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에 사라지는 종이 매체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리고 인쇄된 책을 좋아하는 나의 의견을 밝혔다.  손에 만져지는 종이의 질감도 그 내용만큼이나 중요하고, 프린트 된 글씨의 형체도 내용을 돕는다는 믿음도 적었다.  책의 장정에서 저자의 깊은 생각과 의욕도 느낄 수 있다며 보고 만질 수 있는 책을 나는 오랫동안 선호했다. 

집안에 어지럽게 흩어진 책들을 보고 남편은 늘 불평했다.  오래 전부터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눅이나 킨들을 사줄테니 제발 책 좀 없애라 해도 끄덕하지 않았다.  책장이나 책상위를 가득 채우고 바닥에도 쌓여있는 책을 보면 그 책들속의 많은 지혜가 슬그머니 나에게로 건너오는 착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은데 어떻게 책들과 헤어지나.  나의 책 소유욕을 나는 고집스런 늙은이 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지켰다.  지난 달까지.    

솔직히 컴퓨터 붙잡고 일하는 시간이 많아서 스마트폰이나 다른 전자매체에 까지 기구에 묶이는 것도 싫었다.  그리고 여행을 다니며 되도록이면 간단하게 가방을 챙겨도 책 몇권의 부피가 있었다.  전에는 전혀 불평하지 않았는데 얄팍한 전자책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을 많이 보면서 내가 잡은 책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지난달 나보다 나이가 많지만 어딜가나 작은 아이폰으로 뉴스를 읽고 메일을 체크하는 남편더러 조금 더 큰 타블렛을 사용하라고 새롭게 나온 다양한 용도의 ‘킨들 파이어’를 사주었다.  그런데 막상 킨들 파이어를 붙잡고 앉은 것은 남편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아마존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책 몇 권을 다운로드 받고 몽고메리 도서관 웹사이트에서 신간서적, e북을 다운로드 받아서 간편하게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요즈음 어딜가든 핸드백에 넣고 다니며 다운로드 받은 책들 중에서 기분 내키는 대로 골라서 읽고 심심하면 이메일 체크도 하고 헤드라인 뉴스도 읽으니 이 작은 기구가 여간 편한것이 아니다.

전에 썼던 글 중에 이런 말을 했었다.  “중세 금속활자의 발명이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어 주었듯이 전자화가 변화시킬 세상에 기대와 흥분보다는 오히려 두려움을 느낀다.   오늘도 뒷 발굼치를 땅에 꽉 밀고 익숙하고 편한대로 앉아서 두꺼운 책속의 인쇄된 활자가 전해 주는 내용에 푹 빠진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면서 책속에서 만나는 많은 지인들이 주는 지혜와 낯선 체험을 음미하는 재미, 아무튼 책에서 얻는 에너지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행복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서 종이 매체가 사라져 간다 해도, 이렇게 어수룩하게 살며 작은 일에 기뻐하는 참한 늙은이가 되고 싶으니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구시대의 사람인가 보다. “

웃음이 나온다.  킨들 파이어를 가진지 아직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그때 가졌던 생각이 확 바뀌어 버렸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