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참 고달픈 지인이 있습니다. 성격이랑 외모랑 다 괜찮고 집안도 좋고 학벌도 높은데 남편을 잘 못 만난 것 같습니다. 남편이 말도 못하게 게을러서 경제활동을 안 합니다. 그런 주제에 노름꾼에다 바람까지 피웁니다. 생계를 책임진 그녀는 밤낮없이 매일 일을 해야만 합니다. 그런데도 남편으로부터 욕과 주먹질을 일상으로 당합니다. 아이들만 다 성장하면 이혼을 한다고 하는데 별로 실행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몇 년전, 한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녀가 부탁을 합니다. 내 고모한테 손금을 좀 봐달라고. 자신의 불행한 인생이 언제쯤 나아지는지 알고 싶다고. 고모가 손금 잘 본다는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고모한테 사진으로 찍은 그녀의 양쪽 손바닥을 보여주었습니다. 전등불 아래서 한참을 살펴보던 고모가 말했습니다. 자세히 알려면 손을 구부려도 보고 오무려도 보고 옆에도 세세하게 봐야하지만 일단 평면 손바닥 사진으로만 봐서는 박복한 여성이랍니다. 남편을 잘 못 만났다고요. 남편복이 지지리도 없답니다. 평생 자기가 벌어먹여야 할 팔자랍니다. 거의 맞네요.

지난 한국방문 때, 그녀가 또 부탁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사주를 좀 봐 달라고. 남편이랑 본인의 생년월일,시를 줍니다. 나는 아무말 않고 그녀가 준 것들을 챙겨넣었습니다. 그녀의 딱한 사정을 알기에 타박을 못하겠더라고요. 오죽하면 그러겠어요. 또한 나도 궁금했습니다. 왜 그녀의 인생이 그렇게 평탄하지가 않은지. 언제 그 고난이 끝나는지.

14일 격리 중 할 일이 없기에(책 보고 앞뜰에 나가 잠깐 운동하고 친구들과 통화하고 텔레비전 시청해도 시간이 남습니다)일단 고모에게 지인의 사주를 ‘카톡'으로 보냈습니다. 몇 년전에 사진손금 봐 준 사람의 사주라는 말은 물론 안 했습니다.

이틀 후 고모에게 전화로 결과를 물었는데 참 신기합니다. 전에 손금으로 풀이했던 말을 똑같이 하는 겁니다.
“둘이 잘 못 만났구나. 세상에, 상극도 상극도 어쩌면 이런 상극이 있냐.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되는 인연이 만나서 여자의 삶이 평생 가시밭길이요, 언덕길이로구나...”

위의 말 외에 몇가지 더 지인에 대해 얘기했는데 손금보고 했던 얘기랑 백프로 일치했습니다. 현재 그녀가 처한 상황을 눈 앞에서 보는 듯 읊었습니다. 30년 이상 책을 보며 손금이랑 사주역학을 공부했다더니 고모는 꽤 영험했어요.

예전 글에도 썼지만 내가 어릴 때 고모가 우리 부모에게 말했지요. 내 손금에 결혼을 두 번하는 걸로 나온다고. 그리고 자식이 없다고. 그걸 막으려면 늦게,아주 늦게, 삼십 넘겨 사십 가까이 시집을 가야 평탄하게 자식 낳고 잘 산다고. 그러나 우리 부모는 고모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나를 일찍 결혼시켰(내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습니다. 나는 고모의 말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첫 결혼을 실패한 후에야 엄마가 그 말을 상기시키더군요.
“그때 네 고모의 말을 기억하냐. 늦게 결혼해야된다고 했는데 우리가 고모 말을 안 들었구나...”

사실 나는 사주나 관상이나 손금같은데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무당친구한테도 내 점사를 부탁해 본 적도 없습니다. 미래를 읽는 혜안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왜 자기 인생들은 그 모양 그 꼴들일까, 콧방귀를 뀌었지요. 고모가 우리 큰 돈 잃은 일과 내 주위에 사람많은 걸 내 손금으로 한 번 맞추었지만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더랬어요. 손금이 통계학으로 꽤 정확하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구나, 처음엔 신기해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는 ‘어쩌다가 장님 문고리 잡은 거겠지’ 폄하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고모가 지인의 사주와 손금을 정확하게 일치시켜 풀어내는 걸 보고 오호, 싶어요. 흥미가 생겼어요. 고모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예전에 봐 준 내 손금이랑 현재의 손금에 대해 어떻게 말해주는지 알아보고 싶은 겁니다. 만약 얼토당토 다르게 말하면 그건 순 엉터리겠지요. 세월이 가면서 손금도 변한다지만 기본적인 틀은 영원할 테니까.

