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8시 15분 기차를 타려면 다른 때보다도 서둘러야 한다.
알람 한번만에 번개같이 일어났는데도
간단한 아침과 아이들 도시락까지 싸고나니
겨우 씻고 준비할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부랴부랴..씻고 차려입고 문단속하고 집을 나와 기차를 탔다.
서둘렀던 탓인지 기차가 떠나려면 1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기차가 떠나기를 기다리는 도중 잠시..집 생각이 난다.

문은 잘 잠궜지? Clear~
차고문도 잘 닫았지? Clear~
그러다가….가스불은 껐나? 대목에서 좌절한다.

아이들 도시락을 싼 후 끈 것 같기도 하고..안 끈 것 같기도 하고..--
아침에 나올 때 문은 확인했으면서 그것은 확인하지 못한거다.

이때부터 시작된 조급증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기차는 이미 역을 떠나 달리고 있어 내리지도 못한다.
그래 할 수 없이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있지…내가 아까 가스불을 껐던가?”
“껐겠지~ 껐을거야~”

적잖이 나를 믿는 눈치다.
아니 나의 어처구니없는 오도방정 조급증에 적잖이 길이 들어버린 눈치다.
숱한 여행길에서 그놈의 가스불때문에 집으로 되돌아 확인하러 가길 몇 번이었던가~
그때마다 가스불은 확:실:하:게: 꺼져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오도방정 조급증을 탓할 밖에..

하지만…만약이란게 있지 않냐 그말이다.
번번히 잘 끄고 다니는데 오늘처럼 미처 꺼있음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그런데 그것이 어쩐 일로 켜져있었다면..
그 만약에 대해선 누가 책임지겠느냐 그말이다.

도저히 가라앉지않는 조급증에
마음 한 구석 1% 도사리고 있는 불안감에
남편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저기…아무래도 불안해서 안되겠어..”
“그러니까…나보고 집에 가보라고?”
“응..(모기소리로…ㅠㅜ)”
“알았어.”
“그럼..확인해보고 전화해줘.” 심하게 서둘러서 딸깍..

미안한 마음에 심하게 서둘러 두번째 전화를 끊고는 잠시...다시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나야..확인했어.”
“꺼졌있어?”
“응.”
아이고마니나..이건 뭐 늑대와 소년 이야기도 아니고 미안시러바서 어짤끄나…^^
“ 그랬구나..고마워.”

남편은 주차장이 멀어 멀리 차를 대놓고 20분 정도를 걸어가야 자기 실험실에 당도한다.
그러니…가스불 켜졌나를 확인하기 위해
일단 20분을 걷는다.
차를 타고 집에 간다.
가스불이 켜져있나 확인한다.
다시 차를 타고 주차장에 주차한다.
20분을 걸어 실험실에 간다..
음..모르긴 몰라도 남편은 나때문에 황금같은 1시간을 없애버린 거다..
그 빌어먹을 가스불때문에..에혀~

며칠 전 목요일, 수인이가 선블락로션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알았어..주말에 사줄게.”
그렇게 말했더니 남편은 왜 당장 안 사주냐고 한다.
당장 다음 주 월요일까지는 수인이가 선블락을 쓸 일이 없으니
한꺼번에 쇼핑할 때 사려고 한다 했더니~

“자네는 큰 일은 척척 잘하면서 자잘한 일은 귀찮아하는 경향이 있어..”
라고 말한다.

하긴 그렇다..
내가 좀 큰 일에는 대범한데 자잘한 일은 귀찮아하는 경향이 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기분좋게 하자’가 살아가는 방법이지만
선블락 하나 사러 마켓까지 차타고 가는 것이 꼭 잘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남편의 말을 더듬어 가만히 나라는 사람을 생각해보니
나는 큰 돈은 척척 잘 쓰면서 작은 돈에는 쩔쩔매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10불짜리 물건 하나는 재고 또 재고..들었다 놨다 그러면서
써야 할 100불에는 별로 인색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호탕하게 보이는 성격과는 달리
작은 것 하나에 얼마나 조급증을 내는 사람인가~
생각을 하나 물고 늘어지면 극도로 소심해지고 조급해지고..
결국 남편이 지적한대로 나는 큰 일에는 대범하되, 작은 일에는 소심해지는 사람이다.
아무리 인심 팍팍 써서 기분 좋게 진단한다 해도 충분히 나는 그런 경향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어찌됐건 결론은 나왔다.
가스불은 꺼져있었고 나는 소심한 사람이다.
그래도 내 마음이 이렇게 가벼울 수 있으니
이는 충분히 기쁜 일이지 않겠는가~

--2008년 보키의 일기장에서 발췌함---

책장을 정리하다가 딸아이가 9살 때 썼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당시에 딸아이는 자신을 SDS(Spy Dectective Sue)라고 불렀더군요.

그래선지 일기도 스파이답게 시간별로 기록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2001년 7월 20일 엄마를 스파이 한 날의 기록.
5:45 Mom is sleeping.
Ditto
Ditto
Ditto
Mom was reading before she fell asleep.
5:53 Mom woke up.
5:55 She fell asleep again.
(she looked at me)

혼자서 킥킥대며 읽다가 딸아이와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더니

'내가 그런 일기를 언제 썼지?' 하며 딸아이는 스스로 믿기지 않는 듯 읽어보고

가족들은 모두 깔깔깔 뒤로 넘어갑니다.
10 년 전의 기록 덕택에 얼마동안 딸아이는 우리에게 SDS라는 별명으로 불리웠습니다.

오래 전에 자신이 기록한 글을 찾아 읽는다는 것..

그것은 때때로 추억을 향한 여행이 될 수도 있지만

어느 때는 자신이 썼으면서도 전혀 자신이 쓴 것 같지않은 낯설음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서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그때와는 사뭇 달라져 있는 까닭이겠지요.

저 위에 발췌해놓은 글은 2008년 9월에 적은 글인데

낯설음보다는 여전히 '그래...그래...맞아..맞아..'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어제만해도 집들이에 초대받아 가는 중에

garage 문을 내렸는지, 안 내렸는지..생각이 잘 안나 대략난감 했었거든요.

식구들이 모두 "내렸을거야...", "내렸어...", "항상 내리시잖아요..."등등의 말을 해주어

그냥 집들이 집을 향해 가는 당당함(?)을 보였지만

돌아가서 확인해볼까? 하는 생각이 아니 들었던 것도 아니었답니다.

물론...집에 돌아와보니 garage 문은 얌전히 잘도 닫혀져 있었구요.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다양한 대략난감의 상황들..

시간이 지나면 그런 상황들도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연륜이 쌓이는지

지금은 그런 것들을 웃으며 이야기하곤 합니다.

캠핑때 텐트를 챙기지 못했던 아빠의 실수담이나

쌀과 젖가락을 챙기지 않았던 엄마의 웃지못할 실수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다시 차를 돌려 문이 잠겼는지, 불이 꺼졌는지 확인하러 갔던 시간들..

예전의 기록을 통해 되돌아본 지난 시간 속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