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씨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애틀랜타에 살고 있는 Ann Roh 라고 합니다.

MissyWriter 로 허락해 주셔서 덥썩 '땡큐'하고 나서는, 아이쿠! 내가 뭘 했지?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부담 없이 그냥 이야기하듯 써보기로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시골 소읍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 어느 날,

여중 입학시험을 치르러 서울 가는 기차를 탔던 것이

가장 큰 ‘나들이’ 였던 시골뜨기의 인생이

46년이라는, 인생의 2/3가 되는 긴 세월을

이렇게 바다 건너 먼 땅 미국에서 살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미국에서도 중남부에 위치한 조지아주의 애틀랜타는

내겐, 마가렛 미첼의 소설‘Gone with the Wind’ 의 배경에나 나오는

옛날 옛적의 도시였다.

마치 ‘엘리스의 나라’에서나 나오는... 멀고 먼 도시...

모두들 살기 좋다는 천사의 도시 '캘리포니아’를 떠나

꿈속에서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이 낯선 도시로 이사를 와서

벌써 10년째 살고 있으니,

우리 인생의 나침반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나침반은 움직이고 있겠지?

우리의 의지대로?

아무래도 아닌 거 같단 말이지..!

36년을 살았던 캘리포니아를 떠나 사계절이 있는 곳을 찾아 둥지를 옮긴 후,

애틀랜타에 봄이 오고 가을이 오면 그 아름다운 빛과 찬란함에

새삼 놀라고 감사해하면서 여름의 무더위를 견뎌내고 있다.

한국과 비슷한 사계절 기후에,

비교적 온화하여 한인들의 유입은 매년 증가 추세인 거 같다.

고국을 떠난 지 반세기가 가까워 오지만 역시 나의 뿌리는 한국.

마음은 늘 고향을 향한다.

한국을 방문하면 내가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은,

'모양성'이다.

지금은 ‘고창읍성’이라는 낯선 이름으로 불리우지만

우리는 그곳을 ‘모양성’이라 부른다.

신흥동 584번지- 나의 어릴 적 집에서 성 입구까지 가려면 천천히 걸어 20분 정도다.

신작로를 따라 걸어가다 조금 언덕진 길을 휘돌아 가면

드디어  ‘공북루’ 입구에 다다른다.

공북루에 들어서면 시야에 넓게 펼쳐진 성안의 뜰이 들어오고..

그 뜰을 한참 걸어 올라가면 왼편으로 계단들이 예쁘게 놓여 있고, 

그 계단들을 따라 올라가면 고창이 배출한 시인, 미당 서정주 님의 시비 

‘국화 옆에서’ 가 서 있었다.

국화 옆에서

              서정주 / 시인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시비 앞에 서서 싯귀를 읊조리다 보면, 

한 소절, 한 소절이 깊이 다가와 마음을 두드리곤 했다. 

시인의 야윈 듯 하지만, 흔들림 없는 정갈한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기도 했다.

(훗날,그가 창씨 개명을 하고 태평양 전쟁을 찬양하기도 했다는 친일/반민족 행위자 였다는 말을 듣고 실망/분개하기도 했지만 그 시대, 우리 민족사의 슬픈 자화상이 아니었을까. 서정주의 아버지는 2대 부통령을 역임한 친일파 김성수 집안의 마름(종)이었다. 서정주는 14세에 서울로 상경하여 중앙고보 재학중에 광주학생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구속되어 퇴학을 당했다. 18세에 성북구 개운산 대원암 석전 스님 밑에서 수학했고 동아일보에 시 ‘그 어머니의 부탁’으로 등단했다. 1938년 23세에 ‘애비는 종이었다. 스무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는 ‘자화상’을 남겼다.)

자화상

     - 서정주 -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 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니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별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서정주 시비를 지나 성안 뜰을 조금 더 올라가면

오른편에 수줍은 듯 피어있는 수려한 연꽃들 사이로

여인의 누드 조각상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연못이 나오고,

연못을 돌아 조금 더 올라가면

고창군 소재지의 유일한 여학교였던 교정의 건물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난,

우리 초등학교 몇 명이 함께 서울의 여중에 입학시험을 치렀지만

유일하게 합격하여 서울 유학의 꿈을 이루어 여중을 서울에서 시작하였다.

