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불빛

 

"교장 선생님,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정말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자식 놈도 다신 안 그러겠다고 맹세했어요. 현태 이놈아, 어서 와서 교장 선생님께 빌어. 어서..."

"늦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어요."

교장은 고개를 돌린 채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앞 길이 구만리 같은 놈이 학교에서까지 쫓겨나면 갈 데가 어디 있겠습니까?"

교장실 바닥에 무릎까지 꿇은 현태의 엄마를 두고 교장은 그대로 나가버렸다.

 

이번엔 현태 아버지가 교감에게 매달렸다.

"교감 선생님. 퇴학만은 거둬주세요. 자식이라곤 저놈 하나밖에 없습니다."

"형사 입건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 다행입니다. 피해 학생 부모가 마음을 돌렸기에 망정이지 벌써 이런 일이 세 번째 아닙니까? 이미 징계위원회에서 결정된 일이니 저희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어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저희를 용서하세요."

형 집행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현태 아버지는 주눅 든 얼굴로 거듭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교감마저 머리를 가로저으며 나가 버렸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실신한 사람처럼 바닥에 주저앉은 아내를 부축해 쓸쓸한 교정을 걸어 나왔다.

 

현태의 엄마는 그 날 이후 웃음을 잃었다.

아버지 또한 현태에 대한 괴로움을 술로 달래며 하루하루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현태는 암울한 집안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열흘 만에 집을 나와버렸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봉천동에 있는 조그만 방 하나에서 벌레처럼 뒤섞이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돈이 필요할 때면 남의 물건에 손을 대기도 했고,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금품을 협박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현태는 또다시 싸움에 휘말렸고 반 년 만에 부모들 다시 만난 건 경찰서에서였다.

 

피해자의 젊은 부모 앞에서 그의 엄마는 또다시 무릎을 끓다시피 애원했다.

결국 많은 합의금을 주고 현태는 간신히 구속을 면할 수 있었다.

그 날이 현태가 여섯 번째로 경찰서를 걸어 나온 날이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현태의 아버지가 멀지 않은 친척에게 사기를 당해 집안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장사하던 가게마저 모두 다른 사람들 손으로 넘어가버렸다.

그 정황에도 현태는 마음을 잡지 못했다.

끝 모를 현태의 방탕함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이리저리 그의 멱살을 끌고 다녔다.

뒤숭숭한 집안 분위기가 싫어 밤늦도록 친구들과 거리를 기웃거렸고 집에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더 이상 관여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엄마와 아버지는 지쳐 있었다.

 

한 달에 몇 번 집으로 들어가면 현태의 손을 잡고 엄마는 힘없이 애원했다.

"이놈아, 이제 마음 좀 잡아야지. 어쩌자고 이렇게 사니? 에미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너 그러다 가서는 안 될 곳까지 가면 어쩌려고.... 그러면 네 인생은 끝나는거야. 이제 또 사고 치면 꼼짝없이 전과자 되는 거야. 아버지는 더 이상 합의금 마련할 힘도 없어."

"아버진 아직도 집에 안 들어와?"

"생활비라도 벌어야 한다고 지금 지방에 계셔. 친구분 도매상에서 일하시는데 일이 아주 험한가 봐. 빚쟁이 때문에 집에도 한 번 못 오신 지 벌써 두 달째야."

말하다 말고 그녀는 현태를 부둥켜안고는 소리내어 울었다.

 

하지만 현태는 세상에 두려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 중에 이미 여러 명이 교도소를 드나들고 있었다.

그러나 엄마의 눈물이 마음에 걸려 현태는 그 날 집을 나갈 수 없었다.

 

다음날 새벽에 걸려온 전화는 현태를 몹시 놀라게 했다.

"거기, 김재천 씨 댁 맞지요?"

"네, 그런데요. 누구세요?"

"여기 경찰선데 지금 바로 나와주셔야겠습니다."

"저, 무슨 일로 그러시는데요?"

"자세한 건 나오시면 말씀드리겠지만, 김재천 씨가 지금 절도 혐의로 이곳에 있습니다."

 

현태가 엄마와 함께 경찰서에 갔을 때 그의 아버지는 몹시 지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덥수룩한 수염에 야윈 얼굴, 손에는 수갑까지 굳게 채워져 있었다.

