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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iley의 뜨개공방

두개의 고향 hey kyung lee (paseoka) 2023-11-20  07:16:45
나는 이제 또다시
중요한 결정을 할 기로에 서있다.
부산에서
지난 6개월간 극심한 아토피를 겪으며,
삶이 너무 피폐했었다.
콧물이나 흘리고 재채기나 하던 그런 미국에서 겪었던 알러지와는 차원이 달랐다.
약을 먹어도 주사를 맞아도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갈수록 더 심해지고 리바운딩 현상까지 와서
눈두덕에만 있던 피부병이 코와 입술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목. 허벅지. 팔 등… 예고없이 어디든 번지며 가려웠다.
지난 4개월동안 먹은 항히스타민제, 그리고 스테로이드연고
그모든것들을 도대체 왜 복용하고 바르는지 알수없을정도로
효과라고는 하나 없었다.
약을 의심하고 연고를 의심하고
결국엔 의사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딸을 한국에 홀로 두고 미국행을 강행했다.
켈리포니아에서 살당시
나는 극심한 콧물 재채기 알러지를
13살이었던 딸은 심한 아토피를 얼굴에 겪으면서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안고
조지아주로 떠났을때에
몇년간 딸아이를 괴롭히던
얼굴의 아토피는
일주일만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나에게 딸아이와 똑같은 얼굴 그자리에
아토피가 생겼던게 생각난다.
하지만 그땐 그저
가끔 나타났다 사라졌고
그 범위도 매우 좁았었다.
그때의 그 아토피가 부산에 와서 다시 재발하며
범위를 자꾸만 확대시키는것이다.

딸아이는 혼자 살아보는것이 꿈이기도 하고
현재 일하고 있는 영어학원에서
원어민샘을 새로 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내년 2/15까지 일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하기도 해서
나혼자 급하게 비행기를 타고
캘리포니아로 오자마자 난 부모님의 주치의를 찾아갔다.
그날 바로 주사를 맞았고
약을 처방받아 하루한알 자기전 먹기시작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그리도 심했던 아토피가 신기하게도 사라지고 있다.
한국에서 피부과를 다니며, 일주일에 한번 주사맞고
약을 하루에 두번 아침저녁으로 먹길 4개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온몸으로 번져만 가던
이놈의 피부병이
켈리포니아에 온지 2주일만에 호전반응을 보이는것이다.
그무엇보다 가려움증이 없어졌다는것이
정말 살맛나는일이다.
물론 가렵지가 않으니 긁지않게되어
더 좋아지는것이지만 말이다.
긁지않기위해 온몸을 손바닥으로 때리고
물수건으로 긁기까지 했던
그순간은 악몽이었다.
오죽하면 미련없이 급하게 비행기를 타고 왔던가…

