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에 어렵게 받은 시민권 증서를 우편으로 받기엔 좀 불안했다.
분실될리야 없겠지만은 이래저래 지난번에 미국에 가서
부모님과 시간을 많이 못보내고
라스베가스 여행을 간것도 걸리고
멕시코 사는 오빠네 가족이
이번에 조카가 방학이라 엘에이로 여행온다길래
딸아이는 혼자 부산에 두고
나는 미국행 비행기를 다시 탔다.

와서보니 여기 캘리포니아도
꽃들이 번식을 위해 봄바람을 이용해 꽃가루를 엄청 뿌려된다.
첫날 오자마자 생각없이 차창문을 열고 달린덕에
꽃가루 알러지로 인한 결막염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가족중 유일하게 알러지가 심한나는
재채기에 콧물에 눈까지 가려워서
이번여행은 또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못보내고 갈듯하지만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
오빠네가 멕시코로 떠나자마자
부모님의 노인아파트로 가서
남은 일주일을 머물기 위해
일단 동생집에서 풀었던 짐을 다시 싸서
부모님댁인 한인타운으로 향했다.

엄마는 치매증세가 온지 십년이 넘었다.
아버지께서 90연세에 엄마와 함께 살며 힘들게 버티고 계신다.
다행히 누가봐도 80대 초반으로밖에 안볼정도로
아버지는 건강하시지만,
이젠 점점 나이에 굴복하시는 모습이 보인다.
동생이 매일 찾아뵙고 보살펴드리는데
내가 있는동안엔 동생이 좀 쉬었으면 하는마음에
난 부모님댁으로 짐을 싸서 온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두분은 너무 잘지내고 계신듯하다.
단 엄마의 간섭과 반복되는 같은질문들
그리고 저녁 7:25 이면 집안의 모든 전등을 꺼야하는 강박관념때문에
아버지는 좀 힘들어하시는듯했다.

하지만 아버지역시 노인이시라
초저녁 잠을 아주 잘 주무셨다.
7:25 에 꺼진 불은 담날 밝아질때까지
절대로 켜면 안되는 금기사항이었다.
오랫동안 그렇게 사셔서 그런지 아버지는
새벽 다섯시쯤 깜깜한 거실에 불도 안켜고
한숨만 깊게 내쉬며 앉아계셨다.
다행히 나역시 시차때문인지
초저녁 8시만되면 잠이 쏟아지던터라
두분의 취침시간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한숨소리에 마음이 쨘해져 내가 거실의 불을 켰다.
아버지. 뭐좀 드실래요? 했더니
아버지는 일어나셔서 냉장고에있는 생강 대추차를 꺼내드시며
아침엔 이거하고 계란 후라이를 먹으면 된다고 하신다.
주말엔 계란후라이를 두개를 해서 엄마와 한개씩 드시지만
평일엔 오전아홉시에 노인센터차가 오기때문에
센터에가서 삶은 계란을 드신다고 한다.

두분이 아홉시 정각에 노인센터로 가시고 나서
난 아파트전체를 대청소를 했다.
행주와 수세미를 삶고 도마를 끓는물에 소독하고
화장실에 묵은때를 락스로 덜어냈다.
엄마방에는 온갖 군것질거리들이 숨겨져 있었다.
정리를 마치고 나서

나는 다시 라크라센타로
동생이 일나가고
홀로 남아 집을 지키는
우리 강쥐 벨라를 보러 갔다.
산책을 시키고 오랜만에 내손으로 벨라의 털을 깎이고
목욕을 시켜서 말린뒤 한국 다이소에서 사온 옷을 입혔다.
너무 이뻤다.
한국은 강쥐옷들이 다이소에서 파는것들만해도 너무싸고 이쁘다.
털을 깎다보니 좀 짧게 깎아서 옷이 더 잘어울리는듯했다.
벨라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눈으로 말을 했다.
“엄마. 어디갔다가 이제왔어.
언니는 왜 안데려왔어? “하며 말을 하는것같았다.

