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한번씩 엘에이에 가야 하는 저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대신
가끔씩 기차를 이용합니다.
기차를 타면 기다리는 시간, 타고 가는 시간, 내려서 전철을 갈아타야 하는 시간 등
가외의 시간이 더 소요되기도 하지만,
자동차 운전할 때 불가피 했던 과도한 트래픽에서 해방될 뿐만아니라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잇점이 있습니다.

기차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
어떤 이는 책이나 신문을 보고,
또 어떤 이는 미처 다하지 못한 일거리를 정리하고,
또 다른 이는 차창 밖을 내다보며 바깥 경치를 구경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덜 깬 잠을 보충하기도 합니다.
사실 촌구석에 박혀 사는 저에게 기차 타는 일은
시간을 활용하는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어 좋은 것도 있지만
이렇게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는 것이 큰 매력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어쩌면 2008년의 마지막이 될 엘에이 행 기차를 탔습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잔뜩 젖어있는 레일 위로 달리는 기차..
기차도 젖고 기차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젖고,
세상은 온통 물기로 촉촉했습니다.
원래는 기차 안에서 미처 쓰지 못했던 송년 카드를 쓰려고 생각했는데
기차가 어찌나 흔들리든지 집에 가서 쓰기로 하고
대신 비 내리는 차창 밖 풍경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비가 흩뿌려서 그런지
오늘의 바깥 풍경은 맑은 날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어쩐지 처량하게 보인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기차가 지나가는 길 옆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멋진 영상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혹시 바닷가를 끼고 달린다면 모를까…
계곡을 끼고 달린다면 또 모를까..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라는,
깊이 들어가면, 조금은 서글픈 그 노래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된다고 하면 맞는 표현일까요?
정적소리의 시끄러움 때문인지 기찻길 주변에는
공장 건물과 다 쓰러져가는 가정집들이 그 경치의 주를 이루지만
그래도 그 구획은 한국보다 넓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휑하게 느껴지는데다 그래피티는 또 왜 그리 많은지요.

방금 전에는 텐트촌 비슷한 지역을 거쳐갔는데
야영을 나온 사람들이 치는 텐트촌으로는 생각되지 않은 것이
아마도 거기에 주거지를 정한 사람들이 사는 모양입니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단 한번도 그같은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음을
꿈도 꾸지 못했을텐데..
작지만 지붕이 새지않는, 추울 때 따뜻하게 쉴 수 있는,
화려하진 않지만 안정된 내 집이 있음이 그저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거쳐가는 역들은 대체로 단정하고 깔끔합니다.
제법 큰 나무들이 있는 걸로 보아 지은 지는 꽤 되어보이는데도
관리를 열심히 잘 하는지 쓰레기 한 점 없이 깨끗하니까요.

텐트촌이 지나기가 무섭게 쓰레기 분리 작업장이 나타납니다.
박스는 박스대로, 고철은 고철대로, 플라스틱은 플라스틱대로, 종이는 종이대로..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그 형질에 따라 분리되어 산을 이루는 쓰레기 더미들..
그 중 어떤 것은 심하게 압축을 해서 부피가 확~ 줄어있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그대로 쌓아 올려 놓아 산을 이루고 있기도 했습니다.

서로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을 대비시켜
간혹 엉뚱한 상상력을 발동시키곤 하는 저는
오늘도 어김없이 쓰레기 더미를 보고 상상력을 발휘해 봅니다.

우리 마음 곳곳에 널려있는
미움과 원망과 시기, 질투, 불만족 같은 부정적인 마음을
쓰레기로 생각하는 것이 그것이지요.
부정적인 마음이라는 같은 형질을 지닌 그것들을 압축기로 쫙 편다음에
삐져나올 구멍이 없이 한데 묶어봅니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작은 크기로 묶어봅니다.
그렇게 묶어놓고나니 부피가 확 줄어있어 처리하기가 간편해집니다.
휙~ 던지기도 좋고, 불지르기도 편하고, 묻어버리기도 좋습니다.
저는 그것을 마음 한 구석..저기 맨 밑바닥에 던져놓습니다.
어지간하면 잘 빠져나올 수 없는 곳에다요.

그리고 사랑, 감사, 행복, 만족감 등 긍정적인 마음도 한 곳에 모아봅니다.
미처 생각지 못했던 그 좋은 마음들이 산처럼 쌓아집니다.
그것들은 압축기로 펴지않고
마음 이곳 저곳에 골고루 분산시켜 놓습니다.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겉으로 이끌어낼 수 있도록요.
굳이 맘을 먹지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내비칠 수 있도록요.

2008년 한 해를 보내면서 부정적인 마음을 꽉 묶어 저 밑에 던져두고
긍정적인 마음을 마음 곳곳에 퍼뜨려 놓았습니다.    
이젠 누군가를 향한 미움의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라도
예전같지 않음을 압니다.
왜냐하면 미움은 압축기로 눌려져 꽁꽁 묶여있기 때문이지요.
이젠 누군가를 향한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해도
예전처럼 스스로 상처입지 않을 것을 압니다.
왜냐하면 시기와 질투의 마음도 압축기로 눌려져 꽁꽁 묶여있기 때문이지요.
이젠 불만족도 원망도 그 어떤 부정적인 마음도
혼자서 빨빨거리며 스스로를 갉아먹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압축기로 눌려져 꽁꽁 묶여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순간순간 행복과 감사와 고마운 마음, 사랑과 자족하는 마음은
여기저기 골고루 퍼져 제 마음을 지배합니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기차는 어김없이 종착역에 당도합니다.
기차가 예정된 시간에 종착역에 당도한 것처럼
우리도 언젠가 인생의 예정된 종착역에 당도하게 될 때..
미움과 원망보다는 용서와 화해, 감사와 사랑으로 충만된 시간이었기를 소망합니다.

일년이라는 시간이 해마다 더 빨리 지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올해 소원하시던 일들, 계획하시던 일들..얼마만큼 이루셨는지요?
혹시나 다소 부족한 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다시 두주먹 불끈 쥐고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일년동안 댓글로 사랑을 전해주신 많은 님들.
그리고 댓글을 달지 않으셨더라도
마음으로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많은 님들에게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