그것은 현태가 보았던 아버지의 가장 초라한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아들을 바라보지 못했다.

"이런 데까지 아이는 왜 데리고 왔어?"

아버지는 안절부절못하는 그의 엄마에게 핀잔하듯 말했다.

 

현태의 아버지는 절도미수죄로 결국 감옥살이를 하게 됐다.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가족 생각에 비가 내리는 새벽,

마산에 있는 한 귀금속 가게로 들어가려다가 그만 잡히고 만 것이다.

그 후 그의 아버지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옥살이를 했다.

현태가 엄마와 함께 면회를 갈 때마다 아버지는 늘 말씀이 없으셨다.

다만 면회를 마치고 돌아설 때면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현태에게 말했다.

"아비로서 자식에게 이런 꼴 보여서 죄스럽구나. 사는 게 너무 힘들어 아버지가 순간적으로 잘못을 저질렀다. 아버지가 이 모양이니 넌들 바른 길로 갈 수 있었겠냐? 아버지를 용서해라."

 

그 후로 현태는 엄마보다 더 자주 아버지 면회를 왔다.

면회시간에 아버지를 만나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하지만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이 가슴속 깊이 스며들어 번번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몇 달 후 현태의 아버지는 모진 고생을 마치고 교도소를 나왔다.

휘청거리는 아버지 뒤에서 현태는 말 없이 걸었다.

그때 엄마가 다가와 현태의 손을 잡았다.

"너는 꿈에라도 이런 곳을 기웃거리면 안 된다. 교도소라는 곳이 사람을 얼마나 처참하게 만드는 곳인지 너도 봤지? 순간적인 실수로 다들 저렇게 갇혀 지내는 거야."

말을 다 맺기도 전에 그녀는 설움에 복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이놈아, 앞에 걸어가는 아빠 좀 봐. 너 때문에 니 아버지 걸음도 잘 못 걸으시잖아. 너는 죽었다 깨어나도 니 아버지 마음 모를 거야."

 

현태 엄마는 잠시 길에 서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네 아버진 도둑질 같은 거 하지 않았어. 너 때문에 일부러 그러신 거야. 교도소가 사람 있을 곳이 아니라는 것을 너에게 보여주려고....생떼 같은 네놈. 거기서 젊은 시절 다 보낼까 봐서...."

현태는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 걸을 수 없을 만큼 정신이 아득했졌다.

멀리서 걸어가는 아버지의 야윈 어깨 위로 가을 햇살이 힘겹게 매달려 있었다.

 

그 날 오후의 충격을 현태는 결코 잊지 못했다.

그의 아버지는 물건을 훔치려고 귀금속 가게에 들어간 게 아니었다.

아들을 교도소에 가지 않게 하려고, 그렇게라도 해서 먼저 교도소로 들어간 거였다.

아버지의 희생으로 비로소 현태는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그 후 현태는 검정고시 학원을 다녀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었다.

그리고 다시 1년 뒤에는 인천에 있는 전문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스스로 어둠이 되었다.

빛을 거부했던 아들의 어둠 속으로 들어와 끝내는 그르치고야 말 그의 인생 앞에 불빛 하나를 밝혀주었다.

어둔 밤바다와 같은 인생에서 표류할 때마다 두고두고 바라볼 먼 불빛, 아버지. 아버지....

 

---<이철환의 연탄길1> 중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는 지 별 생각없이 또래들에게 휩쓸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무슨 생각하며 사는 지 별 생각없는 부모도 있지요.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치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식을 위해 자기 한 몸 기꺼이 바치는 부모도 있습니다.

세상에는 그렇듯 각양각색의 부모와 자식이 존재합니다.

 

자식에게는 무엇보다도 부모의 본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자식은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부모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자라기 때문이지요.

부모가 아무리 좋은 본을 보인다해도 간혹 엇나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은 결국,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가 결국엔 돌아오리라는 믿음과 인내로

어둔 밤바다와 같은 인생에서 표류할 때마다 두고두고 바라볼 먼 불빛이 되어준다면...

어둔 밤바다의 등대가 되어준다면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