 유언으로 대학 1학기 등록금은 받은 상태였지만 장학금이 없으면 졸업을 못하는 내 생애 힘든 시간이 오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이 등록금으로 대학을 갈 것인가 아니면 엄마와 동생들을 위해 생활비로 쓰고 직장을 구할 것인가 참 많이 고민을 했다.
하지만 엄마의 결정으로 난 대학을 진학했고 본의 아니게 공부보다는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면서 졸업을 하는 그 날까지 일과 공부를 병행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오빠는 대학을 졸업해 직장을 구해서 집안에 도움을 준다고 했지만 아직 새내기인지라 그리 쉬운 사정은 아니었고 오냐오냐 큰 장남의 성격이 뭐그리 많이 변하여 기둥의 역할을 했었겠나. 지금 생각해 보니 그도 20대 초반에 졸지에 경제적인 책임을 맡는 자신이 어땠을까도 싶다. 
그렇게 아버지의 부재로 우리는 서로의 살 길을 찾지 않으면 안되었고 오랜 동안의 4대가 함께 살던 대가족은 해체되었다.
지금까지 뒹굴면서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달리면서 살지 않으면 안되는 내 삶의 시간들.

막내가 고등학교 졸업을 할 때 나는 이미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었고 그녀의 졸업식 날.
뒤늦게 찾은 직장으로 엄마는 졸업식을 참석하지 못했고 오빠는 출장 중이었고 나와 아래 동생이 졸업식에 참석했다.
겨울이라 마음도 춥고 몸도 추웠던 시간이라 기억이 선명하다.
졸업생인 주인공에게.
뭐 먹고 싶어?
어....짜장면!
다른 것도 사줄 수 있는데..
아냐 짜장면 먹고 싶어. 많이 먹고 싶었는데 못 먹어서.ㅎㅎ
학교 앞은 졸업인파로 발 딛을 자리가 없어서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와 중국 음식점에 들어가 정말 맛있게 짜장면과 짬뽕을 먹었다.
다행히 동생은 대학을 합격했고 막내인지라 가족의 도움과 장학금으로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짜장면은 그야말로 나의 가난의 종지부요, 고통과 쉼없던 시간의 마침표였다. 
졸지에 홀로되어 살 날이 막막한 밤에 눈물로 잠을 못 이루던 엄마의 나이가 된 어렸던 동생도 이젠 짜장면보다는 조금 더 비싼 음식을 먹는 환경이 되었다. 
그 땐 졸업식을 하면 늘 짜장면을 먹으러 갔었던 거 같다. 마치 행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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