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 12학년때 나는 아는 언니와 함께 살 빼는데 혈안이 되어 매일같이

헬스클럽에 다닌적이 있었다. 에어로빅이나 근육키우는 운동등은 체질상 맞질않아

매일마다 수영하고 자전거 타고 그랬었는데 지금생각해보니 그당시 살 빼는데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즐거운 시간이였던 것 같다. 내가 다니던

헬스클럽은 Bally Total Fitness라고 (밑에 사건을 계기로 최근에는 LA Fitness로 옮김)

꽤 유명한 헬스클럽으로 여기저기에 분점을 두고 있다. 우리동네에 있는 헬스클럽은 유난히

한국사람들이 많기로 유명한데 그 덕분에 한국인 매니저를 고용하기도 했다.



나와 같이 운동을 하던 언니의 남자친구도 그 헬스클럽에서 일을 했는데 하루는

언니가 내게 넌지시 물었다. 우리 헬스클럽의 한국인 메니저 A군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것이였다. -A군은 꽤 오랫동안 헬스클럽에서 근무해온 재미교포 2세로

나보다 세살위며 서너번쯤 대화를 해본적이 있는 사람이였다. 그것도 사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헬스클럽 멤버쉽에 대한 문제로...- 암튼 나는 "왜? 그냥 귀엽게

생겼잖아." 라고 별 생각없이 그의 생김새에 대한 느낌을 말했다. 그 언니는 얼씨구나

싶었는지 A군과 함께 헬스클럽에서 일하는 자기 남자친구에게 나의 말을 전했고

A군에게까지그 말이 전해진 것이였다. 그것까진 다 좋은데 문제는 한국어가 서툴은

A군에게 영어로 말을 전하던 그 언니의 남자친구가 "She thinks you are cute."

이라고 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이건 영낙없는 호감의 표시다.

우리나라식으로 귀엽다는 말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괜찮게 생각하고 있다는

호감의 표현으로 받아들이고 만 것이다.그 일이 있은 후 바로 다음날 내 호출기로 음성메세지가

들어왔다. 확인해보니 A군이였다. 한국어가 서툰 그가 나를 위해 자기 이름빼고는

다 우리나라 말로 메세지를 남긴 것이였다. 정성이 갸륵하긴 했지만 그의

말투나 발음이 어찌나 웃기던지 혼자 배꼽잡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그당시 매일 헬스클럽을 찾던 나를 눈여겨 보다가 함께 일하는 한국사람에게

귀뜸을 했고 결국 그 얘기가 나에게까지 전해진 것이였다. 암튼 그때 나는

할일 없는 정말 무미건조한 삶에서 탈출하고 싶던 고딩이였고 결국 그를

만나보기로 결심했다. 사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남들 다 연애 한번씩은 하다못해

짝사랑 한번씩을 했을 무렵... 나는 누굴 좋아해본 적도 없는 쑥맥이였다.

난생 처음으로 정식 데이트 신청을 받았던 나는 재미교포 2세인 A군과

두편의 영화를 보았고 코코아를 한잔 마셨으며 세번의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그는 상당히 자상하고 배려가 깊은 사람이였다. 늘 보조석에 차문을 먼저 열어서

내가 탈 수 있게 해주었고 무엇을 하든 내 의견을 먼저 물어주었다. 한번은

저녁식사를 하기위해 레스토랑에 갔는데 차에서 내리기 전에 A군이 나를

진지하게 바라보더니 자기 부탁을 꼭 좀 들어주겠냐고 했다. 나는 곤란한 부탁이라면

절대 들어주지 않겠노라 생각하면서 뭐냐고 물었고 그가 말하길... 밖이 추우니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 자기 쟈켓을 입고가주겠냐는 것이였다.

A군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워서 쟈켓을 잠시 걸쳐입긴 했지만 어찌나

닭살이 돋던지... 민망해서 혼났다.



이런식으로 A군은 참 자상했고 좋은말이나 칭찬도 - 만날 때마다 'Beautiful'이라는 단어를

서슴치않고 사용하며 예쁘다고 해대는 통에 민망하고 부담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음- 아끼지

않고하는 좋은 사람이였다. 그러나 문제는 나에게 있었던 것 같다. 한국문화와 정서에

길들여진 나는 그 자상함이나 달콤함이 너무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우리나라 남자들 무뚝뚝하고 무드없어... 외국남자들 좀 봐... 얼마나 매너있고

자상하냐.... "하면서 침 튀기며 열변했던 나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말았다.

사실 우리나라 남자들 외국남자들에 비해 매너없고 무뚝뚝한 편인 것은 사실이다.

여자가 예쁘게 하고 나가면 예쁘다고 칭찬해주면 될 것을 왜 이렇게 화장 심하게

했냐? 쥐잡아 먹었냐? 선보러 가냐? 호박이 줄 긋는다고 수박되냐? 라고

반응하는 것도 태반이고 칭찬이나 자상한 말에 매우 인색한 편이다. 그러나

외국남자들은 다르다. 모든지 "숙녀먼저"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그런 매너가

자연스레 몸에 베어있다. 새옷이라도 입고 나타나면 아름답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어찌나 칭찬을 해대는지 오히려 무안해지게 만들 정도이다.

그러나 어쩌랴... 나도 우리나라 여자인 것을...

매일같이 나에게 맞춰주고 배려해주고 좋은소리만 해준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평소에는 무뚝뚝하지만 - 여기서 말하는 무뚝뚝이란

그저 사랑표현을 아끼는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냉정하고 차갑거나

오로지 자신이 최고인줄 아는 그런 잘난 무뚝뚝은 싫다. - 가끔씩 다정한

말 한마디를 던져주면 얼마나 감동스럽고 가슴 설레던가...

겉모습은 한국사람이지만 속은 미국인과 다를 것이 없는 2세를 만나보니

어쩐지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국제결혼도 마다하지 않는 요즘 세상에

사랑만 한다면 뭐가 문제겠냐 싶기도 하지만... 나는 역시 우리나라 남자가 좋다.

그중에서도 우리 신랑이 젤로 좋다. ^^


♡♡미시 메모♡♡
긴 고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고국향기를 잔뜩 머금고 말이지요.
고국의 향기가 궁금하신 분은 개인적으로 연락주십시오.
나풀나풀 나비처럼 날아갈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