사실 나는 이번에 벨라를
한국으로 데리고가려고 비행기티켓까지 다 알아봤었다.
그런데 부산아파트 집주인이 강아지를 못키우게 하는것이다.
남의집 사는 설움이 이것이구나 하고 속상함이 울컥 올라왔지만 어쩌랴…
몰래 키울수는 없지않은가. ㅜㅜ
할수없이 티켓도 취소하고 마음을 접었다.
벨라는 항상 동생을 반기고나서 나에게 온다.
잠도 동생과 함께 자고 동생 다리위에서 항상 늘어져있다.
이젠 엄마가 내가아닌
동생으로 바뀐걸까.
아직도 나를 쳐다보는 눈빛은 엄마를 보는 눈빛이건만
자기도 살아야 하기에
항상 늘 떠나지않고 옆에서 돌봐주는 이모를 엄마로 삼기로 결정했나… ?

아무튼 태어나서 우리집으로 올때부터
동생도 밸라와 함께 한 시간이 벌써 8년째다.
내가 있을때보다
벨라의 간식의 종류가 세배는 많아진걸 보니
동생도 우리를 그리워하는 벨라가 쨘했었나보다.
그래도 벨라가 건강해서 너무 다행이다.

부모님께서 구십 팔십대이신데
그간 병원에 입원한번도 안하고
일년을 보내고계셔서 그또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지난주 토요일에 오빠 가족이 떠나기하루전
우리는 모두모여 아사도와 엄마 좋아하시는 왕새우를 굽고
나는 샐러드를 세가지나 했다.
오빠가 좋아하는 동태찌개도 끓였다.
유방암 수술을 한뒤 당뇨와 갑상선 항진증까지 시달리는 올케언니는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말라있었다.
그렇게 이쁘고 곱던 올케가 어쩌다 이리됐는지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시도 쉬지않고
움직이며 일을 하려는 올케를 뜯어말렸다.
아무리 시댁이지만 여행와있고 몸도 안좋은데
가만히 좀 앉아서 먹으라고 해도
언니는 자꾸만 뭐든 하려고 하는것이다.
안아프다고 하면서 말이다.
며느리의 그런 모습을 보고 엄마는 말씀하신다.
넌 살을 빼고 보기좋다고… ㅜㅜ
그게 아닌데…
살이 그냥빠지는것하고
아파서 빠진것하고는 천지차이 아닌가.
엄마는 그런걸 분간을 못하시는것같다.
자꾸만 언니한테 살빠져서 이뻐졌다고 그러신다.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모진 시집살이 시키던 엄마보다는
약간 치매가 있으신 엄마가 차라리 나은가보다.
언니는 계속 어머니어머니를 부르면서 엄마기분을 맞춘다.
시집식구가 뭔지…
요즘 젠지세대는 안그러던데
우리올케언니세대만해도 시댁식구가 어려운세대인가보다.
그래도 언니 성격이니 우리오빠와 엄마를 버티고 살지싶다.
아무튼 오빠도 언니의 그런노력이 낳은 좋은남편으로 거듭나 있었다.

부부라는게 참 그렇다.
오랜세월 같이 조율하고 맞추고 살다보면
서로 닮기도 하고 척하면 서로의 생각을 알고
그렇게 나이들어가면서
지란지교를 꿈꾸는것같다.
서로 미운정 고운정이 쌓여 이제는 도저히 헤어질래야 헤어질수 없는 관계.
그게 부부인것같다.
황혼이혼이 유행이라고 하지만 난 그런건 반대다.
젊어서 만난 사람하고 끝까지 같이 가는건 의리같다
물론 예외의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젊어서 만난 부부들이 부러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냄새나고 얄밉게 굴어도 젊어서 같이한 추억이 있지않은가.
서로의 사랑안에서 맺은 자식이라는 결실이 있지 않은가…
이나이에 재혼을 생각하다보면 이래저래 걸리는게 너무 많다.
무엇보다도 젊은시절 서로 다른데서 각자 까먹고
늙은 몸둥이만 남겨진채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잘살수 있을까 싶다.
내가 재혼을 꿈구지 못하는 이유다.

이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이곳으로 올수 있을까.
그동안엔 비자때문이라도 삼개월에 한번씩 왔었는데
이젠 그럴 핑계가 없어지고 있다.
한국을 가면 한국이 좋고 미국을 오면 미국이 좋고
도대체 나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