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남들보다 강한 편인 엄마는 연세가 지긋하건만 아직도 딸들에게 대충 넘어가는 일이 없는 모양이다. 

미국 오기 전에는 내가 엄마랑 말다툼을 많이 했었고 그럴때마다 나와 엄마와의 인연이 없어지길 간절히 바랄 때가 있었다.

내가 20년이 넘게 미국에 사는 동안 딱 한번 미국에 놀러 왔는데 나가려고 하지도 않고 매일 주무시다가 돌아가셨다. 연세가 있으셔서 밤 낮이 바뀌어서 힘들다고 이해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조금은 짜증이 난 것도 사실이다. 방에 누워만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동생의 이야기는...

엄마가 홍대입구에서 인천까지 지하철을 타고 거의 2시간에 걸려 방문을 했다.

그 날은 영하 10도가 넘는 추운 날씨라 오시지 말라고 했더니 대답도 없이 점심 즈음에 도착했고

지하철을 타고 오는 노인네가 손가방과 자루 가방을 들고 아파트 입구에 있다고 연락이 와서 조금은 걱정스러워 내려갔다. 

자루 가방을 받아서 들어보니 무게가 좀 있어서 

" 그냥 오지. 이게 뭔데?" 

" 너 줄려고 가져왔어."

엄마가 나를 위해 무거움을 불구하고 가져 왔다니 뭔가 엄청 좋은건가 보다 생각했다. 

집에 들어가 식탁위에 놓고 열어보니...

80노인네 엉덩이 같이 쪼글쪼글한, 더군다나 이 추운 겨울에 싹이 퍼렇게 성이 나서 돋아 있는 눈으로 봐서도 먹으면 안될 것같은 모양새를 한 감자 5개. 잘라먹어도 될만큼 자란 싹이 기세등등한 양파 몇 개.

기대가 많으면 더 기분이 난감해지는 것인가. 순간 짜증이 벌컥 일어나서, 

" 이 추운 날 왜 이런 걸 들고 왔어? 엄마!"

"너 주려고...이것도 사려면 다 돈이다."

" 엄마! 싹 돋은 감자가 독소가 얼마나 강한지 알아? 그냥 버리지." 

"안 먹으려면 놔둬라. 내가 다시 가져갈란다."

기분이 상한 엄마는 저녁도 제대로 잡숫지 못하고 내내 심통이 나있었다. 

나더러 동생은 엄마가 치매가 왔나 보다고 길길이 뛴다. 우리에겐 이게 싸울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엄마는 엄청 속이 상한 상태로 돌아가셨단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신의 생각은 딸에게 주자는 생각만이 중요했던 것이다.

동생의 이야길 들으면서  엄마가 우리 집에 올 때 사탕을 가져다 준 생각났다. 내 아이들이 5살 7살일 때 다행히 나를 닮아서 치아가 건강한 애들이지만 너무 많은 사탕은 가능하면 안 먹이려고 특별한 날만 주곤 했는데 친정 엄마가 우리 집에 방문하면 아이들이 할머니의 사탕에 홀딱 넘어가서 나의 통제를 듣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엄마와 싫은 소리를 했었고 급기야는 화를 내고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이들은 할머니 가셨다고 울고...지금 그 아이들이 서른 즈음인데 내가 엄마와 같은 행동을 한다.

아이들 집에 가려고 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나 사탕을 준비하고 다이어트하니 달달한 것을 가져오지 말라고 하는 애들에게 적당히 살이 있어야 보기 좋다고 감언이설을 하면서 과자를 쟁인다. 아끼다가 거시기가 된 줄도 모르고 애들 준다고 가져가 보면 애들은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유효기간이다. 그러다 보면 어렵게 가져간 것을 버려야 하는 슬픈(?) 일이 발생하곤 했다.

동생한테 나의 예를 이야기하면서 엄마의 마음을 우리가 좀 헤아려 보자고 해도 아직은 젊은 지라 이해가 안되는 모양이다.

나이가 들면서 자식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기준이 안 맞을 수도 있다.

좀 더 큰 마음이라면 눈에 보이는 물건을 넘어 그 뒤에 엄마의 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지 하는 생각도 했다. 

나도 내 동생처럼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다행인 것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가진 팍팍함이 조금은 이해를 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바뀌어 가는 장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