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제법 쌀쌀해졌다. 한국의 추위를 잘 모르는 딸은 그토록 코트를 사준다해도 마다하더니 결국은 내가 잠실역에서 9천원주고 사다놨던 코트를 주섬주섬 입기시작했다. 한달전 서울을 갔을때 딸아이가 캐나다에서온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고해서 잠실역까지 같이 간적이 있다. 딸이 캐나다친구들과 함께 자리를 떠나고 나서 나는 서울에 사는 조카를 바로 그자리에서 만났었다. 조카가 나를 데리고 지하상가를 거쳐서 멕시코 음식을 파는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가는도중에 난 무조건 한벌에 9천원이란 싸인을 보았고 걸려져있는옷들이 가격대비 제법 고급지다는 생각을 했다. 조카는 서울에 살아서 그런지 그런것들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조카와 밥먹고나서 헤어지고나면 딸아이를 만나기까지 내게는 더이상 만날 사람도 없었고 시간은 많았다. 그때 혼자가서 옷들을 좀 봐야겠다 생각을 하고 조카와 맛있는 Burrito 와 Tacos 를 먹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한지 2년이 넘어서인지 조카는 제법 세련되어 보였다. 어려서 몇번 만난게 다일뿐인데 피는 콜라보다 진해서인지 나는 조카와 전혀 어색하거나 불편하지가 않다. 그런데 조카는 내가 어려운가보다. 당연하겠지. 그래도 내가 어른인데… 그래서 나는 조카앞에서 일부러 푼수도 좀 떨어보고 헛웃음도 지어보고 약간의 스킨쉽도 해보지만 여간해서 마음을 쉽게 여는것같지가 않다. 그저 용돈을 손에 쥐어주면 함박웃음꽃을 피운다. 그것이 바로 돈의 힘이다. 어쩌겠나… 할수없는일이지.. 아무튼 조카와 인증샷한컷찍고 헤어진다음 나는 바로 발길을 9천원짜리 옷가게로 향했다. 가게는 제법 넓었고 옷들도 제법 많았는데 한구탱이에서 아주머니 한분은 계속 까만색 비닐에서 옷들을 꺼내고 있었고 메니저로보이는 남자는 뭔말인가를 계속마이크에대고 떠들어대고 있었으며 손님들은 서너개 놓여져있는 거울앞에서 옷들을 걸쳐보느라 분주하기 짝이 없었다. 난 바로 그무리로 파고들어가 그들못지않게 바구니에 여러벌의 옷들을 챙겨 이리저리 걸쳐도보고 뒤집어도 보고 옷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내예상대로 옷들은 고급졌다. 어떻게 이좋은 퀼리티의 옷들을 이가격에 팔수가 있는지? 혹시 중고? 라는 생각에 메니저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이거 구제 인가요? 너무싸서요..” 하고 물었더니 “아닙니다. 다 새옷입니다. 일본백화점 이월상품들입니다. “하는것이다.
난 그때부터 더욱더 빛의 속도로 옷을 보기 시작했다. 주로 겨울에 입을 코트위주로 골랐다. 그중 하나가 딸아이의 코트였다. 9천원에 득템한 딸의 코트는 딸이 아니면 아무도 안맞을법한 사이즈였다. 어쩜 그리 맞춤처럼 딱 맞는지.. 내가 골랐지만, 한국에 와서 샤핑한것중 가장 잘 고른 아이템 같다.
