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정연씨는 안절부절 하기 시작했다.
벽에 걸린 시계를 몇 번이고 흘낏거리며 쳐다 보고, 남편의 얼굴 표정을 살피고, 점점 컴컴해져 오는 창 밖을 내다보고. 정연씨의 얼굴에선 숨길 수 없는 불안함이 배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다. 그녀는 지금 무척 불안하다. 불안하고 무섭다. 하루일과를 마친 지금 곧 집에 들어가야 하는 것 때문에 그렇다.
할 수만 있다면 그냥 이 가게에서 밤을 새우고 싶다. 스프링이 여기저기 튀어나오기 시작하고 솜과 스펀지가 뭉쳐 있는 오래된 소파는 정연씨의 몸을 안식하게 해주지 못하겠지만 집에 들어가는 건 정말이지 싫은 것이다.

 정연씨의 안절부절하는 심경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남편의 얼굴에선 아무런 표정이 없다.

"저........"

정연씨는 어렵게 남편을 향해 입을 떼려다 다시 마음을 추스린다. 씨알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누구보다 정연씨 자신이 잘 알고 있기에. 정연씨가 남편에게 간절하게 하고 싶었던말은 딱 한 가지였다. 오늘 밤 집에 들어가지 말자는 것. 냄새나고 빈대가 득실거리는 곳이라도 좋으니 어디 싼 모텔이라도 얻어  오늘 밤을 보내자는 것.

정연씨는 남편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보며 한숨을 푹 내어 쉰다. 그리고 점심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며 집에 돌아 갈 채비를 챙긴다. 도살장에 끌려들어가는 것 처럼 끔찍하게 싫지만 별 다른 방법이, 집에 들어가지 않을 뾰족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아아, 얼른 집이 팔려야 할텐데....

집이 얼른 팔리는 것, 정연씨가 지금 노심초사 바라는 것이다. 몇 달 째 매물로 내 놓은 집에 적정한 임자가 나타나 하루라도 빨리 얼른 그 집에서 이사를 나가 것이다. 그러나 싯가보다 거의 반이나 싸게 내놓은 집은 아직 팔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아니 아예 바이어의 문의 조차도 없다는 것이다.가뭄에 콩 나듯 누가 싼 가격에 혹해 어떻게 입질을 해보려 하다가도 집에 읽힌 사연을 듣고나면 질겁을 하고 도망을 친다는 것이다.

"글쎄요....지금 가격에서 좀 더 떨어뜨리면 혹시 임자가 나타 날지 몰라도 이래가지고선 내년까지도 팔리지 않겠는데요...."

부동산 업자에게 연락을 해볼 때 마다 듣는 똑같은 소리다. 그러나 지금 가격에서 더 이상을 내린다는 것은 힘들다. 지금 내놓은 가격으로 집이 팔린다해도 은행의 모게지 빚을 반에 반도 못갚을 텐데 말이다.

"이런 떡해 먹을! 장안의 집 주인들한테 다 물어 봐. 어느집 집 치고 사람 안 죽어 나간 집이 있냐고?!"

정연씨의 남편은 분통을 터트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연씨의 집은 사람이 병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죽어나간 게 아니었다. 사람이 살해된 집이었다. 바로 정연씨의 큰 딸이.

정연씨는 피에 젖은 긴 머리카락 사이로 치켜떠져 있던 큰 딸의 허연 눈을 생각하면 심장이 멎는 것 같다. 그리고 대낮, 가게안 임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오싹 소름이 끼친다.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 보게 된다. 딸이 죽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 피에 젖은 검은 머리를 늘여뜨리고 이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것 같아서.

비극의 시작은 정연씨 부부가 십 몇 년의 스왑밋 장사로 모은 돈을 밑천으로 백만불 가까이 나가는 현재의 집을 사면서부터였다. 방 두 개짜리 타운 하우스에서 두 딸과 십년을 넘게 오글오글 모여 살다가 무리를 해서 방 다섯 개짜리의 이층 집을 구입했던 것이다.

새집으로 이사를 가던 날 정연씨는 뒷뜰에 물 한 그릇을 떠놓고 하늘을 향해 수십 번 절을 했다. 어릴 때 할머니가, 그리고 어머니가 새집으로 이사를 할 때 마다의 모습을 본 정연씨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집 어딘가에 비티고 있을 신에게 신고식을 한 것이었다.

제발제발 이 새집에서는 돈을 더 잘 벌도록 해주세요.... 그래서 한 달에 몇 천불씩 나가는 집 페이먼트를 아무 문제없이 하도록 해주세요....또한 우리 가족들 모두 몸 건강하게 해주세요....나이들어 건강이 점점 나빠지기 시작하는 제 남편을 지켜주세요....그리고 나이 서른을 넘어서도 결혼 할 생각이 없는 우리 큰 딸 올핸 꼭 좋은 신랑감을 얻게 해주세요.....

