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어머니께 상당히 죄송스런 마음이 들지만

유년기에 나는 먹는 것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다.

때로는 식사시간이 고욕스럽기까지 했고 어머니께 꾸지람을

들어가며 눈물 젖은 밥을 먹어야만 했던 기억도 난다.

오죽했으면 식사시간이 되면 안아프던 배가 아파왔을까…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는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나도

어릴적에는 꽤 알아주는 편식쟁이였다. 편식하는 아이들이

대게 그렇듯이 나 역시 햄, 치즈, 소세지 등을 좋아했고

파, 김치, 시금치, 당근, 콩 등을 싫어했었다.


요리한지 하루 지난 국이나 찌개는 웬만해서는 숟가락을

대지 않았고 까만 콩이 들어있는 밥이 먹기 싫어서 재빨리

콩을 골라 오빠나 아버지 밥 그릇에 덜어 놓곤 했었다.

학교 도시락 시간에는 김이나 계란말이와 같이 웬만해서는

맛이 없을 수가 없는 반찬을 제외하고는 친구의 반찬에 손을

대지 않았다. 특히 김치만큼은 우리집 김치 외에는 전혀

입에 대질 못했다. (이렇게 하나씩 써놓고 보니 참 재수없을

만큼 까다로운 식성이였군. --;)


햄이며 치즈, 피자 등을 좋아하는 내가 미국에 가게되자

주위에서는 좋아하는 것들을 실컷 먹게되었다며 잘된 일

이라고 했다. 나도 그당시엔 ‘내가 미국에 가서 무슨 음식을

먹게될까?’하는 걱정 따위는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미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먹는 것이 상당히 즐거웠던 걸로

기억된다. 팔보채, 깜풍새우, 청파 소고기, 마파두부, 초면

등등 이름만 들어보고 생전 먹어보지 못한 중국 요리들을

한달에 두세번씩 먹을 기회가 생겼으니까… 한국에선 중국요리를

먹는다고하면 역시 짜장면 아니면 짬뽕이였다. 뭔가 좀 다른걸 하고

싶다고 하면 만두나 울면 정도였고 정말 정말 특별한 날에는 탕수육도 좀

맛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요리점을 짜장면집이라고 불렀당. 하하)

미국에서는 정말 각종 다양한 중국요리를 맛 볼 수 있었다. 미국 와서 초반에

중국음식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언제부터인가 중국음식은 좀 별루다.

다만 짜장면이나 짬뽕은 가끔씩 아주 몹시 먹고 싶어지는데 특히 우리나라 짜장면은

진정 맛이 있다. 양도 많지 않아서 한그릇을 혼자 딱 맞게 먹을 수 있고

후르르륵 미끈한 국수 가락이 내 압안으로 들어올 때 느낌도 너무 좋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선 짜장면 한그릇도 배달을 해주고 짜장면과 궁합이

잘 맞는 단무지까지 나온다. 미국에선 아무리 맛있다는 중국요리집에 가봐도

짜장면은 그저그런 맛이고 배달이나 단무지는 그저 달콤한 꿈이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어느집이 짜장면을 맛있게 한다더라 하면서 맛있는 중국요리집을

찾아다니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선 어느 동네 중국요리집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그런 맛을 왜 낼 수 없는건지... 재료의 차이 때문인가.... 암튼 느긋하게 집에서

맛있는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최고의 행복임이 분명하다.


아무튼 미국에서의 즐거운 시절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매일식탁에 올라오는

LA 갈비가 더이상 반갑지 않았고 나중엔 고기 굽는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지끈 지끈 아파왔다. 어머니 없는 미국 생활을

오래 해야 했던 나에게 전화점이 찾아 오고야 만 것이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음식외에는 맛있게 먹을 줄 몰랐던 내가

타국 생활을 시작하며 달라진 것은 무엇이든 맛있게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 식성이 이렇게 판이하게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릴적엔 전혀 예감하지 못했다. 지금 나는

지독히 맛없는 (지나치게 짜거나 싱겁거나 쓰거나 상했거나)

음식을 제외하고는 먹는 것을 즐기며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속상한 일로 인해 우울해졌다가도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나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생기는 삶을 살고

있다고나 할까?


미국에 살다보니 뭐니뭐니해도 한식이 제일 좋다. 칼이며

포크보다 수저가 편하고 느끼한 스프보다는 얼큰한 국이 좋고

스파게티나 파스타보다 냉면이나 쫄면이 더 좋다. 미국에

산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음식을 먹고 사는지 궁금해

하시는 것 같은데 특별히 다를게 없다. 내가 사는 남부

캘리포니아에는 많은 대형 한인 슈퍼마켓과 음식점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큰 불편없이 한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

참고로 미국에서 인기 좋은 한식 메뉴를 보면 설렁탕과 순두부

찌개가 당연 제일인데 정말 이상할 정도로 미국에는 (적어도

남부 캘리포니아에는) 설렁탕집과 순두부집이 많다. 정말

이렇게 설렁탕과 순두부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많아도

장사가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만 나 역시 딱히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설렁탕이나 순두부를 먹게되니까 어떻게

보면 설렁탕과 순두부 찌개에 한인들이 그리워 하는 특유의

맛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포장마차에서 먹는 떡볶이와 오뎅국이다. 포장마차에서

사먹던 시뻘건 떡볶이와 오뎅국은 얼마나 맛있었던가…



밥 먹기 싫어하던 편식쟁이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아침 식사를 챙겨주셨던 우리 어머니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엄마아아아아~~~~!!”

나도 그런 엄마가 되어야 할텐데...



♡♡미시 메모♡♡

한참을 먹는 이야기만 했더니 이것저것 먹고 싶은게 많아져버렸습니다. 결국 뱃속에서

소화가되서 아주 볼품없는 모습으로 우리 몸을 빠져나가는게 음식이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이 혀에서 느껴지다가 내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가는그 기분은 분명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것이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고있자니 내가 무슨 미식가라도

된 기분인데 나는 다만 먹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

아휴 배고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