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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의 홈메이드 맘마

🤣 웃픈 저의 사이비 경험담 [feat. 돌잔치, 회갑연 & 소고기 야채 떡뽁이] Joanne Rhee (Glennymom) 2020-2-28  21:12:33

엄마가 되고 나서 부터는 하는 일도 더욱 많아지고 신경 쓰는 일이 많다 보니 피로도가 아주 극심해집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생기면서 저희 눈은 항상 무언가를 응시를 하게 되었고

자기 전까지도 쉬지 않고 눈을 혹사하는 상태로 두게 되다 보니

저희 뇌신경 자체가 제대로 쉴 수 있는 시간도 너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 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불안감이 매일 증가 되다 보니 

한국에 계신 부모님, 친구, 친지 등이 모두가 염려 되어 

애꿋은 스마트 폰만 붇잡고 뉴스며 각종 기사들을 확인하는 저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한국에 가족을 두신 다른 어머님들도 또 아이들을 키우고 계신 어머님들 모두

저와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정말 필요한 분들이 계실거라 생각하며 그 흔한 손 세정제 하나 구입해 놓지 못하고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 가지고 계시는 분들도 많으실텐데

많이 힘드시지요?


그래서 오늘은 어머님들께 오래전 저의 아들 돌 잔치날 있었던 이야기 하나 해드리고

잠시나마 피곤한 마음 놓고 가셨으면 하는 바램에서 

제 이야기 풀어 볼까합니다.


혹시라도 뜨거운 차나 커피 또는 음료수를 마시면서 읽어 내려가시면

저 밑에 사진 보고 아이폰이나 컴퓨터 모니터에 바로 푸핫~ 하고 입속에 있는

음료수 다 발포 하실 수 있으니 

될 수 있으면 아무것도 드시지 마시고 읽어 내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



때는 바야흐로 2천하고도 칠년 어느 겨울날


아들의 첫 돌잔치가 벌어졌던 그 날을 설명 하기 위해 저의 이야기는 1990년대로 흘러갑니다.



이민가방 4개에 군용 담요랑, 이불 

그리고 

사계절 다 날 수 있는 옷가지들이며

캠핑용 취사도구, 젓가락, 숟가락까지 다 짊어 싸들고 

어머님께서 제 영한 사전속 사이 사이에 $20불짜리 지폐로 끼워 넣어주신 

총 생활비 $300불을 들고 

뉴욕 JFK 공항에 도착 했습니다.




친척도 친구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 곳에

제 꿈 하나만 달랑 가지고 

남들도 다 한다는 그 "어메리칸 드림" 이 뭔지

나도 이루어 보겠노라 하고 왔긴 왔는데...


그게 말 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공항에 도착했던 그 날 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벼라별 산전수전 공중전 육해전 다 거치며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저를 도와 주는 사람도 

배고플까 염려되어 밥을 사주는 사람도 

하나 없는

이 뉴욕땅에서 

멘땅에 헤딩을 징하게 하다 보니

그냥 내 인생은 모든 것을 다 내가 혼자 셀프로 해내야 하는 삶인가 보다 하고

저는 지금까지 그냥 그렇게 무식하게

냉장고가 고장이 나도 제가 고치고

50파운드 무게 정도는 그냥 거뜬히 들고 이리 저리 삼종경기 선수마냥 뛸 수 있는

그런 힘쎄고 파워풀한 코뤼한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요즘 코로나 19로 인해 들통이 나버린  "신천지


아니 그들은 누구인가? 

도대체 뭐 때문에 온 국민이 그들로 인하여 이러한 아픔을 당해야 하는가? 

하고 이리 저리 정보를 찾아 보다

엇그제 유튜브에서 어느 젊은 청년이 자신의 신천지 탈출기를 솔직하게 털어 놓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영상을 보는 순간


앗!!!


"나도 그때 바로 저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그런 상황이었쟎아, 이런~~?"


나도 비슷하게 나마 그렇게 빠질 뻔 했던 그 일들이 

순간 

마구 마구 

제 눈앞에 주마등 처럼 쉬익 쉬익 하며 지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신천지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그 젊은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거라는 생각이 

가슴에 아주 찐하게 퐉 내려 앉았습니다.


동변상련의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그 당시 돈을 벌지 않으면 먹고 살수 없었기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다 닥치는데로 했습니다.


그때 잠시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하던 곳 중에 하나가

이곳에 상주 하시던 기자님을 돕는 일이었는데

그 분께서 한국에 아주 잘 나가는 한국 여 사장님이 

지금 뉴욕에 오셔서 공부를 하고 계시니 그 분을 소개를 시켜 주신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자님 왈


"알아 두면 나중에 큰 도움이 될 거야, 그러니 잘 해 드려" 라고..



나중은 개뿔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정말 잘 나가신다는 그 여성 쏴장님을 뵈로 

그 분이 살고 계신 아파트로 찾아 갔었고

그리고 첫 날 저는 

제 눈에는 정말 멋져 보였던 

그 젊디 젊은 여 사장님께 그냥 푸왁 꽂혀 버렸습니다.