신에게 간절히 올린 정연씨의 기도가 효험을 본 것일까.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직장을 다니면서, 그리고 별로 빠지지 않는 인물을 가지고도 남자 친구 한명 없이 빌 빌하던 큰 딸이 얼마후 애인을 사귀기 시작 한 것이다. 더구나 신랑감도 번듯한 사람이었다. 어릴 때 이민 온 교포로 한국 말을 잘 못하는 것만 빼놓으면 흠 잡을 것 없는 신랑감이었다.

정연씨는 정말이지 뛸 듯이 기뻤다.

새 집에 이사와서는 좋은 일만 생기는 구나!

그러나 정연씨의 기쁨은 몇 달후 극도의 경악과 슬픔과 비탄으로 변했다. 큰 딸이 남자친구의 칼에 맞아 사망한 것이다. 그것도 집안에서, 큰딸의 방안에서.

두어달 후로 잡힌 결혼식을 앞두고 가끔씩 딸의 애인이 와서 자고 갔다. 과년한 딸이라, 그리고 미국인지라 장래의 남편감이 와서 잠을 자고 가는 걸 정연씨 부부는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나던 그날, 늦은 밤, 딸의 애인이 초인종을 눌렀을 때도 정연씨 부부는 별 다른 이상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위감이 술이 좀 과하게 취했구나, 했을 뿐.

딸의 애인이 방에 들어간 후 문이 닫히는 걸 보고 정연씨 부부는 곧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정연씨는 어떤 섬뜩한 느낌에 눈을 떴다. 분명 한 여름인데도 어디선가 한기가 느껴지는 듯한 느낌에.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설쳐대는 좀도둑 때문에 하루종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스왑밋 일이 극도로 피곤한지라 한 번 잠이 들면 떠메고 가도 모르는 정연씨가 한밤중에 눈을 뜬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정연씨는 떴던 눈을 다시  감고 잠을 청하려다 언뜻 머리를 들었다. 어디선가 으흐흐, 누군가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정연씨는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정연씨는 울음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귀를 세웠다. 울음소리는 딸 방에서 나고 있었다. 퍼뜩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 정연씨는 뭔가 심상챦은 일이 일어났음을 알았다.

그녀는 얼른 곤히 잠에 빠져 있는 남편을 두드려 깨웠다. 그리고 둘은 허겁지겁 딸 방을 향해 뛰었다. 그들이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딸 방 앞에 도착했을 때 본 것은 불빛이었다. 딸 방의 문은 불이 환히 켜진 채 반쯤 열려 있었다. 조심스레 방안을 기웃거리던 정연씨 부부는 순간 발 밑으로 무언가 끈적하고 기분 나쁜 물체가 들러붙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게 피라는 걸 알아차리는 동시에 반쯤 열린 방문 틈으로 이쪽을 향해 치켜떠져 있는 딸의 두 눈을 보았다.

도저히 이 세상 사람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검은자가 하나도 없는 허연 눈동자, 그리고 그 눈동자를 반쯤 덮고 있는 머리카락, 피에 젖은 머리카락!

미친 듯이 문을 박차고 들어 간 딸 방에는 꿈에 보기에도 처참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침대 위에서 밑쪽으로 고개를 늘어뜨리고 있는 딸의 가슴에는 나이프가! 보기에도 섬찟한 예리한 나이프가 꽂혀있었다. 그리고 꽂힌 나이프를 비집고 검은 피가, 검붉은 피가 뭉클뭉클 쉴 새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피는 딸의 가슴을 적시고 침대를 적시고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딸의 애인은 그 옆에서 수세미처럼 헝크러진 머리를 감싸쥐고 짐승같은 소리를 내고 울고 있는 것이었다.

"아아아악!!!!"

지옥같은 정연씨 부부의 비명을 들은 둘째 딸이 미친 듯이 이층으로 쫒아올라왔다. 그리고 그녀의 눈은 곧 충격과 공포로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정연씨의 딸은 동성연애자였다. 그러다 더 늦기 전에 결혼을 하라는 부모의 성화에 못이겨 만나기 시작한 사람이 지금의 애인이었다. 그러나 원래 타고난 性 취향을 바꾸기 어려웠던 딸은 도저히 남자와는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결단을 내리고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그날 밤, 애인에게 결국 고백을 하게 되고 이성을 잃은 애인의 칼에 맞아 죽게 된 것이다.

딸의 장례는 조촐하게 치러졌다. 장래 사위가 될 뻔 했던 딸의 애인은 차디찬 유치장에서 기약없는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딸의 장례를 치르고 오던 날 밤부터 정연씨 식구에게는 이상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집안에서 오싹한 한기를 그리고 누군가가 서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이상한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그 이상한 기분은 죽은 딸 방에서 더욱 더 심하게 느낄 수 있었다.

딸 방은 예전의 흔적을 찾을 수 없게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예전에 있던 가구들을 헐값에 팔아치우고 카페트를 걷어내고 새 마루를 깔았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주인이 없는 방이지만 텅 비게 그냥 둘 수 없어 침대와 화장대, 책상 등을 모두 산뜻한 흰색으로 사들여 재배치했다. 그리고 딸의 붉은 피가 스며들던 자리에는 보송보송한 노란색의 러그를 깔았다.

