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실바니아에 새벽 4시 도착해
마중나온 딸아이와 K의 반가운만남을 갖고나서
우리는 함께 어두컴컴한 새벽사이로
빛바랜 가로등들을 가로지르며
K가 사는 동네인 워싱턴빌리지에 30여분만에 도착했다.
단층집인데 지하가 꽤나 넓었고
K는 지하에서 혼자 생활을 한다고 했다.
남자혼자 사는장소치고는 매우 넓고 정리정돈이 잘된지하를
우리에게 제공했고, 날이 밝자 K의 부모님을 일층 부엌에서 만날수 있었다. 부엌에서 그리고 일층 거실에서 연출되는 선라이즈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멀리보이는 긴 산등성이 너머로
어제와 별반 다르지않은듯한 하루를 여는
수천개의 은은한 빗줄기 하나하나가
슬금슬금 아지랭이처럼 피어내리고 있었다.
하루를 맞이하기에 그만한 선물이 없었다.
난 그광경을 일층 거실창문으로 감상하며
Que Paz…..!( 스페인어로 평화롭다라는 뜻)를 오랜만에 외쳤다.
맑은공기… 청량한 하늘…그리고 고층빌딩이나 아파트단지조차 존재하지않는
워싱턴빌리지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더 여유롭게 해줬지만
나더러 그곳에서 살라고하면 글쎄다.
그런분위기에 뿅가서 조지아주 수와니로 이사가서는
별의별일을 다 겪고 상처투성이로 돌아온 쓰린 경험이 있어서인지…
선듯 그곳에서 살고싶다라는 생각은 들지않았다.

K의 아버지는 집에서 컴퓨터로 일을한다고 했다.
그의 엄마는 그집 세아이들이 모두 졸업한 하이스쿨에서
20년째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간단한 아침을 먹고는 바로 학교로 출근했다.
그의 아버지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셨다.
미래의 사돈이 될지도 모르는 그의 아버지는
빨간머리의 백인이었고 엄마는 멕시코인이었다.
막내 남동생은 누가봐도 백인인데
K의 바로밑에 여동생은
백인과 히스패닉이 섞인 K와
매우 많이 닮은 모습이었다.

나보다 하룻밤 먼저왔을뿐인데
그동안 페이스타임으로 몇번 만나서 그런지
그의 아버지와 우리딸은 매우 가까워 보였다.
둘의 대화가 온집안에 울렸고
딸의 행복한 웃음소리는
미래의 시부모를 향한 약간의 오버같기도 했지만 매우 귀여웠다.
이렇게 화목한 집안에서 자란 사람과 만나기를
내가 얼마나 기도하고 바랐던가….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듯한 딸아이의 모습이 마냥 보기좋았다.
그의 아버지는 매우 따뜻하고 자상하고
거기다가 겸손해 보여서 누구나가 쉽게 다가갈수 있을것같았다.

미국식으로 아침인사를 허그로 하고 커피를 마신후
그의 아버지를 남겨두고 우리셋만 나왔다.
K의 엄마가 일을 하는관계로
우리에게 아침을 식당에가서 대접하라고 했다한다.
시골의 독특한 식당을 갔다.
옷도팔고 커피도 팔고 여러 인테리어 장식부터 가구까지 파는식당이었다.

아침을 맛나게 먹고 K는 우리를 데리고 샤핑몰을 갔다.
역시 그의 엄마의 바램이라했다.
딸아이와 나에게 무엇이든 원하는대로 선물을 고르라고 했다한다.
하지만 우리는 끝끝내 미안한마음에 아무것도 고르지못했다.
호텔에 머물겠다는 우리를 기어코 그집으로 머물게한것도 미안하고 황송한데
무슨 선물까지란 말인가…
그렇게 샤핑은 아이샤핑으로만 끝났고 나는 죠앤을 가자고했다.
내가 짜서 가져온 덧신이 그의엄마발에 약간 작아보였기때문에
있는동안 새로 짜주고싶었다.
다행히 덧신을 너무나 맘에 들어하는 눈치였다.

그의엄마는 나와 동갑내기였고
그의 아버지는 멕시코사는 나의 오빠와 나이가 같았다.
비록 다른 문화권사람들로 만났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온 우리는 모두 친구아닌가…
그무엇보다 부모님들이 관리를 잘하는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내마음을 안심시켰다.
모두가 슬림하면서도 건강해보였다.
그 동생들은 스페인어가 서툴렀지만
나를 위해 배려함으로 영어로 말하지않고
스페인어로 말을 했다.
K가 우리딸에게 영어로 통역해주기 바빴다.
특히 그의 엄마와 내가 스페인어로 대화를 할때에는
완전 동시통역사처럼 우리딸에게 우리의 대화내용을 알려주었다.
둘은 혹여 본인들의 흉이라도 볼까싶어
엄마들의 대화에 유난히 신경을 곤두세우는듯했다.
둘의 그런모습은 무척 귀여웠다.

이틀밤을 자고 나는 다시 새벽에 캘리포니아로 오는 비행기를 탔고
딸아이는 다시 오빠집으로 가서 뉴욕에서 더시간을 보내다가 왔다.
아들과 화해를 하고 아들이 풀어져서인지
이번에는 아들이 자기동생을 유난히 반겼다.
담엔 엄마도 꼭 같이 오라며 서운함을 보였지만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엇다.
하지만 아들과 며느리와 셋이 카톡으로 방을 만들어서
이런저런 사진을 공유하고 그러면서 서서히 관계를 개선시키게 되었다.
나에게 언니라고 이제는 도저히 못부르겠다고 하여
그러면 ’엄니‘ 라고 부르라고 했더니 너무 좋아라 했다.
우리사이를 모르는 남들은 언니로 들을것이며
부르는사람과 나에게만 그소리가 엄니로 들릴것 아닌가.
어차피 이렇게된 마당에 호칭이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펜실바니아는 고즈넉하니 시골다웠으나
아이들이 결혼해서 살기엔 너무 무료한곳같았다.
K가 내년에 졸업하면 다닐거라는 회계사 사무실은
피츠버그 다운타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한다.
그래서 결혼을 한후
피츠버그 다운타운에서 1-2년은 살아야한다고 했다.
어디서 살든 가장 중요한것은
옆에 누가 있는지가 중요하니…
어디에서 둥지를 틀던 딸아이의 행복을 빌어본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인천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부산으로 이번엔 혼자 간다.
난생 처음 혼자살아본다.
무슨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한국을 향한 비행기에서 나는 설레여서 잠을 잘수가 없었다.
뜨개질을 하려니 밤비행기라 내좌석으로만 라이트를 켜게 되어있지만
그조차 자고있는 옆사람들에게 민폐일까 싶어서
잠깐 식사시간에 라이트가 켜질때에만 짜서 한켤레의 덧신을 겨우 만들어 신어보았다.

오늘부터 나의 덧신은 발레화모양으로 새로 업그레이드 한다.
아들과 며느리에게도 보내줘야 겟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