내가 부산에 같이 살때엔 아무리 음식을 해놔도 안먹고
밖에서 혼자 마라탕을 먹고들어올정도로
집밥을 안먹던 딸아이는
매일저녁 일마치고 들어와서는
마치 유투버처럼 페이스타임으로
요리하는순간부터 앉아서 맛있게 먹는 모습까지
먹방을 찍듯 나와함께 공유한다.
내가 시차가 있어서
여기시간으로 새벽 2시면 눈을 뜨게되고,
마침 딸아이는
그시간이 퇴근해서 집에 들어와
저녁요리를 하는 시간인것이다.
파스타, 만두국, 카레등을 만들면서
비주얼깡패의 음식들을 만들어내는 딸을 보며
너무 기특한 나머지 알수없는 희열을 느낀다.
가르치지않았는데도 평생 보고 먹고하며
나에게서 익힌 소소한 기술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친한언니가 놀러오라고 했다며,
돈을 주고 뭘 사가느니
집에 내가 사두었던
호박두개가 냉장고에 있었는데
그 호박두개를 가지고
호박전을 만들어 간다는것이다.
호박전을 다 만들고나서 통에 담는데
밑에 paper towel 을 까는것이며…
뚜껑을 덮기전엔
비닐랩까지도 씌워 뚜껑을 덮는다.ㅎㅎㅎ
내가 하는걸 그동안 다 봐왔다는것아닌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수도 있겠지만,
평소 내가 알던 딸아이는
전혀 살림살이에
1도 관심이 없을뿐더러
내가 뭘 좀 가르치고
기술을 전수하려해도 절대적으로
원치않았고,
배우려들지도 않았던터라, 나에게는 그저
신기할뿐이었다.
정말 백마디의말보다는
한번의 행동으로 보여주는게 낫다는걸
진심 깨달았다.
군만두를 담아내는 접시의 모양..
간장을 맛을내기위한 작업..
만두국을 퍼내고나서
마지막에 하는 데코레이션까지…
그저 그건 예술이었다.
난 이제 시차를 2주만에 극복했고
더이상 새벽 2시에 깨지 않는다.
딸아이도 그걸 아는지
나에게 더이상 페이스타임을 하지않는다.
모든것이 이렇게
자연스레 물흐르듯 흐르며,
딸아이의 독립이
한국이란 낯설면서도 낯설지않은
엄마의 고향에서부터
첨 시작을 하게되었다.
나는 딸아이가 독립한곳이
한국이어서 그나마 덜불안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것이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미국이었다면
차운전부터 치안까지
절대로 시집보내기전
독립은 반갑지 않았을터이지만,
한국에서의 독립은
왠지 상큼하다.
개념없이
비싸고 몸에도 좋지않은 설탕물같은
스타벅스나 공차 음료를
거의 매일 사마시던아이가
이젠 엄마가
집세만 해결해주니
나머지 공과금. 관리비
그밖에 먹고사는걸
혼자 해결해야만 한다는 생각에
그런 음료들도
엄마가 떠난이후로는
단한번을 안사마셨다는말에
나는 그야말로 충격을 받았다.
진즉에, 혼자두고 올껄 그랬나 싶기도 했다.
내가 생각한
어리고 철없던 우리딸이
이렇게 돈에대한 개념까지 있는줄 몰랐다.
내가 그아이옆에 있는게
오히려 ‘독’ 이었다는걸 새삼 깨닫고 있다.
암튼 난,
이렇게 켈리와서 피부문제가 해결되가고 있고
딸아이는 먹고사는일이 소꼽장난하듯
재미나게 진행되어가고 있으면서
인생의 책한장이 또 넘어가고 있다.
이젠 한국 아파트가 2년 계약이 끝나기전에
아파트안에 있는 짐들을 해결하고
딸아이도 미국으로 들어와
학업을 마쳐야 하기때문에,
난 이곳 캘리포니아에서
또다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꾸며야 한다.
지긋지긋했던 알러지때문에 떠났던 이땅에
알러지때문에 다시 돌아오는
그런 아이러니칼한 현실을 생각하면
인생이 원래 그런건가 싶다.
또한,
인간들이 다 나와같이 제멋대로 가고싶은데로 떠나고
이사가고싶은데로 가서 살기위해
집도팔고 차도팔고
그렇게 순식간에 팔아치우고 또 사고
그런식으로 돌아다닌다면,
이세계의 경제가 얼마나 좋아질까 생각해본다. ㅎ
아마 불황이 아니라 활황을 맞을것이다. ㅋㅋㅋ
웃을일만은 아니다.
집을 팔고 모든 이삿짐을 한국으로 보내고,
이제 이곳 켈리에서 내가 가진것은
남겨져 있는 가족들 뿐이다.
이제 다시 삶의 터전을 꾸리고 살아가야한다.
뭐지? 이자신감은? 아무걱정이 없다.
가진 돈이 넉넉하지도 않고
나이는 이미 50대 중반으로 와버렸는데도
왜 이리 평온을 유지하는것일까?
음,,, 난 배웠다. 한국에 살면서…
집없이도 차없이도 행복했었고,
이젠 차를 필요로 하지만
지난 과거처럼 무슨차를 타느냐가
더이상 중요하지않다.
그저 잘 달리기만 하면 된다.
외관상 너무 찌그러지거나 더럽지만 않으면 된다.
명품차가 아니어도 좋고
가죽시트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꼭 흰색이 아니어도 되고,
썬루프가 없어도 만족한다.
마을버스나 택시를 타는일만 아니면
뚜벅이생활도 좋다.
물론 미국에서는 불가능한일이지만 말이다.
집은 그리 크거나 새집이 아니어도 상관없고
내 안방이 꼭 넓어야 하는것도 아니며,
될수있으면 작고 정원이 없어도 된다.
가장 중요한건
집이 꼭 내집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이다.
번화하고 내지는 학군이 좋아야하고
그런 속박에서 벗어난 나이가 되버렸다.
그리고 아파트에 살다보니
그 답답함에도
오히려 안도감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고,
복층이 아닐때의 편리함도 이젠 알게되었다.
층계를 오르내리며 그층계에 서서
올려다볼 높은천장에 달린 샹젤리아가
더이상 나에게는 로망이 아니다.
무릎도 아껴야하고,
시간도 귀중하지만
돈도 절약해야할 나이가 된것이다.
친구가 이사한 동네를 삼일동안 가봤다.
친구도 혼자사는 친구라서
이박삼일동안 맘편하게 쉬다가 왔다.
겉모습이나 하는짓이 마치 일본 후쿠오카의
오래된 작은마을처럼 고즈넉한…
편하고 오래된 친구..
같이 있으면 배울게 많은 친구다.
둘다 막내를 임신한채 배불러 아이들 학교에서 만난지가
벌써 이십년이 넘어가고 있다니…
그친구가 이사한지 한달됐다는
그곳에 가서
아… 내가 살곳이 여긴가?
하는 마음을 안고 돌아왔다.
여러모로 나의 처지와 맞을듯한 동네다.
감사할일이다.
호수를 끼고 있는 마을에서
산을 타고 차로 십분정도 올라가면
카페도 있고
마을이 다 내려다보이는 그런 산도 있다는건 축복이다.
남편이 우리곁을 떠날때 내등뒤에 커다란 산이 우뚝서있던
라크라센타로 딸아이가 5살 되던해에 이사를 갔었다.
이젠 그딸아이가 20살이 넘어가고 있고
나는 또다른 산맥에게 나의 등뒤를 맡긴채 살아가련다.
켈리포니아에서 삶의 터전을 다시 잡는다는게
이렇게 설레이는것은
나에게 부산이라는 터전이
지난 일년반이라는 시간동안 존재했기 때문이다.
잠깐 페리를 타고
멀리서 부산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내마음에
두개의 고향이 살아숨쉬는듯한 기분….
이것만으로도 난 부자라는 자부심을 갖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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