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리운 것들이여...

여우비가 내렸을 때 젖은땅 냄새...

지하철 안에서 칫솔, 색연필, 우산 등등 물건파는 사람들...

학교앞에서 노란병아리를 팔던 상인들...

엄마따라 시장가면 사먹던 설탕과 케찹 뿌린... 핑크색 소세지가 들어있던 핫도그

별거 안들어가는데도 맛있는 포장마차 떡볶이...

지글지글 삼겹살에 소주 한잔...

겨울날에 먹어야 제맛인 뜨끈뜨끈한 호빵과 호떡...

이웃집 남자와 엘리베이터 단둘이 타고갈 때의 어색함...

길거리에 울려퍼지는 유행가를 따라부르는 사람들...

술자리 끝나고 택시잡는 사람들 그리고 그 옆에 쓰러져있는 사람들...

일주일에 한두번씩 우리집 앞에 오던 도서대여 봉고차...

휴가나온 군인들이 손에쥔 안어울리는 쇼핑백 그리고 그들의 어색한 눈빛(?)

조용필의 맥콜, 최성수의 암바사(?), 주윤발의 밀키스...

토미페이지, 뉴키즈온더블럭... (지금은 뭐하며 사나...?)

서태지와 아이들...

둘리 변진섭의 홀로된다는 것, 숙녀에게...

덤블링과 뽑기...

장난전화 그리고 섬짓한 숨소리...

"폰팅하실래요?"

뉴욕제과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는 사람들...

통닭에 생맥주 그리고 맥주잔 부딪히는 소리...

붐비는 강남역, 잠실역, 삼성역...

중국집 배달원의 철가방 그리고 그안에 들어있는 짜장면과 단무지...

인사동의 전통 찻집 그리고 차향...

노트필기와 형광펜...

동대문 시장, 패션상가의 숨막히는 공기 그리고 "언니"를 외치며 물건 파는 상인들...

어릴적 동무 그리고 그들과의 수다...

아...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


십여년전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온 이후부터 나는 매일 한국을 그리워하며 살았다.

사소하고 하찮은 기억도 내게는 너무 소중한 추억이었고 한국에서 함께했던

가족, 친구들은 내가 평생을 그리워하며 살게 될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땐 그 사람들에게 편지 쓰는 낙으로 낯설고 외로운

미국생활을 참아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사이가 별로 좋지 못했던 친구들까지

어쩜 그렇게 보고싶고 궁금하던지... 나를 괴롭히던 짓궂은 초등학교 동창

남자아이들은 왜 갑자기 떠오르던지...


단조롭고 조용한 미국생활은 도저히 한국을 그리워하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만들었고 나는 늘 한국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살았었다.

그렇게 그리워만 하다가 처음 7년만에 고국을 방문하였을 때...

얼마나 들뜨고 기쁘던지 출국 한달전부터 공책에 만나고 싶은 사람들

목록을 작성하고 하고싶은 것들, 가보고 싶은 것들도 꼼꼼히 챙겨 넣었다.

그리고 그렇게 설레이는 마음으로 7년간 내가 그리워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신기하게도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 어른스러워졌다던가, 예뻐졌다는

것을 빼고는 말투나 웃음소리, 웃는 표정, 작은 버릇들도 그대로 갖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찌나 반갑고 기뻤는지 모른다.

그러나 세월을 속일 수는 없다고 하더니 대화를 하면서 내가 그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너무나 그리워했고 무척이나 사랑하고

아끼는 소중한 친구들임이 틀림없는데 대화를 하다보면 서로 공감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적지않았다. 우리가 함께했던 과거의

이야기외에는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별로 없었다. 그리고 내가

오랜 세월 잊지않고 내 가슴에 품고 살았던 기억들을 친구들은 이미 많이

잊어버렸거나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채 살고 있었다. 다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면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들과 거의 연락이

두절된 상태였고 어른이되면 은혜에 보답하자고 약속했던 스승님의 이름조차

쉽게 기억해내지 못했다. (결국 그 스승님은 내가 인터넷에 힘을 빌려 찾을 수

있었고 2001년 두번째 고국방문때 만나뵙게 되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친구들이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하고 하는동안 나는 미국에 살았다. 그들과 달리 나는 미국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미국에서 대학 공부를 했다. 내가 기억하는 한국은

오직 내가 떠나오기전 모습뿐이다. 나도 친구들처럼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했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젠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 인터넷을 통해 그동안 만나보고 싶었던 친구도

찾을 수가 있게되었고 이멜일로 신속하고 간편하게 연락을 주고 받을 수도

있게되었다. 편해지면 편해질 수록 게으름을 피우게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가끔씩 전해오는 친구들의 소식이 나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요 즐거움이다.

요즘도 가끔씩 내꿈에 나타나 나를 즐겁게하는 나의 소중한 한국 친구들이

몹시 보고싶다.



현재 내가 그리는 것들...

한국가고 싶게 만드는 것들...

해외에 있는 우리들이 느끼기 힘든 것들...

당장 떠나고 싶다. 내가 그리운 것들을 향해...


싱싱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