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빠리에 혼자 일주일 여행을 간다고 했더니
미국친구들하고 한국친구들하고 반응이 딱 갈라지더라구요.
미국 친구들은
Good for you! 잘했어!
I’m so proud of you! 니가 자랑스러워!
I’m so happy for you! 잘됬네!
You’re gonna have so much fun! 신나겠네! 

한국친구들의 반응은
진짜? 왜?
무슨 일 있어? 왜 혼자 가?
거기 아는 사람 있어?
파리 위험해!
불어 할줄 알아?

저 불어 한마디도 못해요.
익스큐즈 무아! 메르씨!
이러면 되지 않을까? 구글맵으로 길 찾으면 되고
방긋방긋 웃으면 뭐 누군가 도와주지 않겠어?
위험하긴……50이 다되가는 아줌마를 누가 거들떠나 보겟냐구.
남편은 애들 학교 보내야 되고 친구들은 다들 시간이 안맞거나
마음을 못내니 어쩌겟어
찾고찾다 동반자를 못찾아서 혼자 가는수밖에…….

하지만 은근히 혼자가고 싶었어요.
학교에서 학생들 입맛 맞추랴 애들 챙기랴 친구들도 피곤하고
남의 비위 고만 맞추고 내멋대로 하고 싶었거든요.
파리가 중요한게 아니라 어딘가 아는사람 하나 없는 곳으로
입닥치고 아름다운 것들을 음미하고 싶엇거든요.
마일리지 열심히 모았겟다, 10년동안 한곳에서 열심히 일했는데
나만의 1주일 휴가  당당히 따먹을란다!

비행기 옆자리에 뚱뚱한 아저씨가 숨막히게 내옆에 앉으면 어쩌지?
제가 사는 텍사스에는 정말 거대한 사람들이 특히 많거든요.
근데 빠리잔느처럼 생긴 이쁘게 안경쓴 처자가 제옆에 앉아서 너무 좋았어요.
나이든 아줌마들이 너무 말이 많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서
사~악 눈치만 살피고 있었는데  이젊은 처자가 먼저 말을 걸어오는거에요 영어로.

Are you going to Paris alone? 빠리에 혼자 가세요?
Yes, all by myself! 네 완전 혼자요
Oh you’re gonna love it there! 오우 거기가면 좋으실거에요!
I’m nervous about eating dinner alone, though. 근데 혼자 저녁먹는게 좀 긴장되네요
You will be fine! 괜찮으실거에요!

사실 제가 제일 걱정했던게 혼자 저녁먹는거였거든요.
낮에는 얼마든지 혼자 놀겟는데 저녁엔 좀 썰렁하지 않을까?
혼자 근사한 레스토랑 가서  괜히 주눅 들지 않을까?
에라 모르겟다 얼굴에 철판깔지뭐.

그래서 따~악 도착한 빠뤼~
공항에서 짐끌고 기차타고 전철타고 빠리 시내로 들어가야 하는데 계단이 엄청 많아야지요.
가볍게 싼다고 했지만 하나로 싼 가방은 무게가 장난 아니고
아니 이것들이 얼굴만 잘생겼지 프랑스 남자들은 신사가 아니더군요
아무도 그 긴 계단에서 절 도와주지 않는거에요.
일부러 더 무거운척 낑낑대며 계단을 하나 올라가 털썩 가방 내려놓고
쇼를 해보아도 빈손으로 주머니에 손끼고 후다닥 내려가는
젊은 프랑스 남자들이 빈정 상하더만요.
흥 내가 예쁜 젊은 여자였으면 도와줫겟지.
또 한편 제가 갑자기 나이 먹은것도 팍 느껴지고….
아이씨 괜히 혼자왔나? 갑자기 서럽네 벌써부터 남편이 그리워지면 안되는데….

에잇 내가 힘차게 들고 만다!
그런데 글쎄  어떤  젊은 프랑스 처자가
다가와서 같이 제 가방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 주는거에요
나 정말 눈물 날뻔 했네
이 험난한 세상을 여자로서 사는 같은 전우애랄까 모 그런게 갑자기 팍 느껴지면서
정말 너무너무 고맙더라구요.

