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을 꾸준히, 또는 벼락치기로라도 열심히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고등법원에서 판사의 재량은 그 방대함이 실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인데요.  그나마 엘에이 카운티 중앙지법정도 규모가 되면 10년 이상 가정법 판사만 하신 분들이 여럿 계시고, 초짜 판사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도 잘 구축되어 있어 엉뚱한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낮은 편이지만 시골로 갈 수록 판사들의 법률 이해 수준이나 해석 능력이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법원에 딱 그 판사만 있는 게 아닌 이상, 평판이 영 거시기한 판사에게 사건이 배정됐을 경우 판사를 바꿔달라는 모션을 후딱 들어가셔야 하는데요.

CCP 170.6 에 근거한 판사 자격 박탈 신청서를 접수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 또는 악명 높은 판사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법률조항을 읽어보시면 마치 판사가 사건을 맡지 말아야 할 대단히 큰 결격사유가 있어야 접수할 수 있는 모션인양 나와있습니다만, 실상 이 모션은 어떤 이유에서건 이 사건에 적절하지 않은 사건 배치가 이뤄졌을 때 구구절절 이유 붙일 필요 없이 단 한번 판사를 바꿔달라고 넣을 수 있는 권리 행사를 위한 모션이고요.  그저 단순히 담당 판사가 내 사건에 있어 당사자건 변호사건 특정 이슈에건 공정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이미 다 만들어져있는 법원 양식에 체크만 하고 서명해서 접수하시면 되는 간단한 절차입니다.

이 모션은 타이밍이 아주 중요한데요.

캘리포니아에서 가정법은 다른 민사 사건들과 달리 특정 판사에게 for all purposes 배당이 되기 때문에, 이럴 경우에는 사건이 배치된 후 10일 안에 판사를 바꿔달라는 모션이 들어가야 하고, 이혼 피신청자의 경우 피신청인의 답변서 (Response)를 접수한 후 10일 안에 모션이 들어가야 합니다.  만약 이 타이밍을 놓치면 판사가 편견이나 편향을 가지고 판결을 내린다고 해도 그것을 증명해서 나중에 판사를 바꾸는 건 거의 불가능이라고 보셔야 합니다.

보통 성향이나 법적 해석 능력이 파악이 안 된 초짜 판사가 복잡한 이슈가 많은 사건에 배치를 받을 경우 변호사들이 이 모션을 들어가는데요.  최근에 은퇴한 판사님이 알려주신 팁에 의하면, 이 모션의 함정은, 초짜 판사를 피하자고 모션을 들어가면, 그 사건을 비슷한 때 들어온 다른 초짜 판사에게 배당을 하기가 일쑤라네요.  저는 다행히 초짜 판사를 피해 정말 좋은 판사님께로 사건을 옮긴 경험이 몇차례 있었습니다만, 제가 그냥 운이 좋았던 거라고 말씀 하시더라고요.  이 모션은 쌍방이 한번씩 들어갈 수 있는 거라서 본인이 170.6를 들어가서 새로 배정받은 판사가 상대편 맘에 안 들면 상대편이 또 170.6를 들어갈 수 있고, 그 담에는 경험 많은 좋은 분이 얻어걸릴 수도 있지만, 내가 모션 들어갔다가 더 초짜에게 배정이 되고 상대편이 아무것도 안 하면 더 이상 그 판사에게서 빠져나올 방법은 없어진다는 거.  그래서 이 모션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모션이라고들 합니다.  게다가 한번 170.6 모션을 접수하면, 해당 판사가 자기를 상대로 170.6를 접수한 변호사를 두고두고 기억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정말 꼭 모션이 필요한 사건인지에 대한 판단을 잘 해야 하는 것이죠. 

또 예외적으로, 판사가 (판사는 주지사가 임명을 했거나 선거를 통해 당선되는 것) 아닌 커미셔너에게 (카운티의 필요에 따라 카운티가 임시적으로 고용하는 판사직) 사건이 배치되었을 경우 170.6 를 한번 써버릴 필요 없이 판사로 바꿔달라고 할 수 있으십니다.  따라서 판사가 맘에 안 들어서 170.6를 들어갔다가 새로 사건을 배당받는 사람이 커미셔너가 될 경우, 다시 판사로 (다른) 바꿔달라고 신청이 가능하신 거.

