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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일기

함께한 시간 yeon seo (yeonseo) 2022-3-2  11:13:15
내 삶에 특별한 날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기억하지 못하지만 내 아들의 생일이다. 
어제부터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난 알수없는 고통을 느끼면서 일찌기 자리에 누웠다. 
긴 밤동안 여러번 깨었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아 그대로 자는 둥 마는 둥 아침을 맞았다.
난 내 아들에겐 안좋은 엄마였다. 
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친할머니 손에서 자란 아이는 늘 나에게 힘든 존재였다. 
할머니의 양육 방식과 나의 잘 난 - 시댁 식구들이 그렇게 표현한단다 - 양육방식이 아이를 얼마나 힘들게 했을지 그 땐 몰랐다.
공부 시키는 것도 싫어하고 학원에 보내는 것도 싫어하던 시어머니 밑에서 그야말로 자연인으로 자란 내 아들.
7살이 되어서야 한글을 배우고 겨우 학교를 들어갔는데 이상하게 꼴지는 아닌지라 그냥저냥 학교를 다니고 2학년이 되면서는 반에서 눈에 띄는 아이로 자랐다. 그러나 자연인으로 자란 아이가, 저녁에 퇴근하는 엄마 눈치만 보는 아이가 교육된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우린 그렇게 서로 궁합이 맞지 않은 채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시어머니에게서 분가를 했다.
나는 알수없는 자유를, 아들은 알수없는 구속을 느끼면서 살기 시작하였던터다.
나의 기에 눌려서 혼나도 눈물만 흘리던 그 아들이 사춘기가 되자 반항을 하면서 우리들의 거리를 좁힐 수 없는 시간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늘 느꼈다. 그가 내 아들임을. 나를 자랑스런 엄마로 기억함을.
그렇게 그 아이를 보내고 벌써 13년이 되어간다.
누구에겐가 내가 이렇게 아프고 힘들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오늘인데 슬프게도 아무도 기억하는 이가 없다.
나만 가슴을 쓰다듬으면서 오늘 아침을 맞이하고 하루종일 힘이 없다.
18년의 시간을 함께 한 내 피붙이를 보내고 산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지 누가 이해하겠는가.

미국에 와서 영어도 잘 못하는 아이가 수학을 잘해서 학교를 대표해 경시대회에 나갔다는 이야길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안식년으로 온 교수님에게 들었다.
그 날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든든하고 자랑스런 내 아들을 감격스러했다. 
어른스런 내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배운 것을 그대로 했다고 한다. 왜 엄마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았냐고 하니 정확히 어떤 일인지 몰라서 문제를 받으니 다 아는 것이라 했다고 아주 쉽게 이야길 했다. ㅎㅎ
ESOL을 마치고 카운티에서 주는 상을 받으러 가는 날도 난 일하느라 따라가지 못해서 교회 목사님이 함께 갔었다.
목사님의 전갈은 나를 결국 울게 했던 아들.
그런 옛 어른들이 말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아들이 지금은 나에게 없다.
그저 우리가 함께 한 시간들을 추억하면서 나는 고스란히 늙어간다. 
분명 내 기억은 정확히 남아있는데 실체는 없는 마치 전설처럼 그렇게 그 아이는 내 곁에 잠시 머물다 자기의 자리로 돌아갔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라지만 아주 많은 시간은 가슴이 터지도록 아픈 추억도 있음을 나는 배웠다.
함께 있다면 모든 것을 나누고 싶은 나...그러나 그리움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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