일단 에펠탑을 봐야겟기에 도착한 날루다가 에펠탑 근처에 호텔잡고 부랴부랴 갔죠
앗 그런데 20년전에 내가 빠리 왔을때  찍었던 사진에서처럼 흑백의 그멋진 칼러가 아니라
에펠탑은 똥색이었어요! 그래요 브라운 칼러
그새 칠을 했나? 날이 흐려 그래보이는건가?
암튼 제가 생각했던 제 기억속의 분위기 있는 흑색이나 다크 그레이가 아니라
고동색으로 보이더라구요
어쨋껀 에펠탑이니까…..

바람이 엄청 불어 평생에 남길 사진 찍으려
기껏 공들인 머리가 떡칠이 되긴 햇지만 암튼 혼자 셀피스틱 치켜들고
미친듯이  혼자 스마일~ 하며 100장은 찍은거 같아요
거기다 에펠탑 앞이 공사중이라 웬 흙바람이 그리 불던지
스마일~ 했던 입속으로 모래 같은게 느껴질 지경이었죠.

어쨋거나 가장 중요한 인증샷은 해결햇고
이제 파리에서의  첫저녁을 먹어야지 프랑스식으로다가.
아니 근데 빠리사람들은 저녁을 왜케 늦게 먹어요?
배고파 죽겟는데 식당들이 저녁을 다 7시에나 시작하더라구요.
저녁은 혼자 먹기가 좀 꺼려졌엇는데 다리 아프고 배고프니까 아무 생각 안나더라구요.

고르고 골라서 정통 프랑스 식당엘 들어갔는데
웬걸, 식탁들이 길거리쪽을 바라보도록 쭉 나있는게 혼자 먹는 사람도 여럿이더라구요.
불어로 다가오는 웨이터에게 자신감 있게  영어로
Can you recommend some kind of seafood?
해산물 요리 같은걸로 추천해주실래요?

흉내도 못내겟는 긴 이름의 메뉴를  좀 비싸긴 했지만 웨이터의 권유로 시키고
기대만빵으로 기다렷죠.
불란서 요리가 최고라는데 우후훗 얼마나 맛있을까?

짜잔~하고 생선 요리가 나왔는데 무슨 계란찜 같은 맛이었어요 생선을 갈아만든….헉

4분의 1도 못먹고 돈 다내고 메르씨~ 하고 나왔죠.
불어를 배웠어야해!
후회가 됬지만 불어 못한다고 프랑스 못가고 스페인어 못한다고 스페인 못가는게 더 억울하잖아요.
영어 못한다고 미국 못사는거 아니니까요.
어쨋건 빠리에서도  영어는 대충 다 통하더라구요.

호텔로 돌아왓더니 프론데스크에서 생일 축하한다며 샴페인을 보내왓더라구요
이게 웬떡이냐!
제 패스포트에 있는 공식 생일이 제 진짜 생일하고 틀리거든요.
체크인 할때  그예쁜 여인네가 그날짜를 보고알았나봐요
아이고 빠리는 여자들이 나이스하네!
호텔방 침대에 대자로 누워서 혼자 샴페인 마시는데 창밖에는 예상대로 비가 내리더라구요
하늘이 시커멓고 흙바람 몰아쳐대더니
빨리 들어오길 잘했다….
에펠탑 야경 보려고 첫날 호텔을 여기다 잡았지만  비가와서 포기하고…
사는게 그렇지 계획한대로 안되고 돈들인대로 못뽑고
하지만 이렇게 공짜가 생기기도 하고 더하고 빼면 다 그게 그거….

어쨋거나 파리에 왔으니까 혼자와서 더 특별하니까

멈출수 없는 엄마노릇
오랜 결혼생활
지친 직장생활
통하지 않는 사람들
다 떠나서 잠깐 혼자가 되보니 그 정적이 참 좋더라구요
아 내가 진짜 마음의 여유가 없이 살았구나
열심히만 사는게 장땡이 아니구나
혼자니까 이것도 참 좋다….
그러면서  잠이 들었네요.
파리에서의 첫날 흙바람 비바람 치는 에펠탑 앞에서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