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마켓에서 배추가 세일한다기에 정말 오랫만에 배추가격이 10불대로 떨어졌고 마침 더이상 열무 김치로 버틸 수가 없어서 한박스를 사왔다.

저녁먹고 배추를 절이고 아침엔 퇴근후 일어날 일에 대한 조금은 부담이 있는 상태로 출근했다.

마트에 들러 무와 김치 속에 함께 할 양념을 사서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고 부엌에 들어서자 깜짝 놀랐다. 소금물에 절인 배추가 말끔히 씻겨져 다라이 안에 놓여있었다.

우리 집은 남존여비가 존재하는 구식의 시댁을 가졌고 (그 당시엔 거의 같은 상황) 시집살이 하는 동안 키워진 남편의 "황제"성은 신혼에 버릇을 잡아야 평생이 편하다는 그 때의 황금진리를 나는 만들어 내지 못해 부엌은 얼씬도 안하는 남편으로 만들어 놨다.

전업주부라면 시간이라도 나누어 일을 하면 되지만 직장일과 집안 일을 도맡아 하면서 살았던 나에겐 인생의 고행길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가 물으면 시댁도 멀고 아이들도 분가한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때라 말하니 말이다.

그런 남편이 나이가 드는지 조금씩 부엌 언저리를 드나드는 징후를 느낀다.

배추를 말끔히 씻어서 정리해 놓고 사온 무를 보더니 도마와 칼을 들고 식탁에 앉는 것이다.

아무 말도 안하고 무채를 썰고 있는 동안 속 재료를 만들고 김치통을 정리해서 내려놓고 장갑을 끼고 김치 속을 버무려 김치를 만드니

지금까지 30년을 담았던 김치가 왜 몸살을 앓게 하고 허리 아파서 김치 하려면 며칠전부터 마음이 불편했나 싶었다.

김치 속과 돼지고기까지 삶아서 식탁 위에 올려주는 남편. 

내가 만들지 않아서 진수성찬인 저녁을 마쳤다. 입에 발린 말로 느낄지 모르지만 나름 정말 남편이 고맙고 감사했다.

김치 속과 배추, 그리고 돼지고기를 먹으면서,

" 김치 안 담아 먹으면 추억도 하나가 줄어드는 것 같애."

남편이 ��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이해를 못한 눈치다.

하긴 한두 번 김치 도와준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김치를 담으면서 고주알 미주알 나누는 대회들과 김치 후에 김치 속에 싸서 먹는 돼지 고기 맛을 어찌 알겠는가.

어릴 적 김장을 할 때 우리 집은 4대가 같이 살았고 겨우내 반찬은 김치가 주인지라 200포기, 즉 800덩이를 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동네 아줌마들이 함께 모여 김장을 했고 우리 집이 끝나면 옆 집으로 며칠후엔 가서 김장을 했다.

 우리 집 저녁상엔 집집마다 조금씩 다른 김치를 겨울이 깊어질 때까지 맛 볼 수 있었다.

김치를 사먹는 사람들은 모르는 김치 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맛과 표현이 멋적은 멋이 있다.

노릇한 배추 속에 내 노동과 정성을 싸 먹는 맛은 함께 해 본 사람만이 느끼는 설탕과 같은 달콤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