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올 겨울, 유난히 추워서 바깥 외출하기 힘이 드신 연로한 어머니.
벗하시던 아랫집 아짐마저 도시에 있는 딸네집에 가신 바람에 유난히 외로운 시간을 보내실 우리 어머니.
늘상 별다를 것 없는 안부를 묻고, 아이들도 한차례씩 서툰 한국어로 할머니 안부를 묻습니다.

다시 전화가 제게 건네지고 사람의 정이 그리운 어머니는
지난번과 똑같은 이야기를 토씨하나 빠뜨리지 않고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저는 “어머니, 그 이야기 지난번에 하셨는데요?” 라고 말하지않고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 마냥 “네…네..” 맞장구를 쳐드립니다.
어쩌면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제게 처음 하는 이야기라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머니의 총기는 젊은 사람이 시샘할 정도였습니다.
어찌나 기억력이 좋으셨든지..
제가 시집가서 했던 말은 물론이고, 젊은시절 당신과 아버님의 이야기,
아이들 아빠이야기까지 장면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기억하시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에 앞서 경이롭기 까지 했지요.

그랬던 어머니가 요즈음에는 총기에 비상에 걸린 것 같다 합니다.

“아가..요즘에는 내가 깜빡깜빡한다..옛날 일은 그래도 아직 기억이 나는데 최근 일은 까먹을 때가 많아..”

그러면 저는 어머니께 이렇게 응수하지요.

“아이고..어머니..그런 말씀 마세요. 어머니 총기는 지금도 끝내주시는걸요.
전 나이도 어린게 벌써부터 깜빡깜빡하니…이를 어쩜 좋아요.”

사실 총총어머니의 그런 넋두리는 어머니의 연세와 겹쳐져 더 아프게 다가옵니다.
벗할 사람들이 사라지니 말할 기회는 줄어들고,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기억력도 흐려지고,
하지만 곱씹으며 지난 날을 돌이켜볼 시간은 많아 하나하나 들춰내어 잘잘못을 따져보고 후회도 하고…
그래서 어쩌다 전화하는 며느리에게 한 이야기 또 하신 것을 잊으신 채 또하고 또하고 하시는 것이겠지요.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면서는
남편과 아이들을 돌본다는 핑계로  부모님에게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늘 곁에 계셔주리라 생각했던 고목나무 같은 부모님들은
이마에 나이테를 만들며 늙어갔으며, 때로는 유명을 달리 하기도 합니다.
이제 총총 기억력을 자랑하던 당신들의 기억력은
우리들이 어렸을 때..함께 왁자지껄하며 떠들었던 그때에 머물러 계셨고
지금은 별거 아닌 것도 깜빡깜빡 잊으시기가 예사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머님의 반복되는 레파토리가 참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자식이라는 이름만 있었지 홀로 계신 당신을 너무 외롭게 만든 것 같아
같은 이야기라도 함께 울어주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외로움을 해소해준다면 천번이라도 그렇게 해야지요.

아이들에게는 보여지는 부모의 모습이 산교육이라지요?
효도하라..효도하라…부모에게는 효도해야 한다…백날 말하고 타이를 것이 아니라
제가 먼저 나서서 어머니를 찾아 인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교육이리라 생각해봅니다.

깊어가는 1월.
점점 총기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는 우리 어머님께 슬그머니 안부 전화를 올려봅니다.
                          어머님…내내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