상당히 온화하셨고, 인자하셨고, 그러면서도 기품이 있는 듯한 

하지만

뭔가 상당히 촌스러운.. 그... 말로 표현이 좀 불가한

아시죠? 여러분... 왜 아무리 명품 옷을 입었어도 어딘가 2% 부족해 보이는 그 이상한 분위기...

어쩃든

쎈스 감각도 쫌 떨어지셔서 제가 화장하는 법도 가르쳐 드리고

옷 입는 법 등등 살짝 살짝 가르쳐 드리며 

저희 둘을 그렇게 정을 쌓아 나가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종종 그 분이 살아 오신 그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말이죠.


아.. 그래, 나도 이렇게 살아야 해. 사장님 처럼 그렇게 살자 하는 생각이 

그냥 머리속에 마구 마구 박혀 버렸습니다.


전 그 분이 그냥 "진리"라 생각을 했었어요.


네에~~~~


저 엄청 순진 단순 그 이상 뭐 바보 말미잘이라 해도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그 당시에는 그분의 묘한 파워에 눌려 살았던 일명 이상한 사이비 종교의 한 일원 정도 밖에는 안되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쨋든 저는 그 분을 뵙고 난 이후 부터 완전히 그 분의 딱갈이가 되어 

잠시 뉴욕에 연수차 오셨던 그 사장님의 수발을 다 들어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제 일 하면서 그 사장님댁 청소도 해 드리고, 밥, 빨래 그리고 

페이퍼까지 써 드리기도 했구요.


그땐 제가 정말 너무 너무 배가 고팠던 때라

그 분의 말씀이 모두 다 그냥 "신"이다 할 정도로 느껴졌었고 

이 험한 세상 헤쳐 나가려면 그 분을 믿고 따라야 한다 이런 


(여러분이 들으시면 "이 무슨🐶소리야")라는생각을 했었지요.


그리고 제가 그렇게 그 분을 위해 일 할 때면요... 항상 이러셨어요.


"그 궂은 일이 다 너의 복을 짓는 아주 좋을 일이란다" 


그리곤


그 분 또한 한국에 계시는 그 선생님들을 위해

대학생때 부모님을 버리고 집을 나와서

그 선생님댁에서 자취 하시면서

지금 제가 사장님을 그렇게 깍듯히 모시듯 

사장님 또한 식모와도 같은 일을 매일 손수 하셨다고 

저도 그렇게 하면 다 그 복이 제게로 온다고 귀에 딱지가 않도록 말씀 해 주셨었어요.


어쨋든 그렇게 저는 그 분을 통해 "금강경"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고

또 독송도 매일 해야만 했었지요.


그렇게 저는 매일 무릎 꿇고 하루 30분 밤낮으로 마루 바닥에 짓이겨지는 제 무릎이 아파도 꾹 참고

금강경 독송을 무슨 암호 낭송하듯 "옴아라남 아라다 옴아라남 아라다~~" 줄줄 외기 시작했었고

하루 하루 그 분께서 시키는데로 하며 세뇌를 당하고 있었는데

그 분 또한 신천지에서 사람들 포섭할 때 하는 이야기 처럼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의 부모님은 그냥 몸만 빌어서 너를 태어나게 해 준 사람이니

이제는 그 사람(저희 부모님)을 모시지 말고 나를 모셔야 한다라고..

부모와 인연은 그것으로 끝난거라고..(내 도그 사운드 다시 나옵니다. 왈왈!~~)


그리고 그 위에 선생님 두분도 함께 계시니 나와 함께 그 분을 잘 모시면 

다 제게 좋은 일이 되거라 말씀 해 주셨지요. (멍멍~~)



전 참 순진하게도 그렇게 저의 부모님 마음을 후벼 파기 시작하는 아주 몰상식한

유학생이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1년을 그분을 위해 성심 성의것 모셔 드렸고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저희 부모님께 


"엄마, 저기,있쟎아... 나 배가 너무 고팠을 때 밥 한끼 따뜻하게 사주셨던 분들이 계시는데

그 분께 고맙다고 엄마가 인사를 좀 가주면 안될까...."

하고 부탁을 드렸었어요.

제가 유학 와서 엄마에게 처음으로 한 부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 글 읽어 내려 가시는 분들 중에는

그 밥 한끼가 뭐라고 그거에 넘어가나 하실 분들도 분명 계시리라 믿어요.


그런데말이죠. 정말 배가 창자가 다 뒤집어 꼬일 정도로 고프면요

쓰레기통 뒤지는 것도 전혀 창피하지 않게 되구요

남의 이목 뭐 이런 것 신경쓸 여유 조차도 없어지게 되어요.


춥고 배고픈데 그 춥고 배고픈 그 마음을

따사롭게 안아 주는 사람이 

나긋 나긋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누가 아무도 아닌 너에게 이렇게 밥을 사주겠니...?"하며

거칠어진 제 손을 꼭 잡아 주면서 

함께 눈물 흘려 주면요 마음이 그냥 확 빨려 들어가죠.  여러분도 그럴 것 같지 않으신가요?


은행통장에 남은 잔고 3불...

앞도 막막하고 배는 고프고 그럴때 

아주 훅~~~~ 하고 들어오는 검돠.. 넵!!


그래서 저도


"그래 맞아, 댓츠 롸이트!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먼지와도 같은 나에게 "후 바이 미 롸이스"라고요...