누가 보아도 예전에 그런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완벽하게 변신된 방이었다. 모르고 보면 아주 귀엽고 사랑스런 소녀가 주인일 것 같은 따뜻하고 정갈한 방이 재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그방에만 들어서면 추웠다.어디선가 누군가가 일부러 찬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 처럼. 그리고 이유없이 불안하고 기분이 나빴다.

딸이 죽고 처음 얼마간 정연씨는 그 방에서 잠을 잤다. 그렇게 해서라도 시집도 못가보고 죽은 딸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서. 그러나 누군가가 목을 조르고 얼굴을 할퀴는 악몽에 매일 밤 시달리고는 그 방에서 잠을 자는 걸 포기했다. 아니, 어느 날 밤 딸 방에서 자면서 경험했던 끔찍한 꿈을 생각하면 이제는 대낮에도 들어가 보기가 꺼려질 정도로 무서운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게 꿈이었을까.

정연씨는 그날 새벽에 자신이 딸방에서 경험했던 것이 꿈이었는지 실제였는지 아직도 확실치가 않다. 자신이 본 것이 귀신이었는지 딸의 혼령이었는지 헛것이었는지.

새벽까지 뒤치닥거리다 소변이 마려워서 눈을 떴을 때 침대 가에 앉아 물끄러니 정연씨를 지켜보고 있던 한 여자, 피에 젖은 긴 머리로 한 쪽 얼굴을 가리고 정연씨를 보며 씨익 웃던 여자, 정연씨가 공포에 질려 소리도 못지르고 벌벌 떨고 있을 때 갑자기 울린 알람소리에 맞추어 연기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여자......

정연씨는 그날 새벽 본 것을 남편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쟎아도 뒤숭숭하고 무거운 집안 분위기에 자신마저 일조를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대신 그날 밤부터 잠자리를 안방으로 옮겼다.

"혼자 자려니 적적해서 말이죠......"

그러나 정연씨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정연씨의 남편도, 둘째 딸도 집안의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어느 날 둘째 딸이 친구의 아파트로 짐을 옮긴 것이다.

"무..무서워...언...언니가....죽..죽을 때의 모..모모습을 하고 나..나타나는 것 같....같아.. 머리를 늘어트리고 피를 흘리면서.....무..무서워서 이 집에 더.더..더 이상 못있겠어......."

둘째 딸의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면서 일그러진 표정을 짓던 정연씨의 남편이 그날 밤 어렵게 정연씨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에선 오랫동안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지금 집을 갑자기 내놓으면 손해가 막심하다는 것은 알지만....그..그렇지만... 나도..솔직히 말하자면 이집에 있기가 무서워서 말이지....그래서 말인데 집을 내놓읍시다..집을 팔아버리자구....."

그렇게 해서 내놓은 집이었다.

아무리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집이라 해도 어쨌든 내놓기만 하면 금방 팔릴 줄 알았다. 지은지 5년도 안된 새집에다 학군도 좋고 집안 구조 또한 좋았으며 게다가 경치도 좋은 곳에 자리한 집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건 가격이었다. 원래 가격의 거의 반이나 내린 가격이었으니....그러나 집을 내놓은지 거의 서너달이 가도록 이렇다할 오퍼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집이 가까워 올수록 정연씨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진다.

오늘 밤은 아무런 악몽없이 좀 푹 잘 수 있으려나. 정신과 의사 상담을 받아 한 달 전부터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지만 깊은 숙면을 취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깊은 잠은 들지 않고 비몽사몽으로 밤새 어지러운 꿈만 꾸다가 새벽을 맞는 것이다.

집은 어젯밤 처럼 깊은 어둠 속에서 침묵을 지키고 서 있다. 불과 몇 달전만 해도 두 딸의 웃음소리와 텔레비젼 소리와 정연씨의 잔소리가 적당하게 어울리던 명랑하고 밝던 분위기의 집이었다. 지금은 음산한 기운을 감싸 안은 채 악마의 성처럼 괴괴하게 어둠 속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차 문을 열고 나온 정연씨는 도시락 가방을 챙겨 먼저 집안으로 들어섰다. 남편이 차고에서 담배 한 대를 물 동안 얼른 부엌에 들어 가 저녁식사를 챙겨야 하는 것이다.

컴컴한 부엌에 들어선 정연씨는 부엌 카운터에 도시락 가방을 내려 놓았다. 그리고 벽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올리려던 정연씨는 순간 얼어붙었다. 컴컴한 부엌 한 귀퉁이 식탁에 누군가가 이쪽으로 얼굴을 향하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여자라는 것을, 그리고 피에 젖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자신의 죽은 딸의 모습이라는 걸 알아 차리는데는 단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아아아, 정연씨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았다.

-이계숙의 더 많은 작품은 http://kyesook.com 로 오셔서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