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에 혼전 계약서 관련 글을 올려드리겠다고 하고 다른 글들 올리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 글을 기다리시던 분께서 댓글 올려 주셔서 이제야 글을 올려드리게 됐네요.  기다리신 분들께는 죄송죄송.

혼전 계약서 관련해서 설명 드릴 이슈가 한둘이 아닌데요.  간단히 올려드릴 수 있도록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우선 일차적으로, 말 그대로 혼전 계약서는 "계약" 조건을 명시한 서류 입니다.

계약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전에는 혼전 계약서를 이해할 수 없겠죠.

캘리포니아에서 유효한, 또는 시행 가능한 계약이 존재하는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아래의 계약의 조건이 충족 되었는지를 우선 따져봐야 합니다:

1.  쌍방이 계약을 맺을 수 있는 능력을 소지했는지 (계약서에 서명할 당시 한 쪽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면 이 계약은 유효할 수 없는 것이죠)

2. 쌍방의 동의: 보통 법적인 용어로는 meeting of the minds라고 하는데요.  한 쪽에서는 조건을 제안하고, 다른 쪽에서는 그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offer and acceptance가 있어야 합니다

3. 계약/거래 가능한 대상 (예를 들어 만약 장기 매매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면 이것은 합법적으로 매매가 불가능한 것이므로 계약법으로 집행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4. Consideration: 제가 예전에 이 단어를 한국어로 찾았었는데, 다시 찾으려니 못 찾겠네요.  쉽게 생각하자면, "대가" 와 비슷한 의미의 단어인데요.  선물과 계약이 다른 것은 선물은 대가 없이 일방적으로 한 쪽이 다른 쪽에 뭘 주는 것이고, 계약은 주고 받는다는 것인데요.  물건 매매상의 계약에서는 파는 사람은 물건을 주고 사는 사람은 돈을 주고.  오가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내가 나중에 죽기전에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네게 주겠다"라고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고 해서 계약이 성립이 될 수가 없는것이, 그 사람의 전재산을 증여받기 위해 내가 뭔가 되돌려준 게 없기 때문에, 구두상으로라도 계약이란 게 성립이 될 수가 없고, 뭘 주기로 했던 사람은 유서로 뭘 남겨 주겠다고 문서화한 게 아닌 이상, 죽기전에 얼마든지 말을 번복하고 맘을 바꿀 권리가 있는 것이니까요. 

계약상의 "대가"는 당장 주는 물건이나 돈이 될 수도 있고, 약속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내 소유물을 주는 것 뿐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권리 행사를 포기하는 것도 대가에 들어가는데요.  계약서랍시고 서명한 서류가 아무 의미없는 종이쪼가리에 불과한지, 아니면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는 계약서로 인정이 될지는 이 마지막 조건에서 많이 판가름이 나게 됩니다.

혼전 계약서.  말 그대로 혼인을 앞 둔 두 사람이 자신들의 재산권 및 서로에 대한 경제적인 책임을 두고 (현재 및 미래의) 계약을 하는 서류입니다.  캘리포니아는 1985년부터 Uniform Premarital Agreement Act라는 것이 시행되면서, 절차상의 또는 내용상의 규정들을 세워놓게 됩니다.

혼전 계약서가 유효한가 아닌가를 따질 때, 계약서에 서명한 날짜를 기점으로, 그 당시의 현행법에 근거해 유효성을 따지며, 보통 계약법과는 조금 다르게 특정 대가가 없이도 계약을 인정해 주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나머지는 조건들은 충족이 되어야 하고요). 

1. 혼인 기간 중 증식된 재산/빚:

캘리포니아 현행법상 혼인신고일 이후부터 별거기일 중간에 증식된 재산이나 축적된 빚은 공동의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됩니다만, 쌍방이 위협이나 외압 없이 자신이 어떤 권리를 포기하는 것인지를 확실히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재산권에 대한 포기가 명시된 혼전 계약서에 서명을 했다면, 그리고 이 혼전 계약서를 만들고 서명하는 데 있어서 절차상의 요건들을 충족 했다면 (밑에 설명), 재산/빚에 관한 계약 조건들은 왠만하면 번복하기 힘들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혼인 이전에 운영하고 있던 사업체도 내 꺼, 거기서 파생되는 수입도 내 꺼, 그 외에 갖고있는 주식이나 다른 모든 현금화 가능한 재산도 내 꺼, 거기서 파생되는 수입도 내 꺼, 그걸로 내가 어떤 투자를 해서 새로 재산이 생겨도 내 꺼, 어디서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건 그 것도 내 꺼.  뭐 이런 식으로 줄줄이 무조건 내 수중에 들어오는 건 다 내 꺼 라고 명시가 되어있다고 하더라도 절차상으로 문제가 없고, 자발적으로 이런 조건에 동의를 하셨다면 나중에 번복하기는 쉽지 않다는 말씀.

