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하늘에 우물을 판다
파란 물로
그리운 사람의 눈을 적시기 위하여
　
깊고 깊은 하늘의 우물
그 곳에 어린 시절의 고향이 돈다

그립다는 거, 그건 차라리
절실한 생존 같은 거
가을은 구름밭에 파란 우물을 판다 　
그리운 얼굴을 비치기 위하여

- 조병화의 시＜가을＞(전문)에서 -

여름의 끝, 가을의 초입..

2주간의 방학을 마친 딸아이가 학교로 돌아간 아침,

여느때처럼 쿨하고~ 씩씩하게 아이를 배웅했겄만

이상하게 다른 때와는 사뭇 다른 허전함을 느낍니다.

아이의 빈 자리,

아이의 빈 방이

마치 커다란 우물 하나 파인 듯 그렇게 깊이 느껴집니다.

한국에 사는 친정 언니에게 이런저런 허전함을 전했더니

언니 왈, "결국 자식은 놔줘야 돼~~"라고 말합니다.

누가 그걸 모르나요?

늘 생각하고 있고, 실천하려고 하며, 지금도 끊임없이 하고 있는 연습 중의 하나가 바로 그건걸요~

여름의 끝,

가을의 초입...

그 때문일까요?

아니면..이게 늙어 간다는 증거일까요?

딸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빠와 동생을 위해 남겨놓은 어색한 동영상을 들여다보며,

벌써 커다란 우물이 되어 그리움으로 남은 딸아이를 생각합니다.

"엄마, 걱정마세요. 잘할게요"

지지난 주 한국에 계시는 친정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습니다.

86세..

그동안 혈압으로 몇 번 쓰러져 입원을 하셨던 적은 있지만

최근에는 비교적 건강하게 잘 지내셨는데 갑자기 쓰러지신 것입니다.

다행히 입원 2주 만에 퇴원을 하시고, 움직이시는 데도 그닥 어려움이 없다고 하지만,

올 가을 계획하신 우리집 방문은 수포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울먹이며 당신의 안부를 물었더니

아버지는 연신, "울지마..난, 괜찮아..울지마...." 말씀하십니다.

여름의 끝,

가을의 초입..

이렇게 당신은 내 가슴에 커다란 우물 하나 파놓고 미세한 파문을 일으킵니다. 

울 엄마도, 울 아버지도 나를 보낼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렇게 허전하셨을까...

놔줘야지...놔줘야지...놔줘야 함을 매일 연습하며 나를 놔주셨을까...

딸아이와 오버랩되며 한없이 작아진, 아픈 울 아버지 생각에 가슴의 우물은 깊어만 갑니다.

"아버지, 보고싶어요. 힘내세요, 아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