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오늘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에서 저는 문득 잠에서 깨어난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일생을 마친 다음에 남는 것은 우리가 모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에게 준 것이다. 재미있는 일이야. 악착스레 모은 돈이나 재산은 그 누구의 마음에도 남지 않지만 숨은 적선, 진실한 충고, 따뜻한 격려의 말 같은 것은 언제까지나 남게 되니 말이야."

- 미우라 아야코의《속 빙점》중에서 -

우리 가족은 해마다 적어도 한번씩은 가족 캠핑을 갑니다.
마치 연중행사처럼 행해지는 캠핑을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제는 여름만 되면 아이들도 어른들도 으레 캠핑을 떠나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보통 틴에이저 아이들이 부모들과 함께 하는 여행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저역시 그 시절엔 친구들과 함께 했던 여행이 가족들과 함께 했던 여행보다 더 재미있었거든요.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집 틴에이저들은 감사하게도 캠핑을 당연한 가족 행사 쯤으로 여깁니다.
한번 습관으로 만들어 놓으니 받아들이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모양입니다.

올해도 우리 가족은 2박 3일 캠핑을 다녀왔습니다.
캠핑이라는게 원래 짐이 많게 마련이라 고작 2박 3일임에도 트렁크에는 짐이 한 가득입니다.
커다란 텐트 하나, 에어베드 두개, 침낭, 의자, 장작, 코펠, 아이스박스, 먹거리, 옷가방, 랜턴 등등...^^
그렇게 한 가득 짐을 싣고 가는 여행길..

그 길에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함없이 한껏 들떠있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어떤 모양의 추억을 갖게 될까?
이번 여행에서는 어떤 색깔로 추억을 칠하게 될까?

그렇게 생각만 하는 것으로도 여행을 떠나는 발걸음은 즐거움을 동반합니다.

캠핑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 문명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게임에서 잠시 떨어져
며칠 동안 가족과 똘똘 뭉쳐서 함께 어울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캠핑이 주는 매력 중 단연 으뜸입니다.

캠핑장에 가면 또한 가족의 협동심이 빛을 발합니다.
커다란 텐트를 꺼내 온가족이 함께 조립해 가는 과정 속에서 함께 한다는 기쁨을 누리고,
산책하는 길, 함께 하는 게임, 장작불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나누는 이야기들은
가족 간의 사랑과 정을 더 끈끈하게 합니다.

다년 간의 경험으로 우리 아이들은 텐트를 치고 에어베드에 바람을 넣는 일이 아주 능숙합니다.
엄마인 나는 뒤쳐져서 다 조립된 텐트 덮개에 리본이나 매주고 말지만,
아이들은 앞장서서 텐트 속을 사람 냄새가 나는 공간으로 만들어놓고 있습니다. 

                   (체리씨 멀리 뱉어 구멍에 집어넣기)

캠핑장에서 우리 가족이 하는 게임은 주로 손이나 입을 이용한 것들이 많습니다.
감자에 싹이나서 잎이나서 싹싹싹~ 이나, 묵지빠는 손을 이용한 게임이고,
체리씨 입으로 뱉어내어 구멍에 집어넣기나, 쿵쿵따는 입만 있으면 가능한 게임입니다.
언젠가부터 이런 일련의 게임들의 승자는 '아들'녀석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눈물을 글썽거리던 녀석인데...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잔가지 불 붙여 빙빙 돌리기)

본격적으로 사위가 어두어지고 장작불에 불을 붙이는 것은 캠핑의 또 다른 묘미입니다.
머쉬멜로에 쵸코렛, 그래샴 쿠키로 스모어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아이들은 잔가지를 꺾어와 거기에 불을 붙이며 빙빙 돌리고 놉니다.

저 높이 하늘에는 언젠가부터 별들이 총총히 박히기 시작합니다.
북두칠성도 찾아보고 북극성도 찾아보고 오리온도 찾아보고...
일년 만에 우리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만, 그것은 매년 새롭게만 느껴지는 일들입니다.

장작불이 다 타들어 알불만 남을 즈음,우리도 슬슬 잠자리에 들어갈 준비를 합니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는지 텐트에서 자는 것보다 호텔이 주는 안락함이 좋지만,
아이들과 함께 할 캠핑이 몇 년이나 남아있을까 생각하면 오늘이 그저 감사할 밖에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잔뜩 지친 아이들에게 이번 캠핑에 대한 느낌을 물어봅니다.
"캠핑은 항상 즐거워요.."라고 대답하는 아이들의 그을린 얼굴 속에서
둥글고 노란빛이 나는 이번 캠핑의 의미를 찾아냅니다.
그리고 미우라 아야코의 책 속의 구절을 떠올려봅니다.

내 비록 악착스럽게 돈을 모으지 못해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줄 돈도 없을테지만
적어도 '함께 함'의 기쁨을 누리게는 해주었다..
그 기쁨이 그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추억'이란 이름으로 남게 해주었다...
그것이 어쩌면 남겨진 돈보다 더 큰 가치가 있고 소중한 것이 아닐 것인가...하고 생각합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함께 했던 시간들은 어느덧 과거가 되고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이 각자 삶으로 돌아갑니다.
딸아이는 딸아이 방으로,
아들녀석은 아들녀석 방으로,
남편은 남편 자리로, 나는 내 자리로..
언제나 그렇듯이 각자 있어야 할 곳으로,  우리의 원래 자리로 돌아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주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벌 수도 없겠지만 벌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보다는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과
그 즐거움을 만끽한 후에 다시 찾은 제자리의 소중함을 알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부모로서 추구하는 진정한 가치임을 이야기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