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아주 오랫동안 (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오~~~래 오래 말이죠) 변호사를 하신 분께서 캘리포니아에서 사실혼이 인정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소릴 듣고 완전 식겁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일전에 사실혼에 관해 칼럼을 올려 드렸듯, 이건 뭐 있다고 쳐 줄 수가 없도록 법적으로 사실혼이 인정이 안 되는 주가 캘리포니아인데 말이죠. ㅠ.ㅠ

혹 잘 모르는 변호사를 찾아가 헷갈리실 분들이 계실까 우려가 되는바, 캘리포니아의 "putative spouse doctrine"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자 합니다.

Putative spouse, 즉 추정상의 배우자 라는 것은, 한 쪽, 또는 양쪽 배우자가 "good faith belief in the existence of a valid marriage" 를 갖고 있었으나, 어떤 절차상의, 또는 법률상의 문제로 인해 혼인신고가 제대로 안 되었을 경우, 잘못이 없는 배우자에 대해 추정상의 배우자 이론을 적용, 합법적인 배우자가 이혼시 받을 수 있는 모든 법적 권리를 챙겨 주는 이론 입니다.

Good faith belief in the existence of a valid marriage가 대체 무엇이냐.

Good faith belief - 즉, 선의의? 믿음이란, 본인이 합법적으로 혼인관계에 있다고 믿는 것을 말하는 데요. 이 믿음이 "objectively and subjectively reasonable"해야 합니다. 아무리 20년을 동거를 하고 아이들을 한 다스를 낳는다고 해도, 아무런 혼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산 사람은 그저 동거인에 불과하다는 거죠. 타주에서 인정이 되는 사실혼과 추정상의 배우자 이론의 다른 점은, 후자의 경우, 본인의 "합법적인 혼인"에 대한 선의의 믿음이 필요 하다는 겁니다.

캘리포니아에서 합법적으로 혼인을 하기 위해선 1) Marriage license를 받아야 하고, 2) solemnization을 거쳐야 하고 (목사님이나 판사 등을 통해 혼인서약을 하는 절차), 3) Marriage certificate을 접수를 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절차를 하나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난 정말 내가 합법적으로 혼인을 한 줄 알았다!"라고 아무리 부르짖어 봐야, 그 믿음이 "objectively reasonable (내 믿음 자체가 얼마나 진실됐었는지와는 상관 없이, 그 믿음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합리적이었느냐를 따지는 겁니다)"했다고 믿어줄 사람은 없다는 거죠.

그럼 대체 어떤 경우에 이 사실혼도 아닌 이상한 이론을 써먹을 수가 있느냐.

20살 꽃처녀가 30살 노총각에게 시집을 갑니다. 위에 언급된 모든 절차를 거쳐, 합법적으로 (적어도 신부 생각엔) 혼인신고를 마치고, 아이들 주렁주렁 낳고 살죠. 그런데 10년이 지나, 두두둥~~~ 남편이 타주에 아이들을 주렁주렁 낳고 나몰라라 내뺀 유부남이었던 것을 알게 됩니다. (한국에선 이런 경우, 혼인빙자간음으로 감방에 넣어버릴 수가 있다면서요. 간음이 문제가 안 되는 캘리포니아에선 이거이 불가능하니 말임다.. ㅠ.ㅠ) 

