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을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던 딸아이가
2학년부터는 학교 아파트에서 생활하기로 했습니다.

대학마다 기숙사 규모나 형태가 다르겠지만
아이의 학교 기숙사는 10명이 하나의 suit에 살게 되어 있는데
3명이 나눠쓰는 방이 2개, 혼자서 쓰는 방이 4개..로 나뉘어집니다.

지난 1년간 딸아이는 3명이 나눠쓰는 방에서 잘~ 지내다가
이번 학년에는 맘에 맞는 아이와 4명이 살게되는 학교 아파트에서 생활하게 되는 것이지요.

학교 기숙사와 학교 아파트를 비교해 본다면
우선 가격 면에서 학교 아파트가 조금 저렴합니다.
학교 기숙사에서는 모든 식사를 학교 다이닝홀에서 해결해야 하는 반면,
학교 아파트에서는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도록 전반적인 시설이 되어 있어
기숙사비로 내는 돈이 조금 내려갔거든요.
 
학교 아파트의 좋은 점은 그렇게 음식을 직접 해먹을 수 있으니
앞으로 혼자 살 때를 대비하는 면에 있어서 조금 더 유리해보입니다.
 
아파트에 방이 두개..
방 하나를 두명이 나눠쓰고 부엌과 리빙룸은 함께 쓰게 되어있는 구조인데
친구들과 어떻게 살기로 했는지 딸아이에게 넌즈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학교에 비치되어 있지 않은 전자제품은 각자 나눠서 갖고 오기로 했고,
돈을 모아 식료품을 사고 함께 해 먹기로 했다나요?

필요한 전자제품을 각자 가져오는 것은 참 좋은 방법인 것 같았습니다만
돈을 모아 식료품을 사고 함께 해 먹기로 했다는 것은 조금 아니다~ 싶었습니다.
언뜻 보면 한집에 사니 함께 밥을 해먹는 것이 당연한 것 같아 보이지만
5박 6일 여행가는게 아닌 이상 긴 시간을 그렇게 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보였기 때문이지요.

매일 서로의 스케줄이 다르기때문에 함께 모여 밥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선 첫번째로 든 생각은 공연히 아무것도 아닌 일로 서로의 맘을 상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친한 사이에 금이 가는 것은 아주 엄청난 일 때문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오해나 실망으로 비롯되는 일이 허다하니까요.

예를 들어,
넷이 돈을 똑같이 나눠서 일주일 분 시장을 봤는데
한 사람이 일주일 내내 뜻밖의 일이 생겨 번번히 밥을 함께 못 먹을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일주일이 끝나가고 다시 돈을 걷게 되었을 때..
그 친구 입장에서는 어쩐지 손해본다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나는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하면서요.
꼭 그런 일 뿐만아니라 서로 좋아하는 메뉴가 다르고,
먹는 양이 다르기때문에 처음에는 괜찮아 보이던 것들이 시간이 흘러
말도 못하고 감정만 상하고…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딸아이에게 엄마가 제안을 했습니다.
각자 스케줄이 다 다르고 좋아하는 것이 다르니까
자기가 먹을 것을 사서 먹되,
한번씩 음식을 해서 친구들과 함께 나눠 먹는 것이 어떻겠냐고요.
엄마 생각에는 ‘아메리칸 스타일’로 가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고요.
그것이 처음에는 좀 삭막해보여도 뒷말없고, 깔끔하고, 속편하다고요.

많은 연로하신 분들은 따로따로 계산하는 것이 여전히 익숙치 않으십니다.
한국에서 성장하고 한국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굳이 연로하지 않더라도 더치페이를 하는 문화가 참 낯설게 느껴집니다.
따로따로 돈을 내게되면 어쩐지 구두쇠로 보이는 것 같고,
따로따로 돈을 내는 것을 옹호하면 어쩐지 인색하게 느껴지는게 또한 우리의 정서입니다.
그런데 그러다보니 번번히 지갑을 먼저 꺼내는 사람이 돈을 내게 되고,
그렇게 매번 돈을 내는 사람은 집에 와서 씁쓸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돈을 내서 밥을 샀어도 뭔가 찝찝한거죠.

그래서 저는 한달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람들과는
한달 회비로 얼마씩 돈을 걷어 그 돈으로 식사비를 해결하는 법을  웠습니다.
우리 정서에 맞지 않은 더치페이를 하지 않아서 좋고,
늘 그만큼씩의 돈을 서로가 낼 수 있으니 감정 상하지 않아서 좋고요.

딸아이는 엄마의 제안을 듣고 친구들과 상의해보겠다고 합니다.
어떤 식으로 결정할 지…그것은 아직 모르지만
설사 원래 자신들이 하기로 한 방식을 유지해서 시행착오를 거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엄마 생각에는 엄마가 먼저 돌고 돌아갔던 길을 아이가 곧장 가기를 바라지만
인생이란 그렇게 늘…곧장 가는 법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어우러져 살다보면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겪게 되는 갖가지 희노애락을
몸소 경험하게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