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듣는다는 것,
'경청'의 문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어른들 간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이슈가 된다.
"남편이 제 말을 항상 귓등으로 흘려요."
"아내는 내 말을 제대로 새겨듣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참여하는 부부 워크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이다.

- 대니얼 고틀립의《마음에게 말걸기》중에서 -

긴 추수감사절 주간이 지나자 식구들은 학교로, 직장으로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휴일 동안 늘어지게 늦잠을 잔 탓에 아침에 일어나기는 왜 그렇게들 힘든지..
저 역시 알람을 세번이나 끄고 다시 자버려 아이들 도시락 싸고 아침 준비하느라
다른 때보다 훨씬 더 바쁜 아침을 보냈습니다.
이런 걸 '명절후유증'이란 말로 대신 할 수 있겠지요?

식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를 둘러보니
개수대의 빈 그릇들과 방바닥에 이 빠진 것 마냥 나뒹구는 머리카락, 헝클어진 이불,
마구잡이로 벗어놓은 옷들이 정신없이 널려져 있습니다.
아무리 말을 해도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아이들 탓에 '정리'는 고스란히 엄마 몫입니다.
그저 한숨 한번 '퓨우~'쉬고 집안일을 시작하지만
이따가 방과후에 이놈들의 버릇을 고쳐주자고 엄마는 단단히 벼릅니다.

아이들은 똑같은 소리를 매일 같이 해대도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비상한 재주를 가진 듯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이불 정리 좀 해라."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자기 손으로 좀 주워라."
"양말은 뒤집지말고 빨래통에 넣어라."
"숙제할 때는 제발 문자 좀 하지마라."
"밥 먹을 때는 멍 때리지 마라."
"자기가 마신 컵은 방에 놔두지말고 꼭 개수대에 갖다놓아라."
"머리를 말린 수건은 빨래통에 넣어라."
"잠옷을 걸어라."
"옷을 꺼내 입을 때는 입을 옷만 꺼낸 다음 다른 옷은 잘 개진 상태로 놓아 두어라." 

대충 우리집 아이들이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이야기를 나열해 보았지만
적어도 여러 가정에서 한번쯤은 했음직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아이들이 일상에서 쉽게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것들만 엄선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런 말들을 한 다음 엄마들은 거기서 멈추지않고 꼭 한마디를 더하고 맙니다.
"어제도 말했는데 내 말은 귓등으로 흘려버리니? 너무한거 아냐? 이제 나도 지겹다..ㅠㅜ"
이 말을 할 때쯤이면
아이들은 몸을 슬슬 움직이며 엄마 잔소리의 핵심을 개선하는 노력을 보이곤 합니다.
머리카락으로 잔소리를 했다면 머리카락을 줍는 시늉을 하고,
양말을 뒤집어서 내놓았다면 양말을 원상태로 다시 뒤집는 시늉을 하며,
이불 정리가 안 된 상태였다면 이불을 정리하는 시늉을 하는 것처럼요.

하지만 '이제 나도 지겹다'던 엄마의 잔소리는 날이 새면 또 계속됩니다.
잔소리의 핵심이 머리카락에서 문자보내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
엄마의 레파토리는 어제나 오늘이나 아마 내일도,
어쩌면 아이들이 독립한 후 까지도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똑같은 엄마의 말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되다 보니
어느덧 아이들은 엄마의 잔소리에 식상하고, 덜 긴장하게 되고,
'잔소리는 엄마의 일상, 잔소리=엄마'라는 등식을 만들며
'엄마는 떠드시오~~나는 왼쪽 귀로 듣고 오른쪽 귀로 흘려버리겠소!!' 하며
더욱 기세등등하고 가열차게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니 '악순환'도 이런 '악순환'이 어디 있을까요?
잔소리 쏟아진다--->
귓등으로 흘린다--->
그래서 또 잔소리한다--->
점점 더 견고하게 귓등으로 흘려버린다---->
죽을 맛이지만 여전히 잔소리 계속한다--->
아예 귀막아 버린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제가 우리 아이들의 나이였을 때, 과연 제 모습은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완전히 100% 객관적인 시각으로 저를 들여다 본 결과 저 역시 우리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우리 아이들보다 못하면 못했지 더 잘하지는 못했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은 제가 귓등으로 흘려버렸던 어떤 일에 있어서는 엄마인 저보다 나았으니까요.