14일의 격리를 마치고 닷새 동안에 만날 사람 만나야하고 지인들의 부탁받은 물건들 사야하고 정말로 바빴지만 틈을 내 고모집을 찾아갔지요. 거의 5년만입니다. 매년 한국을 갔었지만 고모한테 들리지 못했어요. 하도 시간이 없어서.

한밤중, 무당친구가 저절로 스르르 열린 문을 향해 '어서오세요' 하고 절 했던 예전의 그 지하방에서 고모는 아직도 혼자 살고 있었어요. 에구머니, 5년 전보다 잡동사니들이 더 늘어났네요. 벽이고 바닥이고 빈틈없이 가득히 쌓이고 걸린 것도 모자라 현관까지 정신없이 늘어져 있습니다. 고모부가 늘 하던 불평대로 물건들에 치여서 사람이 바깥으로 나가야할 판입니다. 나 하나 앉을 자리도 없어서 발로 물건들을 이리저리 치워야 했습니다. 고모집을 나가서 봐야할 볼일이 산더미같기도 했지만 나는 얼른 손바닥부터 내밀었어요. 조금이라도 빨리 그 집을 나가고 싶었거든요. 정리정돈이 제대로 안 된 곳에서는 몸과 마음이 불편해져서요. 또한 무당친구가 했던 행동이 기억나서 뭔가 그 집이 무서워요. 으시시합니다. 대낮이긴 했지만 지하라서 햇빛이 제대로 안 드는 상황도 일조를 했겠지요.

거의 비슷했습니다. 몇 년전에 큰 돈 잃었다. 돈 걱정 안 하고 산다. 주위에 사람 많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려 줍니다. 나한테 ‘도화살'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녀노소 모두 나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랍니다. 도화살이라면 외모가 뛰어나거나 성적(性的)인 매력을 풍기는 사람에게나 있는 줄 알았던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지요. 내가 키도 작고 이렇게 형편없이 못 생겼는데도 그런 게 있어요? 고모가 대답했어요. 외모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고. 성격, 가치관, 체형, 눈빛, 낯색, 옷스타일, 음색 등을 포함, 사람의 마음과 눈길을 끌만한 전체적인 분위기를 갖춘 사람이 도화살의 범주에 든다는 겁니다. 내가 그런 걸 갖추었다는 겁니다. 술 잘 사고 밥 잘 사서 내 주위에 사람이 많은 줄 알았더니 도화살이라, 참 재밌네요.

또 한 가지 새로운 사실. 30대 후반이나 40대 초반에 내가 수술을 한 걸로 손금에 뜬대요. 수술한 적이 없다고 했더니 고모가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이상하다, 분명히 나오는데. 의아해 하는 고모의 태도에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니 아이고, 수술을 했네요. 너무 개인적인 일이라 여기다 밝힐 수는 없지만 내 나이 서른 일곱에 작은 수술을 한 번 했었습니다. 무척 놀랍지요?


오, 지난 번 고모가 봐 준 손금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늘 나를 찜찜하게 하던(나쁜 일은 다 맞는다지요)말이 있었어요. ‘60 언저리에 큰 수술 한 번 할 거’ 라던 말. 손금도 변한다더니 다행히도 그 라인이 없어졌답니다. 그동안 내 몸을 끔찍히 챙긴 때문일까요. 운동이야 원래부터 많이 하는 편이지만 고모로부터 그 말을 들은 후부터는 몸을 보하는 식품들을 엄청 많이 먹었지요. 홍삼, 인삼, 경옥고, 흑마늘, 꿀, 대추. 그리고 온갖 종류의 비타민 등. 수술할 일이 생길까 무서워서요.

고모가 또 하는 말. 조만간 부동산이 하나 수중에 들어오게 될 거랍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지금 살고있는 집 외엔 부동산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나는 고모에게 말했습니다. 다른 건 얼추 다 맞춘 건 같은데 부동산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고모가 대답했지요. 분명히 뭐가 하나 들어 온다. 기다려 봐라...

미국에 들어온 며칠 후,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걸음을 잘 못 걸어 실내에서만 생활을 하나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던 사람이. 앞으로도 십년은 거뜬히 살 거라고 의사도 장담했었는데 갑자기. 시어머니가 살던 집이 우리 앞으로 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