여러분들이 보시기에는 정말 별 것 아닌 칼국수 한 그릇이었지만요.

제게는 너무 고맙고 따뜻했고 배가 갑자기 터지도록 부르다 보니 그 뜨끈한 칼국수에 맛이 푸악 가버린거죠.


아, 그때 제게 해 주셨던 말씀도 하나 있어요.


어디 가서 밥 먹을 때 항상 남기지 말고 싹싹 다 먹으라고.


반찬도 다.... 국물도 남기지 말고.. 다~~~~ 


그래야 치우는 사람도 편하고 또 그 음식 만들기 까지

고생한 사람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는다고


베 부르다고 남기면 그게 다 제 복이 날아가는거라구 하셔서

그땐 전 없어서 못 먹을 때라 에헤라 디야 하며 국그릇, 접시, 반찬종지 뭐

다 개 처럼 핣아먹을 수 있어 너무 좋았죠.


그래서  전 사장님이 시키는데로 모든 일과 생각들을 그 분의 뜻대로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었고

또 그 분 집 청소하고 빨래 하고 일 해 드리고 하는 모든 것들이 그냥 싫지가 않았어요.


한마리로 넘어간거죠. 획가닥하고... 완전 몰빵!!



이제 이렇게 나이 50이 넘어가 이번 신천지 사건들을 한발짝 뒤로 물러 서서 지켜 보니


신천지에 빠진 젊은 사람들 대부분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미래가 많이 두려웠을텐데

누군가가 다가와서 

내 마음을 알아 주고 다독여 주고 

너의 불안한 미래에 희망이 되어 주겠다고

그리고 환한 불 빛이 되어 주겠다고 

손을 건내는 사람들이 옆에 거머리 처럼 뜨왁 붇어 있다면

그 어느 누구도 그들의 속삭임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없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 부모님은 없는 돈에 딸 유학 보내 놓고 

단돈 십원 한장 보낼 수 없어 항상 가슴 조리고 계셨는데

누군가가 아무도 아닌 제게 따뜻한 밥을 사주신 고마운 분이라고 

제가 감사의 인사만이라도 해 달라 부탁 드렸을 때 단숨에 허락 하셨어요.


그리고 그 선생님들 만나러 가시기 전에

어머님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음식들 바리 바리 싸 매고

그 먼 시골까지 그 선생님이란 분을 찾아갔었죠...


그리고


거기서 


모든 



사단이 





다.


그곳에서 일 하시는 분이 나와 

아주 쌩하게 부모님을 맞아 주셨고

한참을 추운곳에서 기다리게 하셨다고 어머님께서 말씀 해 주셨어요.


그리고 한 참후에 선생님이라는 두 분을 뵙기 위해 어디론가 부모님을 모시고 가셨는데....


그곳에서 부모님 무릎을 꿇게 하셨고 절을 하라고 시키셨다고...


그리고 선생님을 만나 뵙고 오신 그 날 엄마가 전화를 주셨습니다.


띠리링~~~


(떨리는 목소리로)


주현아, 내 딸


거기 아니야... 엉엉~~~훌쩍 훌쩍~~


아니 왜 내 딸이 그런 곳에 들어가 있어?

네가 그래서 부모는 그냥 껍대기라고 그렇게 이야기 한거지? 너의 진심이 아니지? 


엄마가 우리 사랑하는 거 알지?

넌 하나 밖에 없는 내 딸이야.


난 그것도 모르고 네가 왜 그렇게 엄마한테 그러나, 힘이 들어서 그러나 했었지...


딸, 지금 그 사람 한테서 빠져 나와야 해...


하시며 대성통곡을 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저는 잘 모르지만

어머님께서 그곳까지 가는 그 길도 이상했고 

또 그 법당이라고 하는 그곳에서일을 하시는 모든 분들도

무언가 이상했다고 말씀을 해 주셨었요.


그 날 그렇게 엄마랑 한참을 이야기 했고 

그 이후 

전 또 다른 고민의 숲에 빠져서

심적으로 상당히 괴로운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갈등을 때렸죠.


부모냐 스승이냐


하지만 부모자식간의 천륜은 못 끓는다고

저는 부모님을 택했고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또 흐르고...

흘러


한국에서 고생 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빨리 성공 해야 겠다는 욕심만 앞세우고

일만 죽어라 하는 사람으로 변해서

많은 인생의 쓴맛도 아주 버롸이어티 하게 경험했던

지난 날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이렇게 보면


우선 사람은 가진게 (특히 돈과 권력) 없으면


항상 을의 상황에 놓일 수 밖에 없고

갑에게 완전 눌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냥 껴 안고 가야 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을요.



이번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 "기생충" 처럼



나는 너에게 돈을 주고 우리 집 청소를 시키는 사람이고 너는 그냥 돈 받고 일만 해 주면 되!

난 너의 인격이나 권리 뭐 이런 것 신경안써, 

그러니 돈 받은 만큼 내가 시키는대로 대꾸 하지 말고 일만 하라고...

까삐이~쉬? (유 언더스탠드?)


라는 수 많은 "갑과 을"의 상황을 아주 다양한 환경속에서 경험을 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이런 저런 벼라별 꼴을 다 거치고 거쳐오면서

또 저는 우연하게도 또 어떤 스님을 만나게 되었죠.


