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가 마법 같이 30살이 넘어가고, 이 공부를 하기 시작한지 세월이 약 15년이 넘고 나서 처음으로 일렁이던 파도가 잠재워질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공부를 했기 때문에, 어쩌면 정말로 운이 좋게 이런 순간이 빨리 온것은 아닐까? 라고 감사하는 순간이었고, 덕분에 처음으로 '고요함 속에서의 기다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다. 왜? 달리고 또 달려도 불안하고 불편했는지, 필자의 급한 성격안에서 어떤 오류가 생기고 있었는지 아주 미약하게 나마 느끼게 될 수 있는 순간이 왔다. 

그 이야기를 하기에 굉장히 좋은 인용구 하나를 가지고 오자면, 필자가 정말 좋아하는 수필 중 하나인 윤오영 작가의 '방망이 깍던 노인'의 대사 중 한 부분을 소개해 드리고 싶다. 

 관상과 사람 몸에 대해 공부를 해 보니, 재촉한다고 모든 일이 다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다. 서두른다고 꼭 정상에 오르는 것도 아니었고, 늦게 간다고 정상에 오르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남 보기에 대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 속이 텅텅 빈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느리고 천천히 가지만 결국은 내실이 있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족해 보인다고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고, 가득차 있다고 꼭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아프다고 다 같이 죽을 일만 있는 것은 아니고, 건강하다고 죽자고 행복한 일만 있는 것도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길을 가야 반짝 비추고 사라지는 '별똥별'이 아닌, '북극성'처럼 오래 오래 빛나는 별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정말 유명한 맛집들 중에 30년, 50년 전통을 이어가는 곳들을 보면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거나 홍보에 대단한 투자를 하는 곳이 흔하지 않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냥 다들 소문 듣고 왔다고 한다. 어디에서 도대체 무슨 소문을 어떻게 듣고 왔는지 모르겠는데...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마냥 기다린다. 늘 찾아주는 사람들이...그리고 긴긴 세월이 우직하게 이야기를 해준다. 이곳은 정녕 바로 그 유명한 맛집이 맞다고 말이다. 

 한 순간의 요행처럼, 급하게 쌓아올려 폭죽 터지듯 빵 터트릴 수도 있다. 물론 그 폭죽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조금 더 정교하고, 조금 더 오래가고, 조금 더 깊은 마음을 울려가며 남고 싶다면, 재촉하지 않고 나의 내공을 다지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자는 단순히 1+1=2 라는 간단 명료한 정답을 찾아내면, 달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왜? 1+1이 2가 될 수 있었는지 그 안에 숨어있는 심오한 의미엔 관심 조차 없이 그냥 마냥 달리는 것만 생각해서 더 마음도 몸도 힘들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오류가 생겼고,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는 것 같다가도 한 순간에 미끄럼을 타고 굴러내려올 일이 생겼고, 그래서 다시 올라야 했고....아마도 그래서 나의 10대와 20대가 아프고 힘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싶어졌다. 

 기다림의 미학을 이제 조금 깨달았다고, 마냥 '가만히' 기다리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단지, 진짜 진정한 '때"가 올 때까지 묵묵히 자신이 갈 길을 꾸준히 가야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분명 난 정말 쉬지 않고 노력했는데, 아무도 저의 진가를 알아주지 않아요. 라고 발을 동동 구를 일이 생기면, 나는 아마도 남 보다는 조금 더 늦게 빛을 보려나 보다 라고 생각하고 꾸준히 그 길을 걸어가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다. 하루에 한 방울씩 꾸준히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깨뜨릴 수 있을 때까지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기다림이 필요했던 것 처럼 말이다. 아마도 본인이 깨야하는 바위가 생각보다 정말 큰 녀석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분야 공부를 오래하시는 분들이 항상 하시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로 이 공부를 잘 하고, 유명해지면, 산 속에 숨어있어도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말이다. 정말 영화 '관상'에 나오는 '내경 선생님'처럼 산 속에 숨어 살아도 사람들이 찾아오 듯, 꾸준하게 정진하고 반복해서 내 공부를 하면 언제가는 생각지도 못 한 사람들까지 찾아올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 본다. 가끔 너무 엉뚱하게도 영화속에서 보던 유명한 배우가 내 앞에 앉아서 조심스럽게 내게 본인의 관상을 물어보는 날이 온다면 정말 얼마나 신기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열심히 TV에 나오는 분들의 얼굴을 꼼꼼하고 면밀하게 관찰하며 공부 중이다. 

 필자의 엄마가 필자에게 하셨던 이야기가 있다. 매일 매일 쉬지 않고, 열심히 정진해서 꼭 나중에 '노벨상'이 타고 싶다고 매번 필자의 꿈을 이야기 하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 하지 말라고 자주 필자를 말리곤 하셨다. 학교를 다니고 다니고 또 다니고, 매번 학교에서 공부한다고 하는 딸을 보면서 필자의 엄마도 참 답답하실 것이다. 그런데도 꼭 이 길을 걸어서 죽을 때까지 열심히 해봐야겠다고 했더니 우리 엄마 왈, 

엄마 :  만약에, 네가 그렇게 죽을 때까지 평생을 열심히 살았는데 아무도 너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할래? 그러다가 100살 넘고 할머니 될 때까지 아무도 모르면 그럼 어떻게 할거야?

필자 : 그럼 혹시 저 죽고 나서라도, '반 고흐' 처럼 누구든 알아주는 사람 생기게 열심히 책도 쓰고 연구도 할께요. 무엇이 라도 남기면 혹시 길이 있을 수도 있겟죠.

엄마:  죽고나서도 알아주는 사람 없으면??응? 왜 그렇게 답답한 소리를 하니?(가슴을 치시며)

필자 :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상관없어요. 제가 죽기 전까지 열심히 꿈을 위해 달려봤으면, 그걸로 충분해요. 만약에 죽어서도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 없으면, 그럼 그건 제가 부족했다는 의미니까 받아들여야죠. 혹시 기회가 된다면, 다음 세상에 태어나서도 다시 사람 몸이랑 의학 공부 할께요. 

 필자의 엄마는 세상 저런 고집 불통을 낳았다고, 답답해 죽겠다고 하셨다. 그래도 공부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늘 같은 길만 걷는다고 하니 이젠 예전처럼 무조건 화내지 않고 많이 응원해 주신다. 앞으로 갈길 먼 딸이지만, 그래도 이왕 갈거면 몸 상하지 않게 가라고 묵묵히 지켜봐주신다. 

 양방에서 수 없이 MRI, CT, X-ray, 현미경을 바라보며, 병에 대해 알아보려고 내 나름대로 공략해 봤었다. 물론 많이 부족했지만, 스스로 이를 통해 무언가를 알고 정의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필자는 열길 물 속보다 더 깊고 어렵다는 사람에 대해 나름의 이론과 방식을 갖고 찾아보고 싶었다. 마음도 알고 싶었고, 몸도 알고 싶었고, 질병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묵묵히 의학관상술사의 길을 택했고,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사람을 아직 다 알지도 못 하고 부족한 부분이 더 많지만, 그래도 이 길을 통해 적지 않은 행복을 느낄 수 있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