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 도박, 외도.  뭐 옛어른들이 흔히 얘기하는 이혼의 기본 삼종셋트라고 볼 수 있는데요.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저는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해서는 주변에서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주위의 도움이 없이는 긴 세월 학대를 당한 분들이 가정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생각하기 때문이고요.

도박이야 오른손 자르면 왼손으로, 양손 자르면 발꼬락으로라도 한다는 옛말을 다들 아실테고.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도박 때문에 이혼 위기에 처한 가정들에 주위에서 특별히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외도도 도박과 비슷하게 주위에서 방관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도박과 다르게 외도는 사람들의 감정이입이 훨씬 쉬운 사안인지라 절친의 남편이 바람이 날 경우 격하게 흥분하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아주 최근에 제 지인이 전화통화를 할 수 있겠냐는 텍스트 메세지를 보내 왔습니다.  이 분도 눈코뜰새 없이 바쁜 양반인데다 저와 일년에 한두번 겨우 전화 주고받던 사람이 갑자기 전화를 달래길래 뭔 일이 생겼구나 했습죠.  바로 전화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는지라 지금 상황이 안 된다고 텍스트를 보냈더니, 전화 가능할 때 전화를 달라고 하더군요.  그 때 감 잡았죠.  이건 본인이나 절친의 외도 상황이구나..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해보니 한껏 흥분한 상태로 아는 동생의 남편이 바람이 났는데 어떤 증거가 필요하냐고 묻더군요.  이 분이 캘리포니아 거주자가 아닌지라 그 주에서는 외도를 귀책사유로 써서 재산분할에 유리하게 쓸 수 있다는 걸 얘기해 주고, 캘리포니아에서는 외도의 증거 수집이 전혀 필요 없으니 법원에서 어떤 증거자료를 채택해줄지 알 수가 없으니 구글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다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쿠 이번엔 이 동생이 아이들을 데리고 타주에 있는 친정으로 나가도 되냐고 묻는겁니다.  그래서 이유가 뭐냐 했더니 남편이 가정폭력을 행사한 전적이 있어 동생이 두려움에 떨고 있더라네요.  그런데 남편의 외도가 첫번째가 아닌데, 이번 일로 추궁을 하다가 남편이 발뺌을 하자 매일 몇 시간씩 한 여자와 통화한 전화기록을 남편에게 던지며 다 알고 있다고 했다는 겁니다.   

딱 이 시점에서 제가 지인을 스톱!!! 시켰습니다.

남의 집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남편의 외도가 처음이 아니다.  (그럼 접때 외도를 알고 나서도 그냥 살았다는 거죠)

남편이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다. 고로 남편이 무섭다.  (그런데 아이들이 한둘도 아닌 사람이 겁도없이 네 외도의 증거를 갖고 있다며 전화빌을 뿌렸다고요??)

이 동생이 외도에 대해 추궁을 하고 증거를 내뿌린 데에는 "변명을 대줘.  아니라고 말해줘."라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고 정말 남편이 무섭거나 외도를 근거로 이혼을 할 것이었다면 직접 얘기를 할 이유가 없이 바로 변호사 사서 이혼 수속 밟으면 그만인거죠.  게다가 이 동생이라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교육받고 자라 (고로 911에 전화를 할 수 없는 상황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안 되는 상황도 아닌) 외려 남편보다 미국 시스템이며 문화며 언어를 더 잘 아는 사람인데 말이죠. 

그래서 괜히 남의 집안 일에 흥분해서 애들을 데리고 타주로 가있으라느니 뭐 이런 쓸데없는 얘길 했다가 나중에 이들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둘이 그냥 살게되면 도와주려 했던 사람만 가정파탄을 부축인 천하의 몹쓸 사람이 되는 퐝당한 씨츄에이션이 일어날 수 있으니, 정말 남편이 무서우면 경찰에 연락하고, 이혼을 할 거면 가정법 변호사에게 연락을 하라고 하고 빠져 있으라고 조언을 해줬습니다. 

그 후 잠잠해진 지인에게 혹시나 싶어 이 주쯤 지나 메세지를 보내 봤습니다.  그 집은 어떻게 됐냐고.

아니나 다를까 동생이 "happy"하답니다.  그냥 살기로 했다고. 

뭐.. "I told you so"죠.

절친의 남편이 외도하는 걸 보고 이걸 얘길 해줘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는 분들도 계시고, 이미 외도 사실을 알아버린 절친 옆에서 오만 조언을 던져줘야 하는 상황에 처한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제가 위에 말씀드린대로, 가정폭력과는 달리 외도의 경우 주위에서 꼭 도와줘야 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봅니다.  물론 이미 외도로 인해 남자가 집을 나갔고 이혼수속이 진행이 시작된 경우라면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절친에게 도움을 주셔야 겠지만, 이렇게 이미 뭔가 시작이 된 게 아닌 이상 불필요하게 절친의 상황에 흥분하거나 개입하실 필요는 없다는 것을 염두에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더구나 절친의 남편이 외도한 걸 알고 흥분해서 미씨에 그 친구 남편과 상간녀의 정보를 공개한다던지 (당사자가 공개하는 거라면 거기서 파생되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본인이 지는 것이니 상관이 없습니다만) 해서 한 가정의 밥줄을 끊어놓는 일은 절대 하셔는 안 될 것입니다.  (보통 남편이 생계를 책임지고 있을텐데요.  이혼을 하건 별거를 하건, 남편의 수입에서 배우자 부양비며 양육비며 받아야 하는데, 남편의 밥줄을 끊어 놓는다는 건 온 가정의 생계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이지요)

의~~~리는 이럴 때 세우는 게 아니라는 거.

환절기에 감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모두들 건강 잘 챙기시고, 따뜻한 연말연시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