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게
그리고 그것을 자각한다는게
이리 어려울줄 몰랐다.
나보다 피부가 조금 탄력은 있어보였지만
스타일이 내맘에 안들어서였는지
아니면 나를 언제봤다고 무턱대고 언니!언니 ! 하면서
서로 나이도 안깠는데 언니를 남발하는 그녀…
딸아이가 원어민 강사를 하게되어
다니던 바리스타 학원을 중도에 하차한관계로
나머지 수업을 내가 대타로 가게되었다.
첫시간이었다.
제비뽑기를 했다.
기계는 세대인데 사람이 다섯 사람이라고하여
기계하나를 두명씩 사용해
에스프레소 내리는 연습을 하게된것이다.
나는 원래가 제비뽑기같은건 특히나 소질이 없어서
기다렸다가 마지막 남은 하나를 골랐는데
그녀와 짝이 되었다.
차라리 미리 뽑을껄 후회가 되었다.
그녀는 제비뽑기를 통해
혼자서 기계를 사용하도록 당첨된
다른 아지매가 엄청 부러운듯
그쪽을 바라보며 연신 부러운 시선을 보냈다.
나보다 한수업을 먼저 들었노라 하면서
제법 잘난체를 많이 했다.
막상 나에게 지적질하던 그녀가
기계를 다루며 탬핑하고 추출하는 기술은
초보인 내가봐도 엉망이었는데
배운대로하지도 않고
나의말은 귓등으로도 안들으며
기계를 다루고 엉망으로 커피를 내렸다.
그러면서 내차례가 되면
내가 한가지 동작만 움직이려해도
언니!언니! 그게아니고예~
언니! 언니! 이렇게하시라고예~하는것이었다.
강사가 엄연히 있는데 마치 자기가 강사인양
나에게 잔소리를 해대면서
언니소리를 백번도 더 했다.
거의 세시간이란 시간동안
그놈의 언니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것도 짜증났지만,
잘난체하며 강사가 가르쳐준대로 하지않는게
더더욱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지만 난 그녀에게 지적질따위는 하지않았다.
담번 클래스에서는 절대로
다시 짝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담에는 제비뽑기에서 마지막것을 뽑지않으리라 다짐을했다.
만일 그녀가 하는행동이 내맘에 들었다면
설사, 나보다 나이가 더 많으면서
나에게 언니라고 불렀다고해도
그럴수있지…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을지 모른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그녀에게 이름을 물었다. ‘
양례’ 라고 했다.
한국이름으로 양례 라는 이름은 첨 들었다.
난 묻지도 않는데 내이름을 알려주었다.
내가 묻지도 않는데 내이름을 알려준건
더이상 언니소리를 하지말라는
무언의 암시였을터인데
그녀는 아랑곳하지않고나에게 말했다.
“지는 언니가 위로 둘이나 있어서예~
언니라고 부르는게 편해예!”
헐. 아니 내가 왜 자기언니야?
그래서 나는 나이를 물어보았다.
“몇살이신데요? ”
헉! 나보다 열살이나 어렸다.
자기 큰언니가 나랑 동갑이라했다.
난 바로 그순간 ‘깨갱’ 하며
아… “내가 큰언니랑 나이가 같군요…
“뭐라 반박할말이 생각이 나질 않았다.
내가그녀보다 열살이나 많을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거다.
오늘 두번째 수업을 들어갔다.
알러지 약기운이 채 가시지 않아 몸이 무거워 난 오분 지각을 했다.
오늘은 내가 늦어서 안오는줄알고
네명이서 둘씩 기계를 쓰려고 했는지,,,
제비뽑기를 안했다고 하는데
늦게도착한 나한테 혼자 기계를 쓰라고 했다.
너무나 좋았다.
양례는 지난번 혼자 기계를 사용하던 아지매랑
오늘 짝이 된듯했다.
그런데 가만 들으니
그녀에겐 언니라고 부르지 않는것 같았다.
내가보기엔
그녀도 양례보다는 나이가 훨 많은것같아 보였는데
왜 그녀에겐 언니라고 안부를까 의아했지만
그런것에 신경쓸만한 여유가 없었다.
기계를 혼자서 다루다보니 두배로 바빴다.
둘이 사용할땐
에스프레소를 겨우 두세번 뽑아보았는데
오늘은 혼자서 기계를 쓰다보니
에스프레소를 열번은 뽑은것같다.
