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이 무려 7개가 있는 집이라고 해서 큰집이구나 생각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정말 궁전과 같은 집이었다.

 2층의 방(우리 부부가 묵은)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그대로 들어있었다. 

게다가 서재가 같이 있는데 학교 교실만한 사이즈..ㅎㅎ

남자친구와 그들의 친구들까지 총 10명이 방 하나씩 분배(?)되어 모처럼 대가족이 모인 한국의 우리 집 같았다.

5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오르락 거리기는 불편이 없었고 5층 전망대에서 주변의 산과 강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첫 날은 조그만 집에 살다가 궁전을 만난 놀라움에 경이로왔지만 두번째 날부터는 그냥 일상적으로 바뀌는 적응력에 놀라웠다.

대가족이 음식을 먹다보니 그릴과 고기 굽는 철판에 음식찌꺼기가 끼어서 바닥이 더러운데 내가 설겆이를 안하다보니 눈에 거슬리지만 그냥 넘어갔다. 4일째 되던 날은 나도 설겆이를 하겠다 선언을 하고 그릴과 철판을 닦기 시작했다. 닦아도 닦아도 검댕이가 나오니 자연 시간이 걸렸다. 

갑자기 어느 사이트에서 읽은 시어머니를 욕하는 며느리의 글이 번뜩 생각이 났다.

"누가 청소해달라고 했나 후라이팬 코팅을 몽땅 벗겨놔서 다시는 그 비싼 후라이팬을 못쓰게 만들어놨다"

혹시 설겆이 후에 코팅 벗겨 놔서 돈을 물어야 한다고 하면 어쩌지?

그 순간만은 나도 시어머니 레벨에 들어 걱정이 되었다.

결혼을 앞두고 남편이 될 남자친구가 자기 가족이 많음(4대가 함께 사는)을 이야기하는데 그게 그렇게 신기했었다.

시아버지인지 시할아버지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연배가 비슷한 두 어르신과 한 눈에 어머니와 며느리같은 두 분.

사랑은 한 대를 건너간다는 말이 있 듯, 며느리인 시어머니보다 시할머니가 나에게 더 무한의 관심이 있었다.

어쩌다 시할머니가 사시는 시골 댁에 놀러가면 시어머니는 늘 화가 나서 돌아오시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할머니는 나를 위주로 모든 식단을 준비하시고 그 준비과정을 울 시어머니인 당신의 며느리에게 시키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 나에겐 시어머니인 당신의 며느리의 밥상을 어찌 가만히 앉아서 받아 먹을 수 있나. 

결국은 나는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이 늘 발생했다. 

식탐이 많고 식성이 좋은 나는 시할머니의 정성스런 밥과 김치만으로도 너무 만족한 식사를 하고 게다가 늘 과식을 하게 되었다.

시 어머니는 먹는것에 그리 관심이 없는 사람(주전부리를 좋아하는 분)이라 내 앞에서 늘 혼이 났었다. 

무엇이든 해주는대로 잘 먹는 손주 며느리와 입이 까다로운 당신 며느리..ㅎㅎ

그런 시할머니가 가끔 서울에 올라오면 우리 집에서 주무시곤 했는데 출근하고 돌아오면 우리 집이 맞나 싶게 달라져 있곤 했다.

아파트 계단부터 물걸레에 양동이를 동원해 쓸고 닦고 안방 장농을 열어 옷가지를 일렬로 정리를 해 놓고 바닥이 윤기가 돌아 파리가 미끄러질 듯하게 만들어 놓았다. 처음엔 나의 물건을 물어보지도 않고 정리해 주시는 것이 너무나 마음에 안들어 센소리를 하려고 기회를 엿보기도 했었지만 그럴 때마다 용돈도 더 드리고 선물도 더 사다 드리고 하면서 나를 합리화했었다.

후라이팬을 홀딱 벗겨버린 것 뿐 아니라 화분에 물을 너무 주어서 화초가 죽어버리고 어항에 물을 깨끗하게 해야한다고 물고기를 손으로 잡아 비늘이 다 떨어졌고 어항에 물이 있는지 없는지 깨끗해졌건만 물고기는 황천길 떠나고..

아파트 계단 청소에 다른 집의 사람들 컴플레인하고...그런데 그 땐 그게 정말 안 좋았지만 그럴수 있다고 참아보려고 노력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참음이 잘한건지는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관계가 좋은 쪽으로 달라지긴 했다.

30년이 지나 내가 할머니처럼 똑같은 일을 딸들을 만나면 하고 있었다. 

정말 예쁜 내새끼라 생각이 드니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인 것이다.

 시할머니의 마음을 그땐 몰랐는데 내 새끼를 보면서 너무 늦었지만 그렇게 머리로 이해 하려고 노력했던 시할머니의 사랑을 이젠 마음으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