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라는 것의
본질을 생각해보면,
인간은 제각기
혼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질투하지도 않으며
남을 자신보다 더 믿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는 평생토록 당신에게 사랑을 바칠
아주 귀한 사람입니다.
 
한동안 당신을 못 봤어도
나는 때때로
당신의 표정을 떠올립니다.
요사이 당신과 이야기는 못했어도,
나는 자주자주
당신의 생각을 듣습니다.
 
좋은 사람은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하나임을 느낄 때
사랑은 반드시 이어집니다.
 
-수잔 폴리스 슛츠의 '사람은 혼자일 수 밖에 없지만'-

만난 지 45일 만에 남편의 미국행이 실현된 탓에
남편과 저는 1년 동안 편지 연애를 했습니다.
지금이야 인터넷 화상채팅이다~ 인터넷 전화다~ 메신저다~ 뭐다뭐다~ 해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통이 자유롭지만(환상적^^)
예전에 제가 한참 연애하던 90년대 초는 그야말로 전화와 편지가 전부였거든요.

전화비도 어찌나 비쌌든지 집에서 국제전화 하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만원짜리 한장 들고나가 공중전화 신세를 지기가 일쑤였지만
돈 떨어지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그나마도 10분을 다 못 채웠던 것 같습니다.

그런 기억때문인지 저는 요즘 아이들이 연애할 때
수시로 문자 보내고, 메신저에서 만나고, 화상채팅도 하고, 이멜도 교환하고, 홈페이지 들락거리는 모습이
너무너무 부럽기만 합니다.
 
오늘은 벽장에서 남편과 저와의 연애편지가 들어있는 박스를 찾았습니다.
묵직한 것이 '이게 뭘까?' 싶어 열어봤더니만 남편과의 쑥스러운 추억이 그대로 들어있더라구요.
그때는 왜 꼭 국제우편은 파란색, 빨간색 빗금이 쳐져있는 봉투에 넣어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제가 보낸 편지는 빗금 쳐진 봉투..
남편이 보낸 편지는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맨 봉투..그렇네요.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편지들 가운데 하나를 쑥 빼서 읽어보니
음...유치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기억 속의 저는...그다지 유치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편지들 덕택에 저의 유치함이 그대로 탄로나버린 것 같아 순간 얼굴이 빨개집니다.

공연히 들뜬 마음에 만사를 다 제쳐두고 연애편지를 하나씩 꺼내보다가
남편이 제 편지를 받을 때마다 봉투 오른쪽 아래에 날짜와 숫자를 적어나간 걸 발견했습니다.
문득 편지를 받았을 때...활짝 빛났을 남편의 얼굴과
봉투 아랫쪽에 날짜와 숫자를 적어내려가던 녹색 볼펜이 들려진 남편의 손을 떠올려봅니다.

남편은 늘 녹색 볼펜으로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나중에 결혼을 하고난 후에 왜 꼭 녹색 볼펜으로 편지를 썼냐고 물어보니
어디에선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녹색 볼펜으로 편지를 쓴다고 했다나요?
그렇게 제가 보낸 편지에는 늘 하트가 숨겨져 있었고 남편의 편지는 늘 녹색 잉크가 묻어났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들이 수줍음 속에서 빛나던 시절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편지를 보낼 때마다 어설픈 솜씨로 편지지를 만들고,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며 알콩달콩 사랑을 키워가던 그때..
그때 제 마음은 바로 저 위에 소개한 시와 같은 마음이었을까요?

좋은 사람은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하나임을 느낄 때
사랑은 반드시 이어집니다.

달력을 보니 돌아오는 일요일이 ‘발렌타인데이’ 더군요.
연애편지로 필 확실히 받은 저는 이번 발렌타인데이에
몇 년 전에 해본 적이 있었던 ‘남편을 위한 10불의 행복’을 준비하려 합니다.
제가 준비하는 10불의 행복은 별거 없구요.
99 store 에 가서 I Love You 적힌 풍선이랑 쵸코렛, 장미를 사서 남편이 일어나기 전에 셋팅한 다음
아직 잠자리에 있는 남편의 귓가에 속삭이는 겁니다.
“자기야…일어나…내가 10불의 행복을 느끼게 해줄게~” 그렇게요.
 
편지들을 다시 박스에 넣어 정리하면서
빗금이 없는 일반 편지봉투에, 제 글씨가 적힌, 제가 보낸 편지가 있어 펼쳐봤습니다.
그것은 결혼 후 미국에 와서 쓴 편지였는데
학교 사정이 안 좋아 남편의 financial aid가 한 학기 끊긴 적이 있었을 때
남편을 위로해주기 위해 썼던 편지였습니다.

우리, 기운내고 살기로 해요.
너무 대범하게 살 것까진 없어도 비겁하게는 살지말고
너무 넉넉하게 살 것까진 없어도 궁색하게는 살지말고
우리 사랑을 아끼고 다듬으며 그렇게 살기로 해요.

풋내기 새신랑이 힘들어할 때

말 한 마디, 글 한 줄로 남편에게 위로를 해주었던 새내기 신부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그렇게 어려웠던 날을 지나며 함께 위로하고 지켜주면서 오늘의 19년차 부부가 된거니까요.

모두가 힘들다고 하는 요즘입니다.
말 한 마디, 글 한 줄로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부부가 되시길 바라며..
가끔은 컴퓨터 이메일보다 편지를 써봐야지…다짐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발렌타인데이와 따뜻한 설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