딸이 캐나다에서온 여자친구에게서 남사친을 소개받았다. 딸보다 두살 어린 그는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를 했었다고 한다. 딸은 스케이팅을 즐기지 않는다. 넘어지면 담날 너무 아프다고 하면서 정말 가기싫다고 했지만 아이스하키선수라고하는 그에게 설득당해 간듯하다. 웬지 마음이 놓였다. 절대로 넘어지지않게 잡아주겠다고 약속을 하고 가서는 진짜 한번도 안넘어지게 잘 잡아주었다고 한다. 요즘은 캐나다로 떠난 그 친구와 밤낮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듯하다. 그런데 가만히 둘의 대화를 듣다보면 먹는얘기가 99프로를 차지한다. 그학생이 Subway 샌드위치를 먹었다고하면 딸도 그날은 꼭 그걸 먹어야한다고 나가서 사먹는다. 또 딸이 불닭 볶음면을 먹었다고 하면그학생도 바로 같은걸 먹으면서 라이브로 서로 페이스 타임을 하는것이다. 가만보아하니 둘만의 먹방을 하고 있는듯하다. 이토록 먹방이 대세인것에대해 난 나도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이 세대 아이들은 먹는거빼면 뭐가 남을까…
그래도 그 친구를 만나고 나서 딸아이가 한국을 더 좋아하게 되어 기쁘다. 캐나다에서 여행와있는 딸아이의 친구 메이간 이 부산에 머무는동안 캐나다에서 같은동네에 산다는 그남자아이도 가족여행으로 서울을 들러 부산에 잠깐 머문적이 있는데 그 딸아이 여친이 바로 해운대 바닷가에서 우리와 함께 거닐고 있었으므로 자연스레 해운대비취앞 호텔에 머물고 있는 그친구와 그리고 그의 엄마 와 동생까지 다같이 호텔앞에서 만나 본의아니게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그남자아이는 잘 하지도 못하는 한국말로 나에게 먼저 인사를 하더니 한국에 언제 왔냐고 묻고 이것저것 대화를 하는것이다. 아니… 나이도 어린애가 어른을 알아보네? 싶었는데 그애가 바로 지금 딸아이와 매일 페이스타임을 하고 있는것이다. 아무튼 그날 그렇게 만남을 갖고난후 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먼저 들어왔고 딸은 친구들과 함께 해운대비취에서 생전처음 밤늦게까지 바깥에서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었던것이다. 해운대바닷가에서 새겨진 그날의 추억은 딸아이에게 아마도 잊혀지지않을 경험이었을듯 싶다. 사실 한국이니까 나도 그렇게 허락을 했지 미국같았으면 절대로 벌어질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서울로 가서 몇번더 캐나다친구들과 만남을 가지고는 더 그들과 친해졌는데 특히 그남자아이와 더더욱 잘 맞는다고 하길래 뭐가 맞는데? 하고 물었더니 역시나 “엄마 우리는 먹는거 좋아하는게 똑같아!” 그러는것이다. 할말을 잃었다. 맞다. 난 딸과 사는데 가장 힘든게 바로 먹는것이다. 내가 야채를 먹으면 딸은 고기를 먹겠다고 하고 내가 고기를 먹자고 하면 그날은 딸아이는 사시미를 먹겠다고 한다. ㅜㅜ 내가 밥을 먹으면 딸은 국수를 먹고, 내가 김치볶음밥을 해먹자고하면 딸은 태국음식을 먹겠다고 하고 내가 중국집을 가자고 하면 딸은 피자를 먹겠다고 한다. 한번은 꽁보리밥에 열무김치까지 나오는 조개 칼국수집이 있어서 딸이 국수를 좋아하니 같이 먹자고 햇더니 자기는 꼭 그날은 야채를 먹겠다고 우겨대는바람에 샐러드를 포장해서 칼국수집에 가 허락을 받고 딸아이는 샐러드를 난 꽁보리밥에 조개 칼국수를 먹었는데 자기가 포장해간 샐러드는 반정도 먹더니 내 칼국수를 반이나 덜어달라해서 먹는것이다. 아니왜… 그렇게 샐러드가 먹고싶다고 난리를 쳐서 팔천원 이면 먹는 칼국수에 꽁보리밥을 두고 양도 얼마안되는 샐러드를 만원이 넘게 주고 포장해 식당에서 눈치까지 보게해놓고 내 칼국수를 뺏어먹는거지? 