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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일기

나의 첫사랑 yeon seo (yeonseo) 2020-12-4  23:11:00
지금 생각해 보니 얼굴이 생각 안나는 남자아이.
국민학교를 다니다가 5학년이 막 시작한 봄에 아버지의 직장때문에 이사를 하게되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남자아이들과 수업을 할 수 있는 시기가 3학년까지였다. 그저 말수가 많지 않은 나는 학교에서 조용히 내 할일만 하는 선생님 눈에 별로 보이지 않는 - 자기 일만 하고 특별히 사고 치지도 않는 교사의 관심밖의 모범생이라고 표현하면 맞을 것 같다. 난 벙어리를 겨우 벗어날 정도로 말수가 적었다.
이유인즉, 말을 아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교육을 받았고 생각없이 함부로 말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부모님의 영향인 듯하다. 어쩌다가 기분이 하염없이 좋아서 밥상 머리에서 떠들라치면 " 밥 먹을때는 말 하지 마라" 라는 경고를 받곤 했다.
학교에서도 누가 시켜서 말을 하는 일외엔 거의 침묵하고 듣는 연습이 익숙한 터라 옆에 앉은 마음에 쏙 드는 남자 아이가 있어도 그저 곁눈으로 한번 볼 뿐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늘 그 아이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고 함께 모둠을 할때가 가장 즐거웠던 기억이다.
4학년이 되면서 남학생반과 여학생반이 나눠지고 하염없는 "사랑"을 혼자 학교를 배회하면서 키웠고 마지막 전학을 가는 날에도 차마 한마디 못하고 나중에 꼭 만나러 올꺼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그 아이 이름을 외웠다. 
지금도 이름은 정확히 기억을 한다. 하지만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 ..하긴 지금 눈앞에 있어도 알아보지 못할 나이가 되었으니 뭐 그리 서러울 것도 없다.
참으로 오랫동안 그 아이를 마음에 묻고 일기도 쓰고 편지도 써보고 했지만 한번도 찾아가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국민학교 3학년에 처음 느낀 뽀얀 안개같은 설레임과 기다림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한다. 
만약 그 친구를 찾아가 "너를 좋아해" 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미국에 와서 살다가 한국 방문했을 때 어릴 적 살던 동네를 찾았다. 마치 그리움을 만들어 준 모태의 그것으로.
하지만 어릴 적 극장 모퉁이에서 영화를 보고싶어 몰래 어른을 따라 들어가던 그 극장도, 태어나서 처음 먹어봤던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현장인 제과점도, 엄마따라 가던 시장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오로지 남아있는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 
소풍을 가는 날은 어김없이 비가 와서 기분을 망가트리던, 오래 전에 소사아저씨가 연못에서 이무기가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던 것을 죽임으로 그의 복수로 소풍이나 운동회 날은 비가 온다는 그 전설을 주던 그 학교.
새로운 건물과 학교 이름이 00 국민학교가 아닌 낯설은 00초등학교로 변신 한 후였다.
교문 입구에 수위 아저씨가 늘 눈을 부릅뜨고 내다보던 그 건물도 "반공방첩"이란 문구를 커다랗게 걸어놨던 교문의 아치도 사라진지 오래인 듯했다.
그 휑한 거리에서 들여다 본 추억의 학교에서 지난 날의 그 남자아이를 찾겠다는 생각은 아예 엄두로 못 냈던 조금은 섭섭도 하고 이해도 되는 시간이었다.

그 친구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러고 보니 색이 바랜 학교 앨범에 마저도 나는 없다. 
그렇게 몇 년을 다니고도 그 국민학교의 역사에서 나는 빠져 있었다.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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