그 때 그 스님께서 제게

"절까지 가려면 많이 힘이 든데 좀 태워다" 달라고 하셨습니다.


전 그때 시아버님이 살고 계시는 택사스에 가서 500불을 주고

똥차 포드를 한대 구입 했던 때이고...


똥차에 관련한 너무 재미난 이야기도 있는데 오늘은 아들 돌잔치에 포커스 해서 이야기 해 볼께요.  


어쨋든

그렇게 저는 또 뉴저지 저 깊숙한 어느 절과 인연이 되었고

그 절에 공양간(식당)에서 상당히 오랜 동안 부엌일을 하게 되었슴돠.


일요일 법회 시간에도 법당에 올라가지도 못했고

그저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던 스님의 법문을 그렇게 라도 들을 수 있는 것이

그저 행복했던 때였습니다.


전 그 법당에 올라갈 자격이 안된다고 생각했었고

공양간에서 음식 만들고 설겆이 하며

예전에 그 사장님께서 해 주셨던 말씀 처럼 

궂은 일도 내일 처럼 열심히 하면

다 그게 내 복이 되는 거라고 굳게 믿었어고 

항상 최대한 낮추고

말도 아끼고 

그렇게 조용히 몇년을 일을 하다

그 곳 주지 스님께서 이제는 일요 법회에 올라와도 좋다라고

한말씀 해 주셔서 그렇게 법당 저 뒷구석에 처 박혀서 스님 법문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공양간에서의 탈출이었죠.


사실 예전에 식당에서 일을 할때도 전 최고의 서버로, 또 최고의 설겆이 걸로

시키는 일은 똑뿌러지게 정말 아주 잘했었어요.


저를 베이비 시터로 고용했던 고용주도, 청소를 시켰던 주인들도, 식당 오너들도

다 저보고 너 처럼 일을 잘 하는 사람 못 봤다고. ㅋ

넌 베스트 디쉬 워셔라고....


디쉬 워셔 이야기 나와서 한마디...


저 예전에 대학원 다닐 때 생활비를 어쩔 수 없이 벌어야 했기 떄문에

불법인 것 알면서도 식당에서 일을 했을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처음 부터 서버로 일을 시키지 않으셨고

처음에는 키친 구석탱이에서 접시 닦이로 일을 했었어요.


그렇게 오랜 동안 한 6개월 이상 디쉬 워셔로 일을 하다 

저희 식당 주인 아저씨(이스트 빌리지 8가 있던 세이트 막스 카이버패스 미스터 샤 사장님)께서

홀로 나와 서빙보라고 했던 그때

그 어느 대 기업 프로모션 보다도 제게는 큰 기쁨을 주었던 때가 있었어요.


매일같이 숨도 쉬기 어려운 그 좁고 뜨거운 열기 속에서

탈출을 해 홀에서 서빙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남편에게 저 승진했다고 얼마나 자랑을 했는지 몰라요.


그리고 제 앞치마에 매일 같이 쌓이는 수북한 1불짜리 지폐 팁들을

집에 와서 셀 때의 기쁨은 정말 이루 말 할 수가 없었어요.


꼬깃한 그 지폐들이 얼마 되지 않지만 제 혼자 힘으로

일해서 그렇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기쁨이 얼마나 컷는지 몰라요.


그리고


매일 같인 접시만 닦다가 홀로 나왔던 그 순간...


그 홀안의 공기가 얼마나 상쾌했는지....



제가 여기 까지 왜 이런 말들을 이렇게 장황하게 하는지 많이 궁금하셨죠...


제가 20대 초반 유학의 길을 시작하면서 부터 50이 된 지금까지 

줄곧 

일-집-일-집 이렇게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을 사귈 시간도 없었고

친구들과 함께 나가서 어울리고 놀 시간도 없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 제가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사회생활이라고는

오로지 절에 가서 밥 퍼주고 나르는 일만 하다보니

제가 아는 사람이라곤

다 나이 많으신 할머님이나 어머님 벌 되는 분 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임신하고 출산 앞두었을때  "베이비 샤워"가 무언인지도 몰랐었던


한마디로 한국서 온 아무것도 모르는 촌띠기 촌년이었을 때가 있었어요.


그냥 시키면 잔소리 없이 "네" 하는 그런 사람이 저였어요.


어쨋든 제 아들 돌잔치 이야기 하려고 서두가 엄청 길었는데요.


베이비 샤워는 앞으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 

엄마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초대하신 분들을 위해 열심히 만들어 드려야 겠다라는 생각 밖에는 없었어요.

(그땐 아이폰도 없었고 어디가서 물어 볼 만한 분들도 제 주위에는 없었어요...)


그때 제게 어느 분이라도 

"베이비 샤워는 엄마가 하는게 아니라 친구들이 해 주는거야"

라고 이런 말을 해 주셨으면 어차피 없는 친구

"제가 그냥 좋은 마음으로 공양하고 싶어요.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을 텐데 

다 나이 많으신 분들이라서 그랬는지 아무도 제게 그런 말씀을 해 주신 분이 안계셨더랬어요.


그래서 고지식한 저는 또 무식하게 그 많은 음식들을 다 만들기 시작했었죠.