초짜 판사보다 무서운 게 오래 판사노릇은 했으나 편협하고 게을러서 제 일을 제대로 안 하는 사람들인데요.  심리공판에서 바로 명령을 내려주지 않고 뻑하면 공판을 연기 시키고 (그럼 양쪽 변호사들이 다시 출두를 해야하니 그만큼 돈이 줄줄 새는거죠) 판결을 안 내리고 합의를 하라고만 종용하는 등 (쌍방끼리 합의가 가능했다면 애시당초 애먼 돈 들여 판사 앞에 안 왔겠죠), 저러려면 왜 저 자리에 앉아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판사나 커미셔너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평판은 법원에 자주 출두 하거나 변호사 협회의 모임을 자주 가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고요.  평판이 영~ 나쁜 판사들은 얼마 못 가 다른데로 전출을 당하곤 합니다만 (적어도 엘에이에서는요), 운이 없어 본인이 그 "얼마 못 가"는 기간 동안 그 판사의 얼토당토 않은 판결을 받고 피해를 볼 수 있는 것이니까요.  처음부터 심리신청 들어가고 원만한 합의가 힘들어보이는 사건이라면 담당 판사의 평판부터 확인하고 적어도 내가 안고있는 이슈들에 대해 공정한 판결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인가를 꼭 알아보셔야 합니다.  그리고 판사를 바꿔치기 해야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하게 실과 득을 따져 결정 내리셔야 하고요 (만약 한 법원에 가정법 판사가 2명 밖에 없는데 옆 방 판사는 평판이 좋다면 땡큐겠죠). 

얼마전에 한국에 갔다가 양소영 변호사님과 그 밑에 계신 이미숙 변호사님과 식사를 하며 한국과 캘리포니아의 법이나 절차에 관해 토론을 했는데요. 한국은 2년에 한번 2월에 판사들이 자동 교체되고 엉망진창의 판사가 배치되더라도 빠져나올 방법이 없어 최근에 그 전 판사가 아주 좋게 명령을 내렸던 이슈를 초짜 판사가 뭔 소리냐며 뒤집어 놔서 아주 골치가 아픈 사건이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나마 한번이라도 판사를 바꿔칠 수 있는 캘리포니아를 엄청 부러워 하시더라는..

판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본인의 문화적, 교육적, 사회적, 성적, 경제적 배경에 따라 편향이나 편견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그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도록 판사들도 꾸준히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만, 결국 완벽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죠.  따라서 내 사건을 맡은 담당 판사가 어떤 성향과 편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가정법 판사를 오래 해온 분인지, 이제 막 자리에 앉은 분인지) 등 판사에 대한 사전조사는 필히 이뤄져야 합니다.  요즘은 구글로도 판사에 대한 평가가 종종 올려져 있고요.  그게 아니라면 변호사협회에서 (제 경우에는 엘에이 카운티 가정법 변호사 협회) 현직 판사들의 배경과 성향에 대한 검토 결과서를 만들어 놓곤 합니다 (변호사가 돈 주고 사야 합니다).  

법도 공부하시고, 변호사도 공부하시고, 판사도 공부하시고.  참 공부할 게 많죠.  그러느니 차라리 변호사가 돼버리겠다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지만 잘 되는 식당엔 늘 주인이 나와있다고 하죠.  사건도 마찬가지 입니다.  식당주인이 주방에 들어가서 음식을 만들지는 않을 지언정 식당에 늘 나와있어야 그 식당은 잘 돌아간다는 건 다 공감하실 겁니다.  내 이혼 사건도 마찬가지 입니다.  변호사를 선임 했다고 해서 손 놓고 구경하는 입장이 되시면 그 사건이 잘 굴러갈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지는 것이죠.  아무리 좋은 변호사를 만나도 손님이 한 사람이 아닐테고, 본인 사건에 관심을 보이고 열심히 공부하는 손님에게 아무래도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게 인지상정일 겝니다.  그러니 귀찮다 골아프다 하지 마시고 이혼이 잘, 정말 잘 마무리 될 때까지 꾸준히 공부하셔야 합니다. 

그럼, 도움 되셨길 바라며.  무더위에 건강 잘 챙기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