자, 이럴 경우, 왕년 꽃처녀의 혼인신고는 자동으로 무효가 됩니다. 유부남이 이혼도 안 하고, 다시 결혼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아무리 꽃처녀는 몰랐다고 해도, 법은 법인 것이고, 두번째 혼인신고는 자동으로 무효가 됩니다. 이런 경우, 왕년 꽃처녀를 위한 보호장치가 바로 Putative Spouse Doctrine이란 겁니다. 꽃처녀는 정말 진짜 백프로 완젼 자신이 합법적으로 혼인을 한 줄 알았고, 그런 그녀의 믿음이 reasonable 했다는 거죠. 유부남의 농간에 넘어가 청춘 다 날리고 미혼모 된 것도 모자라, 공동재산인 줄 알았던 재산마저 하나도 손 대지 못하게 하고 길거리로 내몰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런 퐝당한 일을 당하는 선의의 피해자를 보호해주는 것이 putative spouse doctrine 입니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이렇습니다. 외국에서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되는 여인이 미쿡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됩니다. Marriage license도 안 따고, 당연 marriage certificate도 접수시키지 않았지만, 미쿡남자는 미쿡에선 목사님이 혼인서약을 집도하시면, 그게 자동으로 혼인신고의 역할을 하는 거라고 말합니다. 영어도 못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여인, 사랑하는 남편(인 줄 아는 나쁜 엑스엑스)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습니다. 이 여인도 수년간 아이들을 낳고 삽니다. 세금 보고도 부부사이로 이름을 올리고, 사람들에게 다 부부지간으로 알리고 살아 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 여인은 아이들의 친구 엄마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캘리포니아의 혼인신고 절차에 대해 주워듣게 됩니다. 가만~~~ 듣다보니 뭔가 구린거죠. 집에 가서 남편에게 혼인신고 절차에 대해 다시 물으니, 남편은 자길 의심하는 거냐며 버럭 화를 냅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본색을 드러내죠. 넌 내 아내가 아니니 당장 짐 싸서 나가라고... =.='

이런 퐝당한 케이스 역시 putative spouse doctrine에 해당이 됩니다. 본인의 혼인이 캘리포니아에서 합법적이었다고 합리적인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여인이 증명하면, 이 여인에게 이혼시 배우자가 주장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재산분할 및 배우자 부양비) 챙겨 준다는 거죠. 최근 항소심에서 putative spouse doctrine으로 승소한 케이스에서, 대체 어떤 절차까지 거쳤어야 혼인의 합법성에 대한 믿음이 합리적이었다고 봐줘야 하느냐에 대해 법원이 무척 자세한 풀이를 해놨는데요. 영어가 불편하지 않으신 분들은 한번 찾아서 읽어 보심 좋을 듯 싶습니다: In re Marriage of Joseph S. and Tanya M. Cantarella 이구요. 2011년 1월 11일에 접수된 판결문 입니다. 간단히 말씀 드리자면, 본인의 혼인이 합법적이라고 믿었음을 증명을 하는 데 있어서 marriage license를 받는 것이 아주 중요한 절차라는 겁니다. Marriage license조차 받지 않은 사람은, good faith belief 를 증명하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는 거죠. 물론 케이스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판결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현재의 case law에 따르면 marriage license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putative spouse 상태를 증명하는 데 있어서 치명적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아무리 아이들을 한 다스를 낳고, 세금보고를 함께 하고, 오만가지 대외적인 행사에 부부행새를 하고 다녔어도, marriage license를 받지 않았다면 (당연히 혼인신고서를 접수시키지도 않고), 왠만큼 설득력있는 주장이 없는 이상, 그 지난 세월간 본인이 합법적으로 혼인이 된 상태였다고 믿었다는 걸 법원에서 쉽게 믿어주지 않을꺼란 거죠. 나아가, 이혼을 한번 해 본 사람들이 재혼시 성당이나 교회에서 결혼식만 올리고 법적인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않았을 경우, 아무리 십년, 이십년간 부부행세?를 하고 살았어도 이들은 법적으로 부부가 아니며, 추정적인 배우자 이론에 근거해 뭔가 받아낼 게 있는 배우자가 아무리 박박 우겨도, 이미 이혼까지 해 본 사람이 (고로, 혼인신고 절차를 백프로 아는 사람) 합리적인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본인이 혼인관계에 들어섰었음을 굳건히 믿었다고 주장해 봐야 씨도 안 먹힐 말씀이라 이 말씀. 물론, 이 분들이 사실혼이 인정되는 주에서 이혼을 하는 거라면, 사실혼으로 인정이 되겠지만요.

변호사들도 헷갈리는 추정상의 배우자 이론.

조금이나마 이해에 도움이 되셨음 좋겠네요. 특히 해당사항 있으신 분들 말이죠.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