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명목으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없는것 같다.  얼마 전에 친정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은 뉴욕 사시는 선배가 전화를 주셨다.  싱싱한 민물 잉어를 사다가 푹 끓인 후에 그 물을 드시게 하라고 했다.  기력이 약한 노인들에게는 최상의 보약이라며 그 효험을 보장하셨다.

몽고메리에서는 구할 수가 없어서 애틀란타를 들린 동생에게 싱싱한 민물 잉어를 사오라고 부탁했다.  좋다는 것 다 해보자며 동생도 쉽게 호응했다.  생선가게 앞에서 동생이 전화를 했다.  잉어가 싱싱한데 길이가 팔뚝보다 크다면서 끓일 냄비가 있느냐고 물었다.  팔뚝 크기에 대한 정확한 감을 잡지 못한 나는 무조건 사갖고 오라고 했다.  큰 고등어 정도의 크기라 상상했다.

그런데 정작 동생이 가져온 잉어는 15 파운드가 넘는 작은 고래였다.  놀란 식구들이 엄청난 크기의 잉어를 쳐다보는 동안 나는 내가 가진 가장 큰 24쿼터 양의 냄비를 꺼내었다.  실망스럽게도 거대한 생선 옆의 작은 냄비였다.  동생과 잉어를 끓일 큰 냄비를 구하려고 몽고메리의 여러 가게를 찾아다녔다.  샘스에서 100쿼터 양의 야외용 냄비를 보았지만 그것은 우리집 스토브에는 사용할 수가 없는 높이여서 포기했다.

생선이 커서 내가 엄두를 내지 못하고 머뭇이자 동생이 생선의 겉을 씻고 냄비에 커다란 생선의 몸뚱이를 휘어서 넣었다.  냄비를 꽉 채운 생선에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처음 강한 불에 끓이다가 불을 약하게 줄여서 물이 뽀얗게 될 때까지 오랜 시간을 폭 고아야 한다는 뉴욕선배의 지시를 그대로 따랐다. 

치즈수건을 들고 건데기를 건지고 우유빛 물만 모았다.  한 갤런 정도의 노릇한 빛이 섞인 사골을 끓인 듯한 고운 색깔이었다.  식구들이 극성으로 달여준 잉어물을 어머니는 잘 마셨다.  이제 지팡이 없이도 걸으실 수 있다고 했더니 우리를 기쁘게 해주시려고 정말로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지 않으시고 집안을 다니셨다.  기쁜 마음으로 냄비를 씻으면서 워싱턴 디시에서 다니러 온 딸에게 40년 전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내가 대학 1학년 이었을 적에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셨다.  경산에 사시는 고모가 ‘개소주’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다고 어머니에게 해 보자고 하셨다.  그당시 우리집은 안양에 살았다.  고속버스를 타고 바로 대구로 간 나를 고모는 고산의 작은집 동네로 데려갔다.  누군가에게 누렁이를 부탁하신 후에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작은집의 뒤뜰에 있던 가마솥을 사용하자고 하셨다.  그런데 작은어머니가 펄쩍 뛰셨다.  아픈 시동생 보다 당신의 가마솥이 더 중요하다고 하신 그 반대가 어린 나의 가슴에 큰 상처를 주었다.

결국 누렁이를 구한 고모는 당신집 부엌에 있는 가마솥에서 며느리의 반대를 무릎쓰고 개소주를 만드셨다.  가마솥 중앙에 양은 그릇을 놓고 주위에 막 잡은 개를 넣고 뚜껑을 거꾸로 덮었다.  아래서 불을 지피면 개가 익으면서 오르는 수증기가 뚜껑을 타고 내려와 양은그릇에 모였다.  작은 물병으로 한병쯤 모이는 개의 정기가 모인 수증기에 큰 효능이 있다면서 고모는 불을 지피시며 열심히 기도를 하셨다.  울면서 그 과정을 지켜 보던 나는 죽은 개에게 미안했고 아픈 동생에게 온갖 정성을 쏟으시는 고모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여러번 경산에 들러 고모가 정성으로 만드신 개소주를 날랐지만 한번 쓰러지신 아버지는 회복을 하시지 못했다.  미국으로 이민온 후에도 한국에 나가면 작은집은 찾지 않아도 경산 고모네는 꼭 찾아 인사하곤 했었다.

집안에 온통 잉어 냄새가 스몄어도 잉어를 끓이는 것은 개소주 만드는 것 보다 마음이 편했다.  “사랑이란 명목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든 하겠다는 정성이 더 중요한 것 같다”는 딸의 말에 수긍했다.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던 동생이 예전에 아버지를 위해 희생된 누렁이들에 대한 사죄로 내가 지금 누렁이인 우리집 늙은 진돗개를 헌신적으로 돌보는건가 해서 모두 웃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아무튼 어머니가 기력을 회복하신다면 어디 잉어 뿐이랴 뱀도 끓일 각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