2. 혼인 기간 중 수입:

보통 쌍방이 일을 할 경우, 내가 버는 건 내 꺼, 네가 버는 건 네 꺼, 뭐 이런 식으로들 많이 계약서에 들어가고, 대신 생활비 충당을 위해 공동계좌를 하나 열어 매달 각자 얼마씩을 계좌에 넣기로 하고, 그 계좌에 들어가 있는 돈이나, 그 계좌에서 나온 돈으로 구입한 부동산이나 다른 물품등은 공동재산으로 분류한다고 들어가는 게 보편적입니다.  물론 한 사람만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에도 일정액의 생활비를 공동계좌에 꼭 넣어주기로 한 후 본인이 버는 건 자기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이 역시, 이런 제안에 대해 정확히 사실적, 법적 이해를 한 후에도 자발적으로 오케이 날리셨다면 번복은 힘들다는 말씀.

3. 배우자 부양비:

혼전 계약서를 통해 배우자 부양비에 대해서도 미리 fix를 해놓을 수 있는데요.  재산분할과는 완전히 별개로, 이 조항은 unconscionability를 따지게 됩니다.  아무리 자발적으로 서명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 조건이 부당하지 않은가를 검토하게 되는데요.  예전에는 계약을 하던 시점에서 부당한 조건이 아니었다면 집행을 해줬습니다만, 이제는 법이 바뀌어서, 계약서 작성 당시에는 이게 부당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집행해야 하는 시점에서 현실적으로 부당하다면 집행을 안 해주도록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둘이 잘 나가는 변호사였고 혼전 계약서를 통해 니 꺼는 니 꺼, 내 꺼는 내 꺼, 배우자 부양비는 안 주고 안 받는 것으로 서명을 했는데, 그 후 아내는 바로 임신, 출산, 육아를 거듭하면서 경제활동을 아예 안 하게 되고, 10년 후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가정을 해보면, 어린 애들 서넛 데리고 재산도 하나 없이, 배우자 부양비도 없이 이혼을 해야하는 상황이 된거죠.  물론 양육비를 받는다고 하지만, 실상 매달 받는 생활비의 더 큰 덩어리는 배우자 부양비이기 때문에 아무리 상대 배우자가 수입이 많다고 하더라도 애들 양육비만으로 엄마까지 생활할 수 있는 가정은 거의 없다고 보셔야 합니다.  이럴 경우 이혼시 재산분할에 대해서는 계약서대로 집행이 가능하지만, 배우자 부양비에 대해서는 집행 시점에서 부당하다고 판사가 판단내려 주면 배우자 부양비에 관한 계약조건만 집행을 불허할 수 있는 것이죠.

4. 양육권 및 양육비: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관해 캘리포니아 법원은 무조건 관할권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이 법원의 관할권은 제아무리 부모의 고조 할머니라고 해도 임의로 앗아갈 수 없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아이가 나오기 전에건 이혼을 할 때건 양육권은 한 사람이 갖기로 하고 차후에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조건을 바꿀 수 없다고 백만, 천만번 맹세하고 서명을 한들, 언제고 양육권에 대해서는 법원에 돌아가서 다시 조정이 가능한 사안인 것입니다.  따라서 혼전 계약서에 한 쪽 부모가 아이들을 맡기로 서명을 하더라도 이혼 진행 당시에 얼마든지 양육권을 두고 재조명이 가능하다는 거.  또한 양육비는 여러번 올려 드렸듯 아이들의 권리이고 양육권과 동일하게 법원의 관할권을 부모가 임의로 앗아갈 수 없으므로, 아무리 한 푼 안 받기로 명시하고 서명을 한들 집행 불가능.

5. 그 외:

합법적이지 않은 불가능한 조항들은 집행이 불가능하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여기에 포함되는 것이 "바람을 피울 경우 전재산을 포기한다" 등의 조건적 계약 입니다.  캘리포니아는 귀책 유무나 사유를 따지지 못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에, 잘못을 했기 때문에 재산권을 포기하도록 한다는 계약서 내용 자체도 유효하지 않습니다.  만약 이혼을 부축이는 조항들이 들어가 있다면 (예를 들어, 일정 시기에 이혼을 해야 더 많은 돈을 챙길 수 있다던가) 이 또한 무효입니다. 

또한, 혼전 계약서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계약서 초본을 적어도 서명하기 7일 전에 상대편에게 보여줬어야 합니다.  따라서 내일이 결혼식인데 오늘 종이떼기 들이밀며 서명 안 하면 파혼하겠다고 할 경우, 외압의 이슈 뿐만 아니라 절차상의 결함으로 이 종이떼기는 무효하게 되는 것이죠.  왕년 홈런왕으로 유명했던 배리본즈가 영어도 잘 모르는 모델 언니와 결혼할 때 이런 양아치 짓거리를 해놔서요. 기가막힌 판례를 세워주시고~ =.=  다만, 만약 상대편이 변호사를 선임할 경우, 7일 이내에 서명을 하더라도 이 요건은 문제가 없게 됩니다.  

쓰다보니 또 너무 길어졌네요. 

다른 부분 중요한 거 생각나면 다시 한번 글을 덧붙이던지 하나를 새로 올려드리던지 하겠습니다.

도움 되셨길 바라며 총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