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더니 환한 달빛이 민이 얼굴, 엄마 얼굴, 영이 얼굴에 내려 앉았습니다.
엄마와 나란히 누워 하루를 마무리 짓는 시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엄마는 오늘 밤에도
양팔에 아이들을 하나씩 끼고 달빛 아래서 새로운 동화를 시작합니다.

“옛날에 파란 공룡과 빨간 공룡이 살았대. 파란 공룡은 빨간 공룡 보다 일찍 태어난 오빠 공룡이었지. 둘은 사이가 좋아 공룡 마을에서 가장 사이좋은 남매 공룡으로 뽑히기도 했어. 우리 민이랑 영이처럼 말이야. 또 무슨 일이든지 서로 힘을 합쳐 했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없었대. 그런데 어느날 파란 공룡이 이웃 마을에 다녀온 사이 빨간 공룡이 파란 공룡의 가장 소중한 것을 망쳐 놓았대나봐.”

민이는 엄마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생각합니다.
학교에 다녀온 민이는 영이가 만들어 놓은 거실 풍경을 보고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지요. 장난감 바구니 안에 든 것을 잔뜩 꺼내어 어지른 것도 모자라 작년에 아빠에게 생일 선물로 받은 민이의 애지중지 로봇까지 부러뜨리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렇잖아도 요즘 민이는 기회가 될 때마다 민이 물건을 만지고 있는 영이 때문에 살짝 삐쳐 있었거든요. 마침 쓰레기통을 치우시는 지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민이는 영이를 째려보며 영이 곁으로 갔어요. 그리곤 엉덩이를 있는 힘껏 꼬집었답니다.
 
“아야……앙앙앙…”

“왜 내 물건에 손대니? 내가 이러지 말랬지?”

“시어..시어..이거 조아….앙앙앙..”

“이건 내꺼야..넌 니꺼 갖고 놀아..”  

민이는 엄마 이야기가 마치 오늘 낮에 있었던 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공연히 속으로 찔렸습니다. ‘엄마가 영이 꼬집은 것을 봤나??? 아니면 영이가 꼬집은 것을 일러 바쳤나??’ 마음 속에 별의별 상상을 다하며 저절로 낯이 뜨거워진 민이는 가만히 엄마의 저쪽 팔에 누워있는 영이를 건너다 봅니다. 하지만 영이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천진하게 엄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너무 화가 난 파란 공룡은 빨간 공룡에게 어떻게 했을까??”

“빨간 겅영 시어…미오…나빠…시어..시어…말해써..”

영이는 낮에 자기가 한 일은 다 잊은 듯 천연덕스럽게 잘도 대답합니다.

“민이 생각은??”

“…………….”

민이는 엄마의 물음에 쉽게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엄마에게 대놓고 "있는 힘껏 째려보며 엉덩이를 꼬집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민이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엄마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파란 공룡은 큰 소리로 야단을 칠까 하다가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어. 우리에게는 모두 마음이 있잖아. 민이 오빠도 마음이 있고, 영이도 마음이 있고, 엄마랑 아빠도 마음이 있는 것처럼 파란 공룡과 빨간 공룡도 마음이라는 게 있거든. 파란 공룡은 소중한 물건 보다 소중한 동생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것이 더 나쁜 일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빨간 공룡에게 화를 내고 때리는 대신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자기 기분을 솔직하게 이야기 했단다. ”

“어뜨케?”

 영이가 또 나서서 엄마의 말을 자릅니다. 그러자 엄마는 방긋 웃으시며 다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내 물건을 허락없이 갖고 놀면 내가 기분이 나쁘니까 다음번엔 나한테 허락 받고 놀아줘..라고 말했대. 그러자 빨간 공룡은 파란 공룡이 때리지않고 말해줘서 너무 고마웠어. 그리고 파란 공룡이 남의 물건을 허락도 안 받고 노는 것은 나쁜 일이라고 말해줘서 이제부터는 항상 허락 받고 놀아야지 마음 속으로 다짐했단다. 그리고 파란 공룡에게 미안해..그리고 고마워. 내 마음을 더 소중하게 생각해줘서..다음부터는 허락받고 놀게~오빠~~~^^ 하고 말했단다. 그 후로 파란 공룡과 빨간 공룡은 계속 사이좋은 공룡 남매가 될 수 있었어. 왜냐하면 항상 서로의 마음을 먼저 생각했으니까.”

물건 보다 마음이 더 소중하다..는 엄마의 말씀이 민이의 가슴에 콕 박힙니다. 오늘 낮에 했던 자기 행동은 분명히 영이의 마음보다 로봇을 더 소중히 한 행동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민이는 여전히 영이가 한번은 혼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의 물건을 허락도 없이 만지고 노는 것은 절대로 착한 일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오늘 낮에 영이를 째려보며 엉덩이를 꼬집은 것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난 절대 후회하지 않아.. 후회하지 않아..’ 마음 속으로 민이가 오늘 낮의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는데 엄마를 넘어 영이 손이 슬며시 민이에게 다가 옵니다.

“오빠, 나..미안..미오하지마. 마음이 중여해…인제는…음….허락받고 놀으께…”

겨우 세 살 짜리 여동생의 입에서 나온 사과의 말이 민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듭니다. 낮에 있었던 일은 어느새 눈 녹 듯이 사라지고, 일곱 살이나 먹은 오빠가 세 살 밖에 안 된 동생의 사과를 받고 해줄 수 있는 말이 뭐 있을까..곰곰이 생각하다가 민이는 멋진 말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그래, 우리 빨간 공룡 영이야, 나도 로봇 보다 네 마음이 더 소중해..(으쓱~)”

민이와 영이의 사과하고 용서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엄마는 흐뭇하게 미소를 짓습니다. 아까 낮에 로봇을 부러뜨렸다고 영이를 울리는 민이의 모습을 보며 바로 야단을 칠까 하다가 한 숨통을 고른 엄마기 때문이지요.

달빛이 아까보다 더 밝아진 듯 민이 모습, 엄마 모습, 영이 모습이 한층 더 또렷해집니다. 달빛을 통해 본 아이들의 모습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행복해 보이고, 서로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들이 대견해서 엄마의 마음은 어느새 달이 되어 두둥실 떠오릅니다.

(이 글은 Yoon Cho 님이 주신 글을 바탕으로 구성해 본 것입니다. 
   Yoon Cho 님 고맙습니다.^____^)