그리고 또 예전에 모시던 그 싸좡님께서 하셨던 그 말씀들이

마구 귓전에서 울리기 시작했죠.


내가 전생에 지은 죄가 많아서

이렇게 몸으로 고생해야 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음식으로 나누어야 복을 쌓을 수 있을꺼야라고

하신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항상 그렇게 살고 있었던 때가 있었는데

그 마음이 지금 이 순간도 그리 많이 변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기 임신하기 전 부터

저랑 신랑이랑 허리띠 졸라매고 맨하탄에 살 집 먼저 구해야 한다고

돈 엄청 모으고 모아서 드뎌 집을 샀어요.


그리고 임신 하고 얼마 있다가 론을 얻어서 

아기 나오기 전에 네스팅 제대로 한다고 다 뜯어 고치는 바람에

집 없이 떠도는 부부가 되었지요.


이 사진은 저 출산 1주일 남겨 놓고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들어가 먼지구뎅이에서 먹고 자던 하던 사진이에요.  
제가 출산일이 언제니 적어도 2주전에는 끝내 달라고 그리 사정을 했는데
일꾼들이 세월아~ 내월아 애가 나오던 말던 우리가 상관할 바 아니요 하는 바람에
제가 출산 딱 1주일 남겨 두고 집으로 쳐 들어가 
아침에 오는 일꾼들 밥 시켜주고 간식 챙겨가며
집에서 절대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게 해서 공사를 끝낸 그 때에요....

그런데 정말 웃긴 것이 하나 있는데요.
제가 뱃속에 아가 한테 아직 공사 안 끝났으니까 지금 절대 나오면 안된다고 계속 신신 당부를 했어요.
아직은 아니라고...


추수감사절 일주일 후여서 한국서 오시는 부모님과 감사절도 함께 보내고
저는 엄마랑 적어도 한 일주일은 제가 하고팠던 것들도 하며 여유있게 출산 하려고 했는데

제가 아가에게 공사 내내 당부했던 "공사 끝나면 나와도 된다"는 
그 말을 그대로 따랐던 
착한 아드님께서 마지막 공사일꾼이 가고 난 추수감사절 하루 전 밤 7시 반에 정확하게 양수를 터트려 주시고 
한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감사절도 잘 보내고 놀다가 
아기 낳으려고 했던 제 계획은 완전히 무산된체 
저는 그때 부터 부랴 부랴 청소를 하기 시작했죠.

내일 부모님 오시는데 아직 청소도 제대로 못하고 집에 온기도 없고...
미역국도 끓여 놔야 하고 등등....

혹시 저의 출산기를 좀 더 보고 싶은 분들은 요기 아래


아기 낳고 많이 힘드신 우리 젊은 새내기 주부님들 계시면 꼭 한번 읽어 보시구요. 힘내셔요!!


그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그렇게 임신한체로 집 없이 

여기 저기 보살님댁에서 눈치 보며 잠시 머무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리며 민폐아닌 민폐도 끼치고

저는 너무 죄송스러워서 머무르고 있는  그 집에 계신 분들 위해 

밥도 해 드리고 집도 관리 해 드리면서 전전하는 그런 생활을 임신 막달까지 했었습니다.


(일 끝나고 집에 오면 그러지 않아도 많이 붇는데 제 발은 완전 코끼리 저리 가라도 팅팅 뿔어서

많이 힘들었어요. 흑... 경험 해 보신 어머님들은 아마 이해 가시리라 생각합니다.)


몸이 점점 불러 오면서 오래 서 있는게 불편해서 일하기가 많이 힘들었지만

그 당시 파티 케터링 회사에서 일이 있으면 항상

가서 음식 세팅하고 만들고 하는 일을 하면

하루 일당이 꽤 괜찮았던터라 일도 계속 하고 또 손으로 섬세한 일을 하는 것이

태교에 좋다고 해서 일을 계속 했었어요.


그리고 베이비 샤워 하기 전날....

마음씨 좋은 보살님 댁에서 작은 파티를 할 수 있도록 허락 해 주셨고

베이비 샤워 하기 전날 밤 - 내일 할 파티 셋업 하라고 해 주신 그 보살님이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테이블에 놓을 꽃도 장식하구.  물론 종이 접시랑 플라스틱 웨어지만 나름 열심히 준비 한다고 가서 셋팅 하구

내일 오신 손님들 집에 가실 때 드린다고 쿠키들 잔뜩 구워서 선물박스 준비 해 놓은 사진이에요.


그리고 드디어 베이비 샤워 날!!

(제가 손이 엄청 커요. 아주 많이요. 너무 하다 싶을정도로...  저 위에 사진들에 있는 음식 외 보이지 않는 음식들도 많은데

저 음식들 다 저 혼자 만들었어요.  완전 ㅁㅊ 소리 나오실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저도 이제 보니 완전... 흑=)


그런데 제가 워낙 임신 전 부터 일을 많이 했던 터라

워낙 매도 맞아본 사람이 잘 맞는다고

일 하는데는 이력이 나서 뭐 그리 힘들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어요.


