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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일기

처음으로 술을 입에 대던 날 yeon seo (yeonseo) 2020-12-7  22:16:30
우리 가족은 술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께서는 간단한 음주에도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시고 잠에 빠지는 분이고 엄마는 종교적인 신념으로 술을 마시면 안되는 분이었다. 고등학교때까지도 술에 대한 금기때문에 한번도 술을 입에 대보지 못했고 술이 독약과 같은 레벨인지라 내가 술이 약한 사람인지 몰랐다. 내가 대학을 들어갈 즈음 대학문화중에 하나가 신입생에게 신고식(?)을 시키는 것이었다. 아마도 여대를 갔으면 영원히 몰랐겠을 일을 경험했고 그로인해 술과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고학년에 들어서면서 창밖에 벚꽃이 활짝 핀 어느날, 
우리 담임 선생님이 가고 싶은 대학을 적으라는 명령을 내린 기억이 있다.
그때야 고3을 시작한 후 얼마되지 않았기에, 우리의 꿈은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원대했기에 S대에 모두 희망, 꿈의 과를 써서 냈었다.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물이 튄 담임 선생님은 늘 "여자는...여자는"을 강조했고 S대보다 여대를 가야한다는 주장을 했다. 
그런 그의 눈에 나는 여대를 지망하기에 아주 적격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 세상 인간을 나눈다면 겨우 2종류인데 그 분류에 더군다나 한 종류로 모여있는 학교로 가라하는 것이 특별히 노는 아이도 아니었던 나에게는 정말 맘에 안들었던 기억이다. 
어짜피 하나님은 2종류의 인간들이 서로 음양을 맞춰 살도록 만들었는데 수녀 지망생도 아닌데 왜 꼭 여대를 운운하시는지..참 이해가 안갔다. 그러다 보니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안 듣고 부득 부득 우겨서 남녀공학을 지원했고 다행히도 합격을 했다. 
지금도 입시가 끝나고 학교 건물 기둥에  "자랑스런 전기대 합격자"란 타이틀이 기억이 난다. 
나의 이름이 대자보에 붙었으니 그래도 공부를 말아먹지는 않았나 보다.
 그렇게 들어간 남학생이 많다고 소문난 그 학교. 
화장실부터 남녀 평등이 아니었던 나의 모교. 화장실은 참다 참다 죽기 직전이 아니면 안가고 싶을 정도로 늘 기다려야 했다. 
10개중에 8개는 남학생용이고 2개가 여학생용인데 학교관계자들도 화장실은 사실 여자들이 더 많이 간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었나 싶을 정도로 화장실부터 차별을 당했다. 

채 한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과 선배들이 신입생 신고식을 한다고 학교 앞 주점에서 모인다는 전갈을 받았다. 지방에서 땅 팔고 논 팔고 와서 씻지도 않는다는 소문난 선배들인지라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안 가면 바로 학교생활에 애로를 느낄 수 있다는 재빠른 판단에 몹시도 거슬리고 힘든 자리였지만 인내심을 갖고 선배들의 하룻밤의 노리개가 되어 주었다. 
빈속에 사발에 받은 막걸리와 소주를 섞은 술을 받아 호기롭게 마시고 얼굴을 실룩거리면서 힘들어하니 아마도 폭풍이 다가올 것을 알았던지 "집에 가라"는 선배의 명.  거리로 거의 초죽음이 되어 나왔다. 세상에 살면서 그렇게 많이 기도해 본 적이 있었을까? 
어둠이 내 머리에 붙었다 떨어졌다...집에 가는 버스가 나타나기도 전에 비싼 신세계를 쏟아내고 말았다. 
그것도 수 많은 사람들이 모인 버스 정류장 가로수 허리춤에. 창피함마저도 상실한 채 보도블럭 난간에 쭈그리고  앉아 3월의 찬 밤공기를 감사하고 있을 때 내가 타야할 버스가 왔다.
그때쯤은 속이 좀 편해졌기에 버스를 탔건만 버스의 흔들림은 나의 육신을 요동케 했고 차마 차마 버스 안에서 나의 내장 세계를 보여줄 수 없어 내리고 또 가로수를 괴롭히고 다시 버스를 타고 내리고 가로수를 안고 몸부림을 치면서... 지옥을 오가면서 집에 도착하니 10시가 통금시간인 우리집 대문이 이미 잠겨 있었다.
거의 2시간이 걸려서  온 거리를 더럽게 하고 무사히 귀환했건만...담을 넘지 않으면 가서 누울 수 없는 현실.
지금 생각해 보니 다 토해냈어도 객기는 남아있었는지 긴 외투 자락을 생각지도 않고 담에 기어올라 가뿐히 담을 넘었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는데 "부욱" . 외투자락이 뭐 가져갈 것도 없는 우리 집 담장 위 철망에 걸려 여지없지 체중과 비례하게 찢겨 나갔다.
다행히 부모님께는 걸리진 않았다. 

그러나 그런 사건이 있은 후에 난 술을 다시는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술 냄새만 맡으면 지금도 진저리가 날 정도이니까. 덕분에 대학 내내 안주킬러가 되었고 "분위기 삭히는" 곱지 않은 시선의 주인공이 되었다.
신혼여행 때, 호텔 앞 바다에서 분위기 잡자는 남편과 와인 한 모금을 마시고 호텔을 쑥밭을 만들었던 기억도 있다.
술 아름답게 마시는 사람들이 몹시도 부러운 사람 중에 하나다. 
확실한 것은 음주운전이란 말은 내 사전엔 없다. 그것도 장점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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