정말 속으로는 짜증이 났지만 난 엄마니까… 내입에 들어가는것보단 딸아이 입에 들어가는게 더 행복하니까… 라고 나를 달래며 딸아이가 남긴 반쪽 샐러드를 먹어치운적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음식 궁합이 안맞는다. 그런데 바로 그런 내딸하고 음식궁합이 맞는 사내아이가 나타났다고 하니 이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부디 같은대학 졸업해서 같은 직장 다니면서 연애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요즘은 그 아이의 엄마하고 내가 카톡을 하기 시작했다. 그아이가 서울에서 우리딸아이에게 너무 잘해줘서 고맙다는 표시로 난 캐나다로 키체인을 짜서 보냈다. 서울에서 우리딸아이의 보디가드를 도맡아서 했기때문이다. 그랬더니 그아이의 엄마가 카톡이 왔다. 너무 이쁜 키체인을 선물받아서 너무 행복하다고… 그러더니 몇일전엔 캐나다산 메이플 캔디를 보내왔다. 정성스레 써내려간 카드와 함께… 그렇게 우리의 카톡이 시작되었는데 어쩜 이리 잘 통하는지… 이민간게 너무 후회되고 한국으로 돌아오고싶어하는 그엄마는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 살고있는 내가 너무 부럽다고 했다. 오랜만에 말통하는 친구를 만난듯하다. 딸아이와 그남자아이도 친해졌지만 우리엄마들까지 친해져서 2월에 우리가 켈리포니아로 비자문제로 가게될지도 모른다 하니 그가족도 가족여행을 켈리포니아로 오는것을 고려해보겠다고 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상쾌함이다. 사실 난 아들때문에 며느리 컴플렉스에 사돈 컴플렉스까지 생겨서 ㅜㅜ 어디가서 아들에대해 누가 물어보거나 아님 지인들이 아들에대해 이미 알기에 절대로 안물어보거나… 둘의 경우 모두 상처가 크다. 내가 왜 잘키운 아들을 이토록 없는아이처럼 숨겨야 하고 숨김을 당해야 하는지 정말 속상하기때문에 가슴언저리가 시리다. 그런데 웬지 딸아이와 그친구관계 그리고 그 가족과의 관계는 내게 상큼함을 주고 있다. 아직 어리지만… 아직 사회생활 1도 못해본 아이들이지만 우리엄마들끼리 말이 통하고 연대가 비슷한것 하나만으로도 너무 개운한것이다.
내가 욕심이 없어진건가? 나이만 위아래로 너무 갭이 크지않고 어느정도 맞으면 만사 오케이 인가? 라고 생각하기엔 그아이도 그아이의 엄마도 너무 쿨하고 자상하고 밝고 반듯하다. 그리고 난 우리아들이 결혼을 했다고는 말을 했지만 더이상 자세히 구체적으로 물어보지 않는 그엄마가 너무 고맙다. 아들의 결혼은 나에게 상처자국이 너무 크고 흉해서 누군가에게 까서 보여주기엔 꽤나 오랜세월이 걸릴듯하다. 더 깊은 신뢰와 믿음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말조차 꺼내기가 두려울듯 하다. 내가 너무 관대하지 못한걸까… 이런 내마음을 알기에 아들도 이토록 엄마에게 냉담한걸까… 자식의 문제는 항상 어려운 숙제로 남아있는듯 하다

* 우리 아파트에서 미포쪽으로 십오분쯤 걸어나가면 바다가 보이는 LCT 빌딩근처로 식당들이 즐비하다. 그중 항상 주말에는 줄이 길어서 쉽게 먹을수가 없는 미포집 이라는 해물솥밥집이 있다.평일이라 줄없이 들어가 먹을수 있었다. 화려하고 푸짐해보이지만 양으로보나 맛으로보나 사진만 못하다. 간장게장은 짜고 해물밥은 양도 너무 적다. 기대를 너무 많이 한탓인지는 몰라도 맛도 별로였다. 다시가서 먹고 싶을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사진에 너무 이뻐서 담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