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학년 딸아이에게 마침내 남자친구가 생겼습니다.
데이트를 시작한 때부터 본격적인 사귐을 가진 지는 이제 겨우 1개월 남짓이지만
둘이 함께 밴드부 친구로 지낸 것은 넉넉잡아 4년 정도가 되는,
처음에 친구로 잘 지내다가 더이상 그냥 친구가 아닌 특별한 친구로 거듭난(?) 아이들..
요즘엔 이들의 연애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맨처음 딸아이가 내게 둘의 교재를 허락 받던 날이 생각납니다.
“엄마, **가 데이트를 신청했는데….어떻게 하죠?”
“니 마음은 어떤데? 그 아이를 좋아하니?”
“네,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너도 데이트를 하고 싶은거야?”
“네, 그런 것 같아요..”

엄마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운 딸아이는 말끝마다 ‘---하는 것 같아요’라고 함으로써 
엄마의 반응에 주목했습니다.
마치 내가 하지말아라….하면 하지 말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엄마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미 능구렁이가 다 되어있었답니다.
무조건 막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무조건 못하게 하는 것은 결코 잘하는 짓이 아니다..
허락하되, 쿨하되, 자유를 주되 지혜롭게 조여라..등등
능구렁이 엄마의 머릿속에는 여러가지 계산이 시작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하여 시작된 딸아이의 연애.

**는 운전면허증은 가졌지만 아직 운전할 차가 없고,
딸아이는 아직 퍼밋을 가진 처지라 혼자서는 운전할 도리가 없고,
하는 수 없이 **의 엄마와 나는 아이들의 운전수를 할 수 밖에 없었지요.
(참고로 **는 한국아이가 아닙니다. ^^)

그들의 첫번째 데이트는 동네 플라자에 있는 영화관이었습니다.
영화관 앞에 딸아이를 내려놓고 “Have fun!!” 하고 미소짓는 엄마의 모습은
딸아이의 첫 데이트에 들떠있는 나의 모습이기도 했지만
내가 꿈에서만 상상했었던 우리 엄마의 쿨한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비교적 완고한 부모님들 덕택에
남자친구를 남자친구라 하지 못하고 애인을 애인이라 하지 못하는 홍길동같은 처지였거든요.
그래서 내 아이는 홍길동 같은 처지가 되지 않게 하리라..
감추면 감출수록 엄마와의 GAP은 커져만가고
막으면 막을수록 반항심과 경계심은 도를 넘어간다는 진리를
어쩌면 그때부터 깨달은 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데이트를 마치고 픽업하는 차 안에서는
전부는 아니어도 대강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됩니다.
그날 약속이 3시였는데 **는 traffic 때문에 3시 5분에 도착했다는 둥~
영화표는 **가 냈다는 둥~
그래서 자기가 저녁을 사고 싶었는데 첫 데이트는 남자가 사야 한다면서
저녁까지 얻어먹었다는 둥~
미안한 마음이 있다는 둥~
**는 문을 항상 열고 닫아주는 매너가 있다는 둥~

시종일관 입이 귀에 걸려 종잘거리는 아이에게 능구렁이 엄마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항상 문을 열고 닫아준다고야? 매너가 좋은 넘이네..+1점
영화도 보여줬다고야? 에구구..좋았어..+1점
게다가 저녁까지 샀다고야? 어째 좀 미안해진다..+1점
그런데 약속시간에 늦었네? 약속시간을 잘 지키는건 중요한건데…-1점

이렇게 점수를 주니 아이가 까르르 넘어갑니다.
비록 – 점수가 있긴 해도 대충 + 점수가 더 많은거 같거든요.^^
그러면서 “엄마, 몇 점 만점이에요?” 하고 물었습니다.
“10점 만점이지..그러니까 **는 10점 만점에 12점이얌..현재 스코어~^^)"

그런데 사람 맘이 좋은 점수를 위해서 좋은 점만 이야기 하기 쉽지 않겠어요?
그래서 엄마는 앞으로의 점수 계산법에 대해 선포를 하게 됩니다.

“앞으로는 너의 행동 하나하나가 그 아이의 점수가 될거야.
예를들면, 네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미루면 -1점 이런 식으로 말야.
왜냐하면..네가 **를 사귀기 전에는 잘하던 일을 **와 사귄 후로 잘 못한다면
엄마 생각에 그게 누구 탓이란 생각이 들겠니?
그러니 이제부터는 너의 행동에 더 조심해야겠지?
**를 위해서 말이야~”

그리하여 지금 **의 점수는 9점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와 –를 오르락내리락 하며 말이죠.^^

어제 에프터 크리스마스 데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딸아이에게 엄마는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엄마가 인생을 살면서 생각해보니
엄마처럼 나이가 들면 ‘추억’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참 고맙더라.
추억이란 것이 이쁘고 좋았고 그리웠던 기억이라고 한다면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와의 데이트도 너희들이 어떤 식으로 엮어가느냐에 따라
추억이 될 수도 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bad memory가 될 수도 있어.
엄마는 네가 나이가 들어 지금 **와의 데이트를 추억할 수 있었음 좋겠어.
이쁘게..이쁘게…아주 이쁜 첫사랑으로 나중에 추억하렴..^^”

추억은 아름답지만 나이가 드니 추억은 소중하기까지 합니다.
이렇듯 한해의 끄트머리에서 추억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은 차라리 선물입니다.
지난 한해...나빴던 기억들은 다~ 잊어버리시고
이쁘고 좋았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것들만 고르고 골라서
가족들과 함께 추억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저 역시 이번 연말에는 첫 연애를 시작한 풋풋한 딸아이의 사랑이
먼훗날 아주 이쁘게 추억할 수 있는 고운 이야깃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한해를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렵니다.

이렇게 딸의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기축년 소의해 마지막 칼럼으로 마무리하며
저는 경인년 백호의 해에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_________^

여러분 한해동안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m(_.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