그래서 몸이 힘들어서 힘든 것 보다는 배가 불러오면서 먹고 싶은 것이 마구 생길 때

엄마가 옆에 있으면 함께 먹으러라도 갈텐데

아니면 친구라도 옆에 있으면 같이 가달라고 부탁이라도 할텐데

그런 인연이 없어 조금 서러웠던 기억이 많이 나요.


하지만


만화속의 캔디 처럼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하면서


남산 처럼 부른 배를 가지고 혼밥 하러 많이 다녔었습니다.


임신 하구 먹고 싶은 것 당길 때마다 식당 가서 

항상 2인분씩 시켜 먹다 보니

종업원 언니가 항상 누구 더 오시냐고... 해서


"아뇨 언니. 여기 이 안에 있는 이 아가랑 함께 먹어요"

하며 웃음 날려 드린 곤 했었어요.


저 요즘에도 가끔 한국 음식이 너무 너무 먹고 싶을때 식당 가면 항상 2인분씩 시키는데...


혹시라도 뉴저지에 식당 주인 아주머니나 종업원 언니들이 이 글 보시면

아.. 그.. 혼자 와서 항상 2인분 시켜서 먹고 가는 언니~~다 하실 수도 있을텐데...

저에요.. 

혼자가서 항상 이것 저것 다 시켜 먹는 뇨자요... ^^


어쩃든....


그렇게 우여곡절의 시간이 흘러...


저희 아들 돌 잔치 날이 되었습니다.


두둥~~~


저희 아파트에서 조촐하게 나마 제가 아는 분들


노보살님들, 스님들, 저희 아파트 이웃들, 신랑 회사 사람 몇분을 초대해서 치루게 되었는데...


그 날 제가 집에서 이것 저것 준비하느라고 돌 떡을 픽업 하기가 어려워서

뉴저지에서 오시는 보살님들께 부탁을 했었지요.


그리고 떡 픽업 하시면서 돌고임도 함께 가져 와 주십사 부탁을 드렸는데...


저희 아들 오래 살아라 라는 마음이 담기셨는지


돌고임 픽업 해 주셨던 분이 "회갑고임"을 픽업을 해 주셨었어요. 


그리고 돌잔치 테이블 세팅도 보살님들의 스톼일에 맞추어서 


이렇게 뚜왁~



그리고 아주 큰 쓰레기 봉투에 담아 오셨던 돌고임

봉지를 여는 순간 (엄니들 마음을 녹였던 드라마 "사불" 톤으로 들어 보시라요)

아니 이 색깔이 와 이라네?

저 윗동네 누렁이 새끼 똥색깔이랑 똑같은것 같은디? 안그라네? 

이 뭐네?

하고 꺼내어 보니

뒷목이 갑자기 뻐근해 지면서 두 눈알이 튀어 나오는 듯한 뻐근한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혈압의 스멜이~~~~~



와와아아아악~~~~ 회갑고임이쟎네....



순간 웃을 수도 없고 울을 수도 없었습네다.

그 먼 곳에서 마음 써 주시면서 가져 오신 그 고임을 안 올리자니
수고하신 분의 성의를 무시하는 처사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상위에 회갑고임을 
그대로 돌상에 올렸습네다.

그 날 어느 누구라도 돌상에 올라간 고임이 회갑고임이니 당장 내려 뿌려라, 
아니면 뒤집어서라도 놔라 하고 한마디만이라도 해 주셨으면 좋았을텐데... 
어쨋든 그렇게 저희 아들은 한살 돌잔치에 미리 회갑연을 했습니다.

아마도 이 세상 어디에서도 회갑고임을 올려서 돌잔치 한 사람은 저 밖에 없을텐데 아주 독복적이지 않슴꽈?

이쯤에서 엄니들 마구 마구 웃으셔야 하는데 웃고 계심꽈??

라면 먹다 보시면 라면 다 모니터에 다 튀김다. 알아서 날래 날래 드시고 다시 읽어 주시라요.



이제 저희 아들내미 14살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몰라요....

저희 신랑도 몰라요.

그냥 제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잼나게 이야기 하려고 마음속에 오랜 동안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사태로 마음 울적 하신 어머님들이 너무 많을 것 같아
저희 아들의 인생에 한번 밖에 없는 "돌 + 회갑잔치" 사진 보시고
그냥 활짝 한번 웃고 가시라고 저의 웃픈 사연 나누어 드렸어요.


저도 한국에 부모님이 계시는 상황이라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 아침에 연락을 드리고 있는데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하는데
계속해서 안 좋은 일들만 일어나서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어머님들의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해 드릴까 싶어
13년 동안 꽁꽁 묶어 두었던 
저희 아들의 돌 & 회갑잔치 사연 어머님들께 함께 나누어 보았습니다.

재미 있으셨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님들 모두 자녀분 건강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지요?

학교도 매일 가야 하는 상황이고
또 방과 후 수업 외 팀 운동도 계속 하는 상황일텐데
그래도 
우리 아이들 운동도 많이 하고 건강하니 
이번 사태 무사히 잘 이겨 나갈 거라 굳게 믿어요.


그리고 

저희 어머님들께서 무너 지시면 아이들이 더 힘들어 질 수 있으니까

이번 사태 잠잠해 질 때까지만이라도

최대한 달달구리한 음식이랑
페스트푸드
인스턴트 음식 

등은 최대한 피해 보시구요.