간혹 '경청'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있긴 하지만 일반적인 범주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집안에서의 '생활 규범'이나 '규칙'과 관계된 일들로 엄마와의 눈흘김이 시작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자꾸 눈 흘기고 잔소리하다 보면 사춘기의 아이들과는 점점 대화의 창이 닫히게 되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불신의 벽이 높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물이 엎질러져 버린 후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속수무책 대략난감의 상황일 뿐입니다.
그렇다면....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누이좋고 매부좋고 도랑치고 가재잡는 서로가 WIN- WIN하는 방법 어디 없을까요?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우리 힘으로 아이들을 바꾸기가 힘들다면 우리 엄마들이 바뀌어야 한다'는 태초의 진리에 도달합니다.
늘 하나마나 한 소리인 것 같지만, 그것만큼 확실하고 그것만큼 당연한 소리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바뀔려면 우리 엄마들이 바뀌어야 한다'

엄마들이 바뀌려면 지금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해왔던
'잔소리 신공' 내지는 '기죽이기 권법' 따위는 잊어버려야 합니다.
뭔가 새로운 작전, 지금까지와는 차별화 된 좀 더 미래지향적인 '작전'을 짜야합니다.

작전 제목:'엄마의 주옥같은 말씀을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아이들 길들이기!!'
작전 KEYWORD:'기살리기 권법', '눈짓신공', '입술신공'
작전 방법: 1) 매일매일 똑같은 잔소리는 이제 그만!!-너무 식상해요!!
               2) 기죽이기는 이제그만!!-이불 하나 정리 못한다고 행복할 수 없는건 아니에요!!
               3) 열마디의 말보다는 엄마 특유의 표정살리기!!-말 대신 표정 활용하기!!
               4) 잔소리 없이 안하던 짓을 했을 때 굉장히 오버해서 칭찬하기!!-나이가 들어도 칭찬은 좋아요!!

새로운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몇가지를 정리해보면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고개가 갸우뚱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 아이들이 어차피 귓등으로 흘려버리는 일들이라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엄마가 바뀌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도전해보는 것도 밑져야 본전 아닐까요?

아이들의 방을 정리하고 청소하면서 '이놈들...두고봐라!!' 하며 벼르던 '기죽이기 신공'이 가라앉더니
그 자리에 '기살리기 신공'이 살짜쿵 자리한 것을 눈치챕니다.
'기살리기 신공'에는 뭐니뭐니 해도 칭찬할 건수를 찾는 것이 최고입니다.
그저 빈 방일 뿐인데도 아이들의 흔적 속에는 여기저기 칭찬 건수가 널려있습니다.
정말이지 찾자고만 한다면 못 찾을 것이 없고
보려고만 한다면 못 볼 것이 없는 모양입니다.

오늘 우리 아이들의 방에서 찾은 칭찬거리...
선반 위에 저금통이 묵직한 것이 제법 저금도 하는 눈치구나.^^
방바닥에 머리카락은 많이 흩어져있지만 그래도 빗은 제자리에 갖다 놓았구나.^^
옷 찾아 입은다고 옷장 안을 벌집 쑤시듯 쑤셔놨지만 적어도 잠옷은 얌전하게 걸어놨구나.^^
피아노 위에 얌전하게 걸쳐진 악보를 보니 간밤의 연주소리가 다시 떠오르는구나.^^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칭찬은 참으로 묘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마음을 정리하면서 귓등으로 흘려버리기 마왕들의 칭찬거리를 찾고 다니는 순간...
어느새 제 마음이 붕붕~ 고래 등을 타고다니는 것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