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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복덕방

[my story] 슬픔이 읽히는 집 Chloe Noh (ChloeN) 2020-8-7  10:51:23

(코로나 시작할때 올렸던 글입니다. 앞날이 두렵고 마음이 아파서 써내려 갔다가.. 괜히 많은 사람들에게 실직에 대한 불안함을 줄 수도 있겠다 싶어 지웠던 글입니다. 이제는 코로나로 바뀐 삶에 적응도 되었고, 달라진 세상에서 집을 사고 파실 분들이 계실테니.. 다시 조심스레 올려봅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시카고 근교중에서 손꼽히게 아름답고 안전하고 깨끗한 도시입니다.

학군 좋기로 유명하고, 살기 좋기로 최고인 이 동네에 어느 날 50% 세일가로 집이 한 채 나왔습니다.

반 값 세 일 !!!!!!!


그 집이 마켓에 올라온 날은 2019년 1월 29일 화요일. 

그 날은 마침 일리노이에 폭설이 내려 회사랑 학교가 모두 문을 닫았던 날입니다.  

새벽에 아이들 학교가 문을 닫는다는 전화 한 통에 눈을 떴다가, 

무심코 핸드폰을 봤고, 제 눈을 믿지 못해서 남편을 깨웠고.. 

리얼터인 남편도 "이런가격은 처음 봤다"기에 잠시 흥분해 수다를 떨다가 폭설을 뚫고 가보기로 했습니다.

걸어서 10분.

텀블러에 뜨거운 커피를 담고, 부츠와 털모자를 쓰고, 새하얀 거리에 발도장을 찍으며 신이 났었습니다. 


주소만 보고 가보니, 딸 친구네 옆 집!

자주 다녀봐서 아는데, 동네 안에서도 최고 좋은 위치로 테니스장과 놀이터를 끼고 있는 아이 키우기 최상인 집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더욱 신이 났어요. 세상 모두가 조용히 잠든 그 새하얀 새벽에 아무도 모르게 보물을 찾은 기분이랄까요?


30센티 쌓인 눈을 저벅저벅 밟고 현관에 도착했고,  

설렘을 가득 담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 런. 데...

허걱.. 

이럴 수가.. 

더럽고.. 무섭고… 흉측하고...

집이 난장판이었습니다. 

전기도 나갔는지 불도 안 들어오고, 꼬리꼬리한 냄새에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어요.

안에 죽은 동물이라도 있진 않을까, 아니 아니 사람 시체가 있지는 않을까… 너무 겁이 났어요.

‘하필 폭설이 내려, 도시가 마비가 된 날에 보러 올게 뭐야. 

뭔 일 나도 경찰이나 오겠어.. ㅜㅜ’

겨우겨우 용기 내서 한발 한발 내딛었습니다. 

뭐 하나 멀쩡한 게 없었어요.

말이 안 나왔죠. 

그 옆집을 몇 년을 들락날락했는데..   우리 아이가 그 친구 집 마당에서 얼마나 놀았는데.. 

지난 시간들이 다 겁이 났어요. 

멀쩡한 집이 이렇게까지 되려면 몇 달이 걸릴까? 

저 많은 맥주캔은 몇 달에 걸쳐 쌓인 걸까? 

대체 이 집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좋은 동네에서.. 저렇게 되기까지.. 

가슴 먹먹하게 슬픈 사연이 있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 집은 2800sf에 방이 4개 , 거실이 2개를 가진 큰 집이고 저희 동네는 대부분 4~5인 가족들이 사는 곳입니다. 

그러니 저 집에도 한때는 가족이, 아이들이 있었을 텐데... 

아이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찌끄러진 맥주캔만 가득이었습니다.  


그 집은 그 후 누군가가 사서, 고쳐서, 팔아서 새로운 가족이 살고 있습니다. (저희는 highest and best 경쟁에서 $3,000 차이로 떨어졌네요.)

그 집이 깊은 사연을 가진 집이란것은 그 주말에 집구경을 갔던 몇몇의 사람만 아는 비밀이 되었네요.   

                                                                                                                                                       (before and after)


지금부터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 우리는 어쩌면 이런 집들을 만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직, 부도, 파산... 

flipping business를 하면서 저도 못지않게 고통을 겪은적이 있었는데 뭔가 일이 생겼을때 바로 그 날부터 먹을 돈 & 쓸 돈이 없어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크레딧 카드를 사용하고, 정부보조받고, 또 다른 빚을 져가면서... 몇 달은 버텨집니다. 

마음 같아서는 집 팔고 싹 빚 정리해서 다시 시작하고 싶지만, 

W2인컴이 없고, 신용이 무너지면.. 

월세 얻는 것도 사실상 어려워지니, 섣불리 집을 팔아치우지 못하고.. 조금씩 무너지게 됩니다. 

‘가정'과 ‘아이들의 웃음'을 지키고자 발버둥칠뿐 할 수 있는게 많지 않습니다.  

저 집의 주인도 예전의 나처럼 어쩌면 버티고 있었던 게 아닐까... 


집을 보다가 슬픈 사연이 읽히는 집을 만나게 된다면, 

‘거지가 살았었나 봐' 라며 코를 막고 고개를 돌리는 것보다.. 

‘아싸~ 굿 딜!' 하며 즐거워하기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습니다.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계약을 마무리하는 그 순간까지 말조심, 마음 조심했으면 좋겠습니다.



Chlo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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