이런 음식들이 저희들의 면역성을 많이 떨어 뜨려요.

그리고 이번 코로나 사태를 기회 삼아
전투 식량을 최대한 자연식으로 준비를 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야채도 얼릴 수 있는 것은 꽁꽁 얼려 놓고

고기도 얼려 놓고

그리고 최대한 소식으로 단백질과 섬유소가 듬뿍 뜬 야채로 한끼 채우며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먹는 습관을 들여 보시구

하루 단 10분이라도 할 수 있는 운동 딱 하나만이라도

매일 꾸준히 해 주셔 보시구

물 많이 드시고

잠도 최대한 주무시면

어느 정도 면역성 충분히 키울 수 있으실꺼에요.

저희 어머님들 모두 이번 일 무사히 잘 넘어 갈 수 있도록 
저희 모두 서로 조용히 응원하고
한국에 계신 여러분들도 모두 
이번 사태 최대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이겨 내시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궁중 떡뽁이 비스꾸리무리 한 레서피 하나 남겨 드리고 들어가겠습니다.

온 가족 맛있게 해 드시구요. 

우리 모두 건강하자구요!!!

세입 공주(새리동무)가 좋아하는 그 괴기 듬뿍 넣고 만든
비푸 버섯 아스파라거스 롸이스 볶음

4인분
재료:
양파 큰 것으로 한개
버섯 (좋아하는시는 만큼)
샤브용 소고기 (두근 정도)
떡국용 떡 1컵 반 내지 두컵 
아스파라거스 10개 (브로콜리/그린빈/양배추/피망/당근 등으로 교체 가능 또는 다 넣어도 무방)
간장
참기름
옵션: 메이플 시럽
1. 우선 양파 먼저 예열한 팬 위에 놓고 달달 볶아 주시라요.
2. 양파가 투명해 지면 버섯 투하 해서 살짝만 볶아 주시라요.

3.준비된 샤브용 소고기 있으면 인정사정 없이 팍팍 넣어 주시고 
집에 있는 간장 입 맛에 알아서 넣어 주시고 괴기에 간이 베도록 잘 구워 주시라요.

3-1 괴기 넣고 구우실 때 떡국떡이 냉동 된거라면 찬물에 한번 헹구어서 
옆에서 끓고 있는 뜨거운 물에 퐁당 넣고 살짝 말랑해 질 정도만 한 20초 정도 휙 넣었다 뺀다고 생각하시고 익혀 내 주시라요.

폐경 다가 오면서 부터 깜빡 깜빡하는데 떡 넣고 갑자기 딴 짓 하다가는 내 말 안해도 알갔지요?

4. 아스파라거스도 먹기 좋게 떡국떡 사이즈로 송송 썰어서 투하 + 볶아 주시면 되는기야요.

5. 자 그라믄 아까 살짝꿍 익혀낸 떡 투하 해서 함께 맛있게 볶다가 간 한번 봐 주시라요.

우떻게 어머님 입맛에 맞으면 좋겠는데 워떱니까? 

간장+메이플 시럽(없으시면 달달구리한 아랫동네에서 사용하는 그 비싼 하얀가루) 넣어서 간 맞추신 후에


6. 다 완성 된 것 같다 싶으면 불 완전히 꺼 주시고 참기름 쭈르륵 투하 해서 사르륵 섞어 주시면

이렇게 푸짐한 한끼 식사가 되지 모겠습니까?

어머니들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잘 이겨 내자요.
그리고 잘 드셔야합네다.

엄니들이 건강해에 우리 꼬맹이들도 가족들도 다 건강하지 않겠슴까?

지금 이시각 어디에선가는 아마 엄청나게 힘드신 분 아주 많이 계실거라 믿습네다.

아~~ 아~~ 사불 어투 방송 여기서 그만.... 치치지익~~~


전 세계가 힘들다 보니 뭐 해서 드시라고 하는 것도 
상당히 조심스럽고 미안허고
그랴서 저 혼자 막 룰루랄라 할수 없는 상황인 것 아는디유.

몇일전에 저희 동네에 살고 계시던 나이 지긋히 드신 거의 100세 까지 살고 가신 
할아버님 한분이 돌아가셨어라.

그래서 이번주에 장례식 한다고 저희 엘레베이터에 붇혀 놨는디유.

그런데 말이여유...

오늘 2월 29일, 2020년은 그 분이 이 자리에 이제는 안 계시쟎유.
그런데 
이 세상은 오늘도 그냥 똑같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구유

오늘 오전에도 학교가는 아이들...
운전하시며 일터로 가는 여러분들...

그리고 또 이렇게 제 글을 지금 이 순간 살아서 보시고 계시는 분들까지...

이 세상은 그냥 그렇게 누군가는 가시고 누군가는 아직도 살아서 이 순간을 살고 있다는 거쥬.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겄지만
오늘 이 순간만이라도 울 엄니들 위한 순간이 꼭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라구유.

잘 될거야 하구 우리 다 함께 이겨 내자구유!

할수 있다고 생각하시고 

1. 건강한 것 잘 챙겨 묵고

2. 운동 매일 10분씩 꼭 하시구유.

