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묘목들이 워싱턴 DC에 심어진 지 꼭 100년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듯이 강산이 열번 변할 동안 일본에서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이주한 벚나무 묘목들도 이민자들처럼 완전하게 자리를 잡았다. 해마다 조금씩 더 단단하게 미국과 일본의 우애를 다지면서 사람들이 이민 2세 3세를 키웠듯이 2세 3세의 묘목을 키웠다.     

지난주 벚나무 이주 100주년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워싱턴 DC를 방문해서 벚꽃축제의 열기에 빠졌다. 예년보다 일찍 피어서 화사함의 절정에 달한 벚꽃들이 타이들 베이슨(Tidal Basin)을 둘러싸고 봄의 향연을 벌리고 있었다. 완벽한 정경에 어울리는 완벽한 날씨였던 지난 금요일 나는 그곳 사는 딸과 벚꽃놀이에 나섰다.  

우리는 눈부신 벚꽃에 자석처럼 따르면서 눈송이처럼 사뿐히 떨어지는 꽃잎들의 가냘픈 몸부림을 감탄했다. 여느 관광객처럼 좌우를 둘러보며 벚꽃의 아름다움을 카메라에 포착하느라 바빴다. 워싱턴 기념탑에서 튤립 꽃밭을 지나 시계방향으로 제퍼슨 기념관과 루즈벨트 기념관, 그리고 마틴 루터 킹 기념관을 여유롭게 돌면서 꽃과 사람구경에 행복했다.

꽃구경 온 다양한 차림의 사람들, 주위에서 환성을 지르는 언어를 헤아려 보았다. 많은 외국어들이 섞여서 완연한 축제무드였다. 고목의 휜 가지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운 벚나무들 사이로 어린 묘목도 빠끔히 꽃을 피우고 있었다. 호수로 휘어진 가지에 달린 꽃송이들은 탐스럽고 신비했다. 떨어진 꽃잎들이 주변을 하얗게 장식했고 친선기념으로 일본이 선물한 3백년이 훨씬 넘은 이끼낀 석등위에도 연분홍 꽃잎들이 흩어졌다.

우리 모녀는 중간 중간 쉬어가며 방문객들을 매혹시키는 벚꽃의 내력을 이야기했다. 1900년 초 한 미국여자가 일본서 벚꽃의 아름다움을 보고와서 워싱턴 DC에 벚나무를 심고 싶은 희망을 가진것을 시작으로 양국 지도자들의 협조로 그녀의 꿈이 실현되었다. 1910년 일본서 처음 보낸 2000그루의 묘목은 해충들로 뿌리까지 오염되어서 도착후 모두 불에 태워졌다. 그후 1912년에 도꾜시장이 두 나라의 친선도모를 목적으로 다시 3000 그루의 묘목을 선물한 것이 바로 오늘의 벚나무 이민 역사이다.

연약한 묘목들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고 다시 서해안에서 기차로 대륙을 건너 동부에 도착할 동안 그 과정을 준비한 사람들, 몇 달의 긴 이동기간 동안 묘목을 돌본 사람들, 묘목을 심고 가꾼 사람들의 노력이 고마웠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선조들 덕분에 해마다 수 십만의 후세 사람들이 세계에서 미국의 수도를 찾아와 근사한 봄맞이를 한다.

우리는 따스하고 청명한 날은 벚꽃구경하느라 야외에서 보냈고 으스스하고 비온 날은 실내에서 일본문화를 체험했다. 코토 (Koto) 음악과 카부키 소개에 이어서 전 세기의 일본화가 호쿠사이 (Hokusai) 가 그린 후지산의 그림 36편을 찬찬히 보았다. 후지산 주변 동서남북 방향에서 그린 일상의 그림마다 후지산의 얼굴이 달랐다. 세계 여러 미술관 소장의 그림들이 특별히 한자리에 모인 전시회에서 내가 일본에서 보고 감탄했던 후지산을 찾아서 기뻤다.

핑크색 종이를 접어서 벚꽃잎을 만들고 스시를 맛있게 먹다가 불쑥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 처음 벚나무 묘목을 보낸1910년은 바로 한일합방 조약을 체결한 해가 아닌가. 같은 해에 가까운 이웃인 조선은 삼켜먹고 먼 나라 미국에는 우호의 증표로 벚나무 묘목을 잔뜩 보낸 일본의 외교정책이었다. 미국의 수도 중심에서 당당하게 아름다움을 뽑내는 일본꽃을 즐기는 한국계인 내 기분이 묘했다. 하지만 100년 전에 벚나무 묘목을 심었던 선구자들의 비전을 생각하니 감정은 쉽게 걸러졌다.

5년 전에 멕스웰부대에서 교육받은 일본 항공자위대 대령이 소장으로 승진해서 일본대사관에 무관으로 근무한다. 우리는 그의 가족과 반가운 재회를 하고 그의 아내가 정성들여 만들어준 일식을 먹고 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워싱턴 DC 벚꽃축제 구경은 시작부터 끝까지 완전히 미국에 영향을 준 일본문화를 체험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