강사가 내가 너무 잘한다고 칭찬을 수도없이 해댔다.
다들 헤매는데 난 혼자서 날라다녔다.
혼자서 기계를 사용하는 내가부러운지
양례는 힐끔거리며 쳐다보았지만
오늘은 나하고 인사도 안했다.
내가 먼저“양례씨”하고 불러보았지만
억지로 눈웃음만 주다말뿐이었다.
참 안맞는 사람이다.
이렇게 안맞는 사람은 또 참 오랜만이다 ㅎㅎㅎ
그래도 소중한걸 깨달았다.
양례 덕분이다.
내가 누가봐도 50대 큰언니로 보인다는걸 깜빡하고 살았다.
기분은 안좋았지만 인정할수밖에 없다는걸…
내가 사십대 초반시절에
50,60대들을 다 몰아서
나보다 훨씬 어른들이라고 생각했었던
그 과거를 떠올리게 된것이다.
그렇다 난 50대 그것도 중반으로 가고있다.
40대 중반들에게는 내가 큰 언니다.
암! 그렇고 말고.
나에게 그 커다란 진실을 깨닫게 해준
양례에게 고마워라도 해야겠다.
어렵게 기분나쁘게 그리고 처참하게
하지만 어른스럽게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50대 중반으로 보인다는걸…
난 내가 아직도 사십대라고 착각을 하며 살았던것같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말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말인데…
그 나이가
나에게
숫자가 아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어느새 내가 할머니도 될수있는 나이에 이르렀단 말인가…
손주나 손녀가 없어서
할머니라고 불리지 않는것뿐….
난 누가봐도 오십대 여성이고
이젠 내게 더이상의 젊은 여인의 향기는 없음을…
하루라도 빨리 일깨워준
어제와 오늘 이틀이 내게는 아주 긴 하루였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연세가 구십이신데..
어지럼증도 있으신데..
넘어지셔서 뼈라도 부러지시면
큰일이라고 지팡이를 사드리며
꼭 착용하시라고 말씀드려도
가끔 당신이 컨디션이 좋다고 여기실때는
지팡이를 들고 나오지 않으신다.
들고나오셔도
사람들이 옆으로 지나갈때
그 지팡이를
겨드랑이 사이로 숨기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난다.
왜 그러시냐고하면
할아버지로 보일까봐 그런다고.
이빨 빠진 호랑이는 싫으시다고…
말씀 하실때 이해가 안갔었다.
열살이나 어린 양례가
나를 언니라고
친근하게 부르는걸
삐딱하게 착각이나 하며
내나이를 인정하고싶지 않았던
나와 아버지가 뭐가 틀릴까…
내나이를 인지하고 나이들어간다는것.
그게 바로 잘 늙는거 아닐까…!
딸아이가 말한다.
엄마는 자기가 어렸을때처럼
머리도 길게 풀고
썬글라스도 하고
옷도 그때처럼 영하게 입으면 안되냐고.
왜 갑자기 아줌마가 됐냐고 그런다.
엄마는 이젠 그때처럼 영하게 꾸밀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고
수도없이 말해도 딸아이는 이해를 못한다.
그냥 지금의 나이들어가는 엄마가
적응이 안되나보다.
그렇다.
예전처럼 아무 썬글라스나 도스없이 사서 끼고 다니던
삼사십대 엄마는 이제 없다.
풀어헤친 긴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차창문을 열고 달리던
그런 와일드한 멋있는 엄마는
이제 사라졌다.
고무줄 바지 고무줄 치마에
내지는 상의 하의 신경 안써도 되는
원피스하나 걸치고
가벼운 천가방 하나 메고
딸랑 썬블럭만 바르면
나의 외출준비는 끝이다.
햇빛가리개용으로 모자라도 쓰면
딸은 난리가 난다.
제발 모지좀 벗으라고… ㅠㅠ
얼굴에 생길 기미나 반점을
걱정해야하는 나이가
딸아이에게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부족하다.
이제막 화장을 시작해서
나가기 한시간전부터 난리를 치는 딸아이가 보기에
엄마는 점점 할머니가 되어간다고 느낄지언정
이젠 어쩌랴.
난 이런게 편한걸…
나에게는 이런게 어울리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