3. 물 많이 마셔야 하는 구만유 (2리터는 기본이여유. 수족냉증 그리고 관절 뻐른해 지지 않으려면 꼭 드셔야 혀유)

4. 야채도 많이 드시구유.

5. 군것질로 스트레스 풀지 마셔유.

그리고

6. 잠도 잘 주무셩야 하는디유. 

이게 말여유. 운동 빡시게 아주 빡시게 근육이 손상 될 정도로 하믄유. 
재생이 되는 과정이 필요한께 뒤통수만 대면 그냥 퐉 하고 쓰러질 정도로 잠이 잘 오는 명약이 될 수 있구만유.

몸을 그냥 가만히 아끼시면유 잠이 안와유.  
그랴서 폐경 후에 홀몬 변화로 몸에 여러 반응이 나타나는데
운동까지 해 오지 않던 몸이면유 불면증으로 엄청 고생 하실 수 있응께
지금이라도 안 늦었응께
그냥 단 한가지라도 매일 아주 욕 나올 정도로 힘들게 쪼매만 꼭 해 보셔유.

한시간 안해도 되유.

단 10분이라도 꼭 잘 하시면유, 멜라토닌 뭐 이런 것 먹지 않아도
잠도 잘 오구유. 우울증에 걸리지도 않아유.

모든게 다 이 생각으로 만드는거쟎아유.

지금 엄청 힘든 분 많이 계실거라 믿어요.

그랴도 힘들다고 계속 생각하면 힘들게 된께
뭐 이정도 힘든 것 쯤이야 하고 좋은 것 계속 생각하시고
계속 무거운 영화나 드라마 대신에 밝고 기분 좋은 영화라도 보시구유.

지가 요 아래 스쿼트 점프 하는 것 하나 달아 볼께유.  
절대 유튜브 시청률 올릴려고 이런 글 썼다, 뭐 한다, 광고 한다 뭐 이런 맴 아픈 말씀 절대 하지 마시구유. 


지를 잘 아시는 분들은 아마 다 아실꺼여유. 
지가 하는 일도 뭐 하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아마 더 많지유?
그 흔한 명함도 없고, 브로슈어나 뭐 이렇다 할 웹 사이트도 아직 안 만들었어유.
신문 광고나 이런 것 한번도 안 때리고 걍 조용히 입소문만으로 운영하고 있는 곳이여유.

그리고 유튜브 영상도 한국에 계신 울 엄미랑 아부지가 지가 여그서 잘 살구 있다고 보여 드리고 싶기도 하고 또 
저를 믿고 찾아 오시는 분들과 주사나 수술적 방법이 꼭 아니라도
통증의 근본적 원인을 재정렬 해 주면 100%는 아니어도 좋아질 수 있다는 꼭 알려 드리고 싶어서 영상들만 올리고 있어라.

그런데 말여유 이것도 시간이 많은 사람이라 하는거지 저 처럼 일 하루 죙일하고, 
살림하고 하는 사람이 하다 본께 한달에 한개 정도 밖에는 못 올리겠더만유.

편집 하는데도 시간이 엄청 올래 걸리고
지난 10년 동안 저를 쭉 봐 오신 엄니들은 아마 아실꺼여유.

지가 컬럼 한번 쓰면 정말 길게 쓴다는거유.

저도 와 그런지 모르겠슈. 그런데 영상을 만들때도 누가 그렇게 긴 영상을 본다고
그리고 그 화면속에 누가 그 화면을 다 읽는다고
이렇게 글 쓰는 것 마냥 이것 저것 다 퍼주고 넣고 
참말로 못말리는 말미잘이 바로 저여유.


그랑께 지 보고 영상 올린다고 너무 아픈 질책은 하지 말아주셔요.  
이자는 운동장도 못갈텐디 집에서 보고 따라 하시믄 좀 좋아유?

그랑께 혹시라도 제 글이나 영상이 맴에 안드시면 
지가 아무리 상처가 많이 난 사람이라 혀도 맞을 땐 쪼매 아픈께
살살 던지고 가셔유. 아셨쥬?


자, 그라믄 울 미씨 엄니들 모두 힘내자구유!!!!!

지 마음 한보따리 잔뜩 여그 핑크 보자기에 뚤뚤 말아서 보내 드링께... 

아프지 마시구, 울지 마시구, 지금 힘들다고 오늘만 날이 아닌께 절대 나쁜 생각 하지 마시구
그럴 때면 그냥 주무셔유.

괜히 술 마시면 안주 댕겨가 그게 더 살이 확 쪄 버려여유.

알콜을 먼저 분해를 해야 하기 때문에 들어온 영양소는 난중에 연소가 되는터라
먹은게 다 살로 갈 수 있응께 그냥 우유 한자 마시고 잠 푹 주무셔유.

그게 더 좋아유...

그라믄  저 오지랍 그만 떨구 들어갈께유....

잘 살펴 들어가셔유....

글도 짧게 써야 하는디 이 글 쓰는 재주가 없다 본께
10년 아니 이제는 11년이 되어 가도록 이 버릇 못고치고 있네유.

엄니들 눈 아픈데 짧게 그냥 그랬다 이랬다, 이렇게 해라 끝 하면 되는디
참말로 저는 왜 이러는지 모르겄슈...

눈 아프시면 안되는디... 지송혀유...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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