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여행
사랑은 아마도 한 사람의 세상으로 들어가서 아주 오랫동안 여행을 하는 일일거야.
그 여행은 밤마다 초록색 베개를 안고 숲까지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두렵지만 깨고나면 두 눈이 따뜻해지는 꿈 같은 거겠지..
-엠마 마젠타의 <분홍 주의보> 중에서-
21년 전, 맨처음 미국에 정착한 곳은 허클 베리핀으로 유명한 미시시피주였습니다.
거기서 두 아이를 낳고 아이들이 다섯살, 두살이 되기 전에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왔으니
이제는 미시시피에서 살았던 날보다 캘리포니아에서 산 날이 몇 배는 많아졌네요.
아이들에게도 미시시피는 그저 먼 기억 속의 동네가 되어버렸구요.
첫 아이가 돌이 되기 전, 아랫니 두개가 뾰족이 나오던 날,
남편 친구랑 함께 동부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감격해하고
나이아가라 폭포에 입을 쩍 벌렸던 기억이 납니다.
미시시피 촌 아낙내였으니 오죽 했을까요.^^
그때 찍은 사진 중에는 지난 911 테러사건에 사라져버린 쌍둥이 빌딩을 배경으로 한 것도 있는데
그 사진 속의 쌍둥이 빌딩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 내릴 줄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참으로 한 치 앞을 보지 못하는 인생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형편이 좋지 않았던 유학생 시절엔 근사한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지만
그래도 일년에 한번씩은 잠깐씩 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바다에서 자란 남편은 늘 바다를 동경했기에
7시간씩 차를 몰아 플로리다의 펜사콜라, 빌낙시에 다녀오곤 했지요.
캘리포니아로 이사를 오면서부터는
일년에 한번씩 바닷가로 캠핑을 가는 것이 즐거움이었습니다.
애들이 좋아하고, 싼 값으로 며칠을 즐길 수 있어 캠핑만한 것도 없었으니까요.
큰 아이가 대학을 가고..저는 조금씩 늙어가고..ㅠㅜ
이제..캠핑이 썩 달갑지만은 않아졌습니다.
텐트에서 자는 것도 녹록치않고, 아침에 일어나서 꾀죄죄한 모습도 맘에 안들고..
그래서 캠핑을 접은 지 어언 두해 정도 됐네요.
물론 아이들이 원한다면 기꺼이 이 한 몸 바칠 각오가 되어있지만
엄마가 원하지 않은 걸 아는 아이들은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모양입니다.
며칠 전 여름학기를 하기 전 2주 시간이 난 딸아이의 스케줄에 맞춰
라스베가스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공부하느라고 애쓴 두 녀석들과 함께 맛있는 거 먹고, 쇼도 보고, 쇼핑하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가지 약속도 하고 왔습니다.
매년 6월이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6월엔 가족여행을 하자고요.
아이들이 학업을 위해 멀리 살게 되더라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상이 바쁘게 되더라도,
6월엔 온 가족이 모여 함께 Family Reunion을 하자고요.
그렇게 사흘을 무슨 일을 하든지 함께 하고, 어디를 가더라도 함께 가고..
얼굴 맞대고 함께 먹고, 같은 방에서 함께 자니
여행이란게 이렇게 달콤하고 좋은거구나 하고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이 ‘애들이 어렸을 때는 돈 버느라고 여행은 꿈도 못 꿨다..
그때는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여행 가야지 했었는데
시간이 흘러 막상 돈이 생기고나니 애들이 떠나고 없더라’ 라고 말씀하던 것이 기억납니다.
또 어떤 분은 ‘아이들하고는 돈을 얼마 벌었네…라는 말보다는
어디로 여행 가서 무엇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무엇을 먹었네…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라며 할 수만 있다면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권하더군요.
아이들이 커가면서…점점 그 말이 옳다…실감합니다.
시간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니까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의 세상, 남편의 세상으로 들어가서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학교로 돌아가서 또 다시 학생의 본분을 다 해야 할 아이에게도
그 시간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따뜻해지는, 그저 미소지어지는 시간이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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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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