랠프는 온통 상처를 입은 몸을 조용히 숨기고 있습니다. 자신을 공격한 잭의 무리들을 떠올려 봅니다.
그 아이들은 예전과 완전히 딴판입니다.
얼굴에 칠을 하고 눈빛도 바뀌어 있습니다.
랠프가 조심스레 숲 변두리로 나아가 나뭇가지를 헤치고 살펴 봅니다.
로버트가 망을 보고 있고 그 뒤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아이들은 멧돼지 고기를 먹는 모양입니다.
잔치를 벌인 것이죠.
랠프는 두려움과 함께 모진 시장기를 느껴 과일 나무에서 열매를 미친 듯이 따먹습니다.
어디선가 두 꼬마가 나타났지만 랠프를 보고는 기겁을 해서 달아납니다.
랠프는 모래 사장 쪽으로 내려 갑니다.
그러다 숲속의 공지에 이릅니다.
온통 그늘진 그 곳 한복판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다가가 보니 무언가의 백골입니다.
멧돼지의 해골-.
그 해골이 자꾸 웃는 것 같아 랠프는 해골을 힘껏 칩니다.
랠프는 성채 바위 앞 덤불로 돌아옵니다.
이제 랠프 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이먼, 돼지는 죽었고
샘과 에릭도 이젠 오랑캐가 되었습니다.
랠프는 망을 보고 있는 샘과 에릭에게 다가갑니다.
샘과 에릭은 랠프에게 떠나라고 합니다.
-랠프, 도리 같은 건 잊어버려. 추장은 너를 잡으라고 지시했어. 너를 찾아낼 때까지.
-왜 그러는 거야? 난 그저 봉화를 계속 올리고 싶어했을 뿐이야.
-우리도 몰라.
-날 붙잡아서 대체 어떻게 할 셈인 거야?
-로저는 막대기 끝을 뽀족하게 깎아 놓았어.
랠프는 상심한 마음으로 그 자리를 떠나 양치류 속으로 기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잠이 든 랠프는 무슨 소리에 잠이 깹니다.
양치류가 랠프의 몸을 가려주고 있었습니다.
랠프 쪽으로 다가 오는 한 오랑캐의 다리가 보였습니다.
-그 자식이 여기 숨어 있겠다고 한 게 틀림없니?
잭의 목소리에 이어 쌍둥이의 비명 소리가 들립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는 동안 숨막히는 정적만 흘렀습니다.
랠프가 성채 바위 쪽을 올려다 보니 꼭대기에서 잭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곧이어 떨어지는 바위.
쾅 소리와 함께 대지가 진동합니다. 랠프는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가 떨어지며 나뭇가지에 부딪힙니다.
랠프는 흙 위에 무릎을 꿇고 대지가 원상으로 회복되기를 기다립니다.
패거리들이 바깥쪽에서 쑥덕이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더니 막대기 끝이 불쑥 나타납니다.
공포에 질린 랠츠는 그 틈으로 막대기를 들이대고 힘껏 찔러댑니다.
밖에서 신음 소리가 납니다.
그러더니 다음 순간 연기가 그 주위로 밀려 들어옵니다.
-연기가 난다!
아이들이 랠프를 잡기 위해 산불을 놓은 것입니다.
랠프는 당황해서 숨을 곳을 찾아 헤맵니다.
나무로 기어 올라가는 것보다는 나무 줄기 사이에 숨기로 합니다.
불은 크게 번집니다.
오랑캐 하나가 덤불 속에 숨은 랠프를 발견하고 맙니다.
랠프가 휘두른 막대에 오랑캐가 넘어집니다. 그러자 다른 오랑캐들이 몰려옵니다.
랠프는 날아오는 창을 피하며 미친 듯 달립니다.
산불은 계속 번져갑니다.
랠프는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넘어집니다.
오두막이 불길에 휩싸이는 게 보입니다.
랠프는 모래사장에 뒹굴다 비틀거리며 일어섭니다.
그가 이제는 포기한 듯 기운이 빠져 올려다 보는데...
랠프의 눈에 들어온 건 큼지막한 챙모자입니다.
한 해군 장교가 모래 위에 서서 랠프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그 뒤쪽으로 군함에 달린 작은 커터 배가 보입니다.
-어른들도 함께 있니?
랠프는 고개를 저으며 몸을 돌립니다.
그곳에는 온몸에 진흙 칠과 줄무늬 색칠을 한 소년들이 손에 뾰족한 창을 들고 반원을 그린 채
서 있습니다.
-재미있는 놀이는 하는군. 너희들이 피운 연기를 보았다.
너희들을 데려 가겠다. 모두 몇 명이지?
랠프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몇 명인지 모르니까요.
-대장이 누구냐?
랠프가 큰 소리로 대답합니다.
-접니다.
붉은 머리 위에 이상한 검은 모자를 쓰고 허리께에 망가진 안경 조각을 차고 있던 소년이
앞으로 나가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가만이 있습니다.
랠프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이 섬에 와서 처음으로 말이지요.
[슬픔에 감염되어 다른 소년들도 몸을 떨며 흐느꼈다. 그 소년들의 한복판에서 추저분한 몸뚱이와 헝클어진 머리에 코를 흘리며 랠프는 잃어버린 천진성과 인간 본성의 어둠과 돼지라고 하는 진실하고 지혜롭던 친구의 추락사가 슬퍼서 마구 울었다.]
-파리대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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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골딩의 명작 [파리대황]의 완독을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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