은행에 다니던 큰언니의 자취방에 얹혀 지내며 시작한 서울 생활은

새로웠지만 외로웠다.

뭔가 퉁명스레 들리던 전라도 사투리는 어느새 부드러운 서울 말씨로 변하고,

내 언니는 광화문의 에스콰이어 제화점에서 반짝거리는 새 구두도 맞춰 주었다.

그날의 그 두근거리던 기분 좋은 느낌을 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실력 빵빵한 영어 선생님에게 배우는 영어 시간은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대부분 싫어한다는 수학, 귀한 시간 마저도 싫지 않았다.

그러나,

외로웠지만 새로웠던 나의 유학 생활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언니가 대학원에 다니던 형부와 결혼하고 시댁살이를 시작하면서

나홀로의 서울 생활은 여러모로 부담이 되면서

얼마 가지 않아 서울 생활을 접어야 했고

고향으로 내려와 모양성과 옛 친구들을 만나 반가운 해후를 했다.

고향에서의 생활은,

옛친구들을 다시 만나서 좋았고, 익숙함이 좋았다.

나의 두 언니가 다녔던 학교였고,

작은 읍 소재지이기에 대부분의 선생님들도 친분이 있는 분들이었다.

영어 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으레 나를 불러 먼저 챕터를 읽게 하셨다.

서울에서 실력 빵빵한 선생님에게서 배운 비교적 정확한 발음 덕분이었는지,

어려서부터 '어나운서’ 하라는 말을 듣곤 했던

낭랑한 목소리 때문이었는지…

아무튼 수학/기하 시간에도 비슷한 상황이 생기곤 했다.

선생님 한 분은 혼잣말처럼..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하더니 그 말이 맞네!

칭찬이셨겠지..?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서울 학교에서 가졌던 ‘배움의 challenge’ 가 빠져 가면서 허탈감 같은 것이 밀려오는데…. 힘든 사춘기의 시작이었을까..?

세계사 선생님이 기억난다.

수업 종이 울리면 들어오셔서 출석을 체크 한 후,

칠판에 빼곡히 가르칠 내용을 적는다.

학생들은 그 내용을 그저 얌전히 노트에 복사해야 했고,

그리고 외워야 했다.

No interaction whatsoever..

난, 그런 지루한 여름날 오후이면,

아무도 몰래 교실을 살짝 빠져나와

나 홀로 소나무 숲을 하염없이 거닐기도 하고,

솔내음 가득한 나무들 사이의 풀밭에 누워서,

하늘 높이 쭉쭉 뻗은 아름드리 소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오수에 빠져들기도 하며..

그 시절의 우울함과 답답함에서 나를 숨 쉬게 해 주었던 것 같다.

봄이면 벚꽃의 행렬이 장관을 이루었고,

겨울이면 눈부신 설경이,

여름엔 아카시아 향기가,

가을엔 코스모스의 물결이 우리들의 정서를 일깨워 주던 곳.

모.양.성.

그러나,

공부엔 점점 흥미를 잃어갔고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읽고 싶은 허기증은 깊어져 갔지만

삶에 대한 회의는 더욱 짙어져만 가던

암울한 시절이었다.

.

.

암울하기만 했던 지난 시절을 돌아보는데도

왜 내 입가에는 미소가

마음엔 평화의 기운이

가득할까..?

그 시절,

그 암울함이 있었기에

그 사색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음을 아오니

어찌 감사하지 않으리오.

사시사철, 성안의 여기저기,

나의 숨결이 깃들어 있을 나의 마음의 안식처,

모양성이

진정..

그리워지는 오늘,

오는 가을엔 꼭 너를 보러 가겠어!

기다리렴!

고창읍성

자연석 성곽으로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왜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했다고도 하고, 숙종 때 완성되었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백제 때 고창 지역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것에서 모양성이라고도 불린다.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대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서 국난극복을 위한 국방관련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둘레 1,684m, 높이 4~6m, 면적 50,172평으로 동서북문과 옹성 3개소, 치성 6개소, 성밖의 해자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헌,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 2지, 4천이 있었으나 전화로 대부분의 건물이 손괴된 것을 1976년부터 복원해오고 있다. 지금까지 22동 중 14동(동헌·객사·풍화루·공북루·진서루·등양루·성황사·관청·작청·내아·향청·서청·장청·옥)이 복원되었고 앞